
밴프부터 재스퍼까지, 로키가 선사하는 계절의 절정
하늘이 가까워지고, 공기의 결이 달라지는 계절. 단풍이 내려앉고 첫눈이 스며드는 그 짧은 경계에, 사진가들은 더 먼 곳을 바라본다. 한반도의 가을이 아쉬워질 무렵, 어떤 이들은 북미 대륙의 심장부, 캐나다 로키로 향한다. 거대한 산맥과 빙하, 맑은 호수와 안개, 그리고 야생의 숨결이 살아 있는 이곳은, 그 자체로 사진가에게 ‘마지막 빛’을 선물하는 무대다.
단풍과 설산이 같은 프레임에 담기는 시간. 단풍이 색을 다하지도 않았는데, 그 위에 설산이 내려앉고, 산 능선을 타고 구름이 밀려든다. 호수 위로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그 속을 헤집고 나오는 엘크나 곰의 실루엣은 한 폭의 극적 장면을 완성한다. 이 짧고 강렬한 계절은 매년 9월 중순부터 10월 초, 단 2주 남짓 펼쳐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밴프, 재스퍼, 요호, 카나나스키스가 있다.

▶빛과 계절이 만나는 곳, 로키를 향한 사진가의 순례
사진가들에게 가을의 캐나다 로키는 단순한 촬영지가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 시선이 조우하고, 감정이 프레임 안으로 녹아드는 깊은 사유의 시간이다. 셔터를 누르는 손끝보다, 기다리는 시간의 숨결이 더 긴 여정이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여긴 풍경을 찍는 곳이 아니라, 계절의 본질을 느끼는 곳이다.”

▶황금빛 낙엽송의 향연 – 밴프 국립공원
밴프는 사계절 내내 아름답지만, 가을의 빛은 유독 절정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라치 밸리(Larch Valley)는 매년 9월 말부터 10월 초, 황금빛 낙엽송이 산 전체를 뒤덮으며 색의 클라이맥스를 만든다. 고도 2,000m 위에 펼쳐진 숲은 설산과 맞닿고, 구름이 느리게 지나가며 햇살을 쏟아내는 그 찰나, 낙엽송은 단풍이 아니라 빛이 된다.

모레인 호수와 루이스 호수의 새벽은 또 다른 이야기다.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반영이 선명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고요하지만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붉은빛과 푸른 그림자가 교차하는 물가에서, 사진가는 셔터 대신 호흡으로 자연을 기록한다.
캐슬 마운틴, 존스턴 캐년의 숲길 역시 놓쳐선 안 된다. 이곳은 대규모 관광객보다 조용한 사진가들의 발길이 잦은 곳으로, 회색 암벽과 단풍, 수직의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선과 면이 안정적인 구도를 이끈다.



▶정적의 시를 짓는 호수 – 요호 국립공원
밴프에서 조금만 서쪽으로 이동하면, 요호(Yoho)의 깊고 묵직한 고요함이 펼쳐진다. ‘경외심’을 뜻하는 원주민 언어에서 유래된 이름처럼, 요호는 인간이 설 자리를 잊게 만드는 침묵의 풍경을 선사한다.
에메랄드 호수(Emerald Lake)는 그 이름처럼, 가을이면 더욱 짙어진 녹색으로 빛난다. 아침 물안개가 호수 전체를 감싸고, 그 위에 산과 나무가 반영될 때, 셔터를 누르기보다 삼각대를 붙들고 숨을 죽이는 시간이 더 오래간다. 이곳에서 사진은 기술이 아니라 감성으로 완성된다.
밝고 극적인 밴프와 달리, 요호는 부드러운 명상과 같다. 그늘과 빛의 균형, 노출의 미묘한 차이, 찰나의 변화에 민감해질수록 요호는 더 깊은 감정을 사진가에게 허락한다.

▶설산과 단풍이 교차하는 북쪽의 빛 – 재스퍼 국립공원
재스퍼는 로키의 북쪽에 위치해 가을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땅이다. 9월 중순이면 이미 산 정상에는 첫눈이 내리고, 아래 계곡은 단풍이 한창이다. 이 두 계절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순간, 사진가는 구도와 노출의 싸움 속으로 들어간다.

스피릿 아일랜드(Spirit Island)는 그 상징적인 장소다. 말린 호수의 깊은 청록색 수면 위에 솟아오른 작은 섬, 그 뒤로 설산과 구름, 그리고 가을빛이 한데 얽힌다. 이곳에선 삼각대 위에서 한 시간 넘게 빛을 기다리는 일이 낯설지 않다. 피라미드 호수(Pyramid Lake)의 새벽도 마찬가지다. 반영과 단풍, 물안개가 겹치는 이른 아침은 사진가들의 감각을 가장 예민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재스퍼는 또 하나의 선물, 야생동물을 품고 있다. 10월 초, 엘크의 교미철에는 숲 전체가 긴장으로 감돈다. 먼 울음소리, 무리의 움직임, 붉은 노을 뒤에 실루엣으로 등장하는 곰 한 마리는, 수십 컷 중 단 하나의 순간으로 기억된다.



▶사진가만이 허락받는 고요 – 카나나스키스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 카나나스키스는 진짜 사진가들만의 공간이다. 이른 새벽, 서리가 산을 감싸고 물안개가 호수를 덮는다. 소리도, 움직임도 없다. 카나나스키스 호수에서 삼각대를 펼치면, 셔터 소리조차 풍경을 깨는 것 같아 숨을 참고 기다리게 된다.
이곳의 풍경은 단순하다. 바위 하나, 나무 한 그루, 그리고 그에 비친 빛 한 줄기. 하지만 그 단순함이 오히려 시선을 오래 붙들고, 감정을 길게 여운으로 남긴다. 일출 무렵, 호수는 붉은 빛과 서리의 흰색이 겹쳐지는 무대가 되고, 카메라보다 마음이 먼저 반응하게 된다.



▶단풍 위에 설산이 내려앉는 그 순간, 셔터는 멈추지 않는다
가을의 캐나다 로키는 짧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마주하는 장면은 사진가에게 한 해를 갈무리할 만한 감동을 선사한다. 색과 빛, 계절과 감정, 야생과 고요. 이 모든 것이 같은 프레임 안에 담기는 순간, 사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 하나의 기억이 된다.



사진을 찍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 아니다. 감정을 남기기 위해 카메라를 드는 것이다. 그리고 가을의 로키는, 그 감정을 가장 정교하고 진하게 만들어주는 계절이다.
▶문의 : 010-2118-1929 (포토저널 해외촬영팀 담당 - 스티브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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