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가 기록한 진실, 책이 전하는 감정…매그넘 80년 시각 기록, 서울에 상륙

세계 사진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이름, 매그넘 포토스가 포토북으로 그려낸 80년의 이야기가 서울에서 펼쳐진다. 뮤지엄한미가 오는 9월까지 삼청본관에서 선보이는 《포토북 속의 매그넘 1943–2025》 전시는 사진가의 시선과 시대의 맥락이 맞물린 ‘읽는 사진’의 미학을 극대화한 대형 기획이다.
이번 전시는 매그넘 포토스와 뮤지엄한미가 공동 주최한 세계 최초의 포토북 중심 매그넘 전시로, 뉴욕·런던·파리의 매그넘 사무소에 소장된 150여 권의 포토북이 국내에 처음으로 집결됐다. 사진 한 장이 아닌 책 한 권을 매개로, 작가들의 내면과 시대정신이 어떻게 축적되었는지를 밀도 있게 조망한다.
기획에는 포토북 장르의 대가 마틴 파와 국내 작가 천경우가 공동 참여했다. 두 기획자는 매그넘의 시선을 여섯 개의 파트로 나눠 ‘사진집은 어떻게 이야기하는가’를 다양한 키워드로 풀어낸다. 단순한 도판 나열이 아닌, 구성의 리듬과 내러티브에 주목한 전시는 관람객을 ‘읽는 경험’으로 이끈다.

‘매그넘? 매그넘!’ 파트는 협동조합의 탄생과 철학, 창립자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로버트 카파 등의 고전적 시선을 소개한다. 매그넘은 단지 사진가의 모임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비판과 사유를 견지해온 시각적 기록자들의 연대였다는 점이 강조된다.
‘시대 속의 매그넘’에서는 전쟁과 혁명, 테러와 팬데믹 등 격동의 순간을 기록한 작가들의 포토북이 공개된다. 한국전쟁을 담은 베르너 비쇼프, 니카라과 혁명을 기록한 수잔 메이즈레스 등의 작업은 단순한 보도를 넘어 사회적 기억으로 기능해왔다.
2000년 이후의 포토북 흐름은 마틴 파가 단독으로 기획한 세 번째 파트에서 집중 조명된다. 젊은 작가들이 매체로서의 포토북을 어떻게 계승하고 확장했는지, 그리고 각 포토북이 어떤 의도를 담고 있는지를 인터뷰 영상 ‘소파 세션’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다.

빈티지 포토북과 실물 사진이 함께 전시되는 ‘매그넘의 아이코닉’은 사진이 디지털로 전환되기 전, 손으로 느끼던 감각을 복원하는 시도다. 사진의 물성과 프레임 너머의 서사를 함께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미완성된 프로젝트 『Eye to Eye』는 다섯 번째 파트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 포토북으로 세상에 나오지 못한 더미북과 기획 문서, 작가 간의 서신은 예술적 창작이 어떻게 진행되고 무산되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마지막 파트 ‘라이프-타임’은 천경우 작가가 독자적으로 기획했다. 삶의 다양한 장면을 조망하는 12권의 포토북이 펼쳐지며, 인류의 생애를 감각적으로 압축한다. 정신병 환자의 삶, 입양의 기록, 가족과 거리 사이의 긴장감 등 포토북은 감정의 아카이브가 된다.
전시장 초입에는 ‘리딩룸’이 마련되어 있어, 관람객이 포토북을 직접 넘겨보며 사진이 지닌 물리성과 감정을 직접 느낄 수 있다. 이 밖에도 타블로이드 형식의 인쇄물을 통해 전시 내용을 확장해 일상 속으로 가져올 수 있는 기획도 눈길을 끈다.
전시 개막 주간에는 매그넘 포토스 글로벌 디렉터 안드레아 홀즈헤르와 천경우 작가가 참여하는 큐레이터 토크가 예정되어 있으며, 이후에도 강연 및 체험형 프로그램이 이어질 계획이다.
단순한 이미지 소비가 아닌, 시대를 읽고 삶을 사유하는 도구로서의 포토북. 매그넘은 그 가능성을 80년 동안 실천해왔다. 그 성찰의 흔적을 직접 보고 만지고 읽을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사진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한 권의 책에 마음을 내어주는 이들에게도 오래 남을 경험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