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을 걷고 듣고 체험하는 대장정, 벵뒤굴, 김녕굴도 개방…‘만 년의 비밀’ 직접 탐험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더 이상 유리관 속의 유물이 아니다. 2025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제주에서 시작해 경주, 순천, 고창으로 이어지는 네 도시에서 세계유산이 생생한 문화 콘텐츠로 다시 태어난다. 국가유산청과 국가유산진흥원이 공동 주최하는 ‘2025 세계유산축전’은 7월 4일부터 10월 22일까지 4개월간 순차적으로 진행되며, 각 도시의 세계유산이 지닌 고유한 스토리와 풍경, 정신을 오감으로 체험하는 자리로 꾸며진다.
첫 무대는 제주의 화산섬과 용암동굴이다. ‘계승의 시대(Age of Inheritance)’라는 테마로 진행되는 제주 축전은 화산이 만든 지질 유산을 직접 걷고 관찰하며 체험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대표 프로그램 ‘불의 숨길, 만 년의 시간을 걷다’는 거문오름에서 시작해 용암이 흘러간 21km 구간을 전문 해설사와 함께 걸으며 제주의 지질학적 형성과정을 몸소 따라가게 된다. 여기에 평소에는 접근이 제한된 벵뒤굴, 김녕굴 등을 탐사하는 ‘만 년의 비밀을 찾아서’는 극소수만 참여할 수 있는 한정 체험으로, 예약이 시작되기도 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라산 천연보호구역과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열리는 ‘별빛산행·일출투어’는 제주의 자연과 신비로움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SNS 인증사진 명소로도 주목받는다.

가을이 시작되는 9월 12일, 천년의 고도 경주에서는 ‘천년의 빛, 세대의 공존’이라는 주제로 신라문화가 현대적 상상력과 기술을 입고 되살아난다. 축전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공연 ‘황룡, 다시 날다’는 삼국유사 속 황룡사 9층 목탑을 드론 퍼포먼스로 재현한 대형 미디어쇼다. 역사적 사실에 기술을 덧입힌 이 공연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만약 지금 황룡사가 있었다면?’이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이 외에도 석굴암과 불국사, 첨성대, 양동마을, 옥산서원 등 경주의 모든 세계유산을 하나의 축제 무대로 연결한 다양한 공연, 체험, 전시 프로그램이 도심 곳곳에서 펼쳐진다. 관광객은 경주의 세계유산 안을 걷는 동시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순천에서는 사찰과 갯벌이라는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유산이 ‘삶의 흔적’이라는 주제로 조화를 이룬다. 순천 선암사에서는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이동형 연극이 사찰 일대를 따라가며 진행되고, 관람객은 전통 건축과 자연 풍경 속을 걷는 동시에 극의 일부가 된다. 또 다른 무대인 순천 갯벌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직접 기획한 15개의 창의적 콘텐츠가 운영된다. 마을 주민들이 만든 프로그램이 유산 활용 축전의 일부가 되어 지역성과 참여성을 동시에 구현한 점에서 가장 실험적인 구성으로 평가받는다.
고창에서는 10월 2일부터 22일까지 ‘자연과 공존, 인류의 영원한 시간!’이라는 테마로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인류의 흔적을 조명한다. 고창 고인돌 유적에서는 ‘고인돌 세움학교’라는 이색 체험이 운영되며, 참가자들은 실제 고인돌 축조 방식에 대해 배우고 직접 체험할 수 있다. 갯벌에서는 해가 지는 시간에 맞춰 철새를 관찰하는 ‘노을 탐조’가 운영되며, 자연유산의 생태적 가치를 감각적으로 전하는 프로그램으로 주목받는다. 고창의 세계유산을 주제로 한 전시와 공연도 함께 펼쳐져, 선사적 시간과 현재가 겹쳐지는 경험을 관람객에게 제공한다.

올해 세계유산축전에서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변화는 ‘글로벌 사절단’의 운영이다. 미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 14개국에서 선발된 20명의 외국인이 직접 유산 현장을 방문하고, 축전을 체험한 후 관련 콘텐츠를 제작해 국내외에 공유한다. 이들은 단순한 홍보단을 넘어, 한국의 유산을 세계에 소개하는 ‘국가유산 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들은 7월 4일 제주에서 열리는 발대식을 시작으로, 4일간 제주, 경주, 순천, 고창을 둘러보며 생생한 경험을 디지털 콘텐츠로 재구성한다. 외국인의 시선에서 재해석된 한국의 유산이 글로벌 소통의 도구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유산축전은 단순한 관광 행사를 넘어, 각 지역의 유산이 지닌 고유성과 현대적인 문화 표현이 결합된 종합 예술 축제로 진화 중이다. 국가유산청은 앞으로도 이 축전이 세계유산의 보편적 가치를 국내외 대중에게 쉽고 흥미롭게 전달하는 문화플랫폼이자, 지역 활성화의 새로운 동력이 되도록 지속적으로 확장해나갈 계획이다. 유산은 이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를 움직이는 힘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