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향기를 과학으로 재현, 비자나무로 만든 항바이러스 향료

숲의 향기가 단순한 향을 넘어 ‘치유의 기술’로 진화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비자나무 정유에서 항바이러스와 항천식 효과를 지닌 기능성 향료를 개발하고, 이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다. 이름하여 ‘비자나무 정유를 포함하고 길마가지나무 꽃 향기를 재현한 항바이러스 및 항천식 기능성 향료 조성물’(출원번호 10-2025-0114150). 자연의 향기와 과학적 효능이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숲 기반 바이오소재가 탄생한 셈이다.
비자나무(Torreya nucifera)는 주목과의 상록침엽수로, 제주도와 남해안 일부 지역에서 자생한다. 은은하고 깊은 청향(靑香)으로 ‘향기 나는 나무’라 불리며, 예로부터 절집의 기둥과 가구재로도 애용됐다. 열매는 기름을 짜거나 구충제로 활용되어, 우리 생활 속에 뿌리 깊게 자리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향이 단순한 감각의 영역을 넘어 ‘기능성 물질’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진은 비자나무 잎 정유의 항바이러스·항천식 작용을 밝혀낸 선행 연구를 바탕으로, 향기 자체에 생리적 효과를 부여한 기능성 향료 조성물을 개발했다. 이 향료는 길마가지나무 꽃의 향기를 본떠 부드럽고 달콤한 숲의 느낌을 구현하면서도, 동시에 공기 중 유해물질 억제 및 호흡기 건강 개선 효과를 지녔다. 단순한 방향(芳香)이 아닌, 인체에 긍정적 작용을 기대할 수 있는 ‘기능성 향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것이다.

연구팀은 해당 조성물을 실제 향수로 시제품화해 기능성과 감성을 함께 갖춘 생활 향장품으로의 적용성을 검증했다. 향수뿐 아니라 디퓨저, 아로마 오일, 섬유 탈취제 등 다양한 제품군으로 확장할 수 있으며, 천연 성분 기반의 웰니스 산업 전반에 응용할 수 있다. 화학 합성향에 대한 소비자 불신이 커지는 상황에서, 국내 자생 수종으로부터 얻은 천연 정유가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비자나무 정유는 우리나라 산림자원 중에서도 특히 지속 가능한 자원으로 평가된다. 생장 속도가 느리지만 내구성과 향이 뛰어나 장기적인 소재 개발이 가능하며, 제주와 남해 지역의 생태적 균형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채취가 가능하다. 산림청은 이를 통해 ‘숲 자원의 부가가치화’와 ‘지역 순환형 산업 모델’의 선순환 구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기술의 의미는 단순한 특허 출원을 넘어, 산림의 가치를 산업과 삶 속으로 연결하는 데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임산소재연구과 연구진은 “숲 향기의 기능적 가능성을 실증함으로써, 향료 산업이 건강과 힐링을 결합한 새로운 시장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향은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닌, 웰빙 시대의 ‘치유 자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산림과학원의 목표는 분명하다. 국내 자생 식물의 향기 성분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기능성 화장품·의약외품·아로마테라피 제품으로 발전시켜 ‘K-Forest 향료’라는 새로운 브랜드 가치를 만드는 것. 천연향료의 글로벌 시장이 연평균 8% 이상 성장하는 가운데, 이번 연구 성과는 한국형 숲 자원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비자나무 향은 단지 좋은 냄새가 아니다. 그 안에는 숲의 시간, 자연의 치유력, 그리고 과학의 손길이 녹아 있다. 인간이 자연을 모방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 향기 한 방울 속에 담긴 숲의 이야기에서 건강한 미래 산업의 향기가 피어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