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년만의 「민법」 전면 개정...가스라이팅도 계약 취소 가능

67년 동안 거의 손대지 못했던 대한민국의 기본법이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민의 일상과 경제활동을 지탱해온 「민법」이 변화된 현실을 반영해 전면 개정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고정된 규칙이 아니라 시대에 맞게 숨 쉬는 법으로 바뀌는 전환점이다.
법무부는 12월 16일, 「민법」 현대화를 위한 첫 번째 과제로 ‘계약법’ 규정을 전면 정비한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은 1958년 「민법」 제정 이후 67년 만에 이뤄지는 사실상의 전면 개정의 출발점으로, 국민 생활과 가장 밀접한 계약 관계 전반을 현실에 맞게 다시 설계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동안 「민법」은 민사 연 5%, 상사 연 6%라는 고정된 법정이율을 유지해 왔지만, 급변하는 금리·물가 환경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국고채 3년 평균 금리는 1998년 연 12%를 넘기도 했고, 2020년에는 1% 이하로 떨어지는 등 큰 변동을 겪었지만, 법정이율은 수십 년간 그대로였다. 이번 개정안은 이러한 한계를 보완해, 금리와 물가 등 경제 상황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법정이율을 조정할 수 있도록 변동형 법정이율제를 도입했다. 경제 현실과 괴리된 법 규정을 그대로 적용해야 했던 불합리함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개정안은 최근 사회 문제로 부각된 ‘가스라이팅’과 같은 부당한 간섭에 대해서도 명확한 법적 대응 근거를 마련했다. 기존 민법 체계에서는 명시적 강박이나 사기와 달리, 장기간의 심리적 지배나 부당한 영향력 아래에서 이뤄진 의사표시를 보호하기 어려웠다. 이번 개정으로 부당한 간섭이 있었다고 인정될 경우, 그에 따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을 신설해 계약의 공정성과 개인의 자기결정권 보호를 강화했다.
채무불이행과 손해배상 제도 역시 전반적으로 정비됐다. 책임 구조를 보다 명확히 하고, 불필요한 분쟁을 줄일 수 있도록 규정을 다듬어 계약 당사자들이 자신의 권리와 책임을 예측 가능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매매계약에서 발생하는 하자의 유형도 단순화해, 복잡한 법률 해석 없이도 국민이 보다 쉽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이번 개정은 오랜 논의의 결실이다. 법무부는 1999년 이후 두 차례에 걸쳐 민법개정위원회를 구성해 전면 개정을 시도했고, 성년후견제도 도입과 같은 일부 성과를 거뒀지만, 근본적인 개정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후 2023년 6월, 교수·판사·변호사 등 학계와 실무 전문가가 참여한 ‘법무부 민법개정위원회’를 새롭게 출범시키고, 계약법을 첫 과제로 삼아 개정 작업을 본격화했다. 이번 국무회의 통과는 그 첫 결과물이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이번 개정안은 국민의 편익을 높이고 민법에 대한 신뢰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앞으로도 민법의 현대화를 위한 개정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계약법을 시작으로 물권법, 친족·상속법 등 민법 전반에 걸친 개편 논의가 이어질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