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 색의 비밀, 혈액과 유전자가 답이다

고기 한 점의 색이 소비자의 선택을 좌우한다. 돼지고기가 얼마나 붉고 선명한지를 결정하는 비밀이 혈액과 유전자 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확인됐다. 이제는 도축 후 평가가 아니라, 생산 이전 단계에서 고품질 돼지고기를 가려내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돼지고기의 붉은색 정도를 좌우하는 데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는 혈액 생리 지표와 유전자 특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돼지고기 품질을 가르는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육색을 유전적 관점에서 규명한 연구 성과다.
국립축산과학원 연구진은 제주재래흑돼지와 대표적인 흰색 돼지 품종인 랜드레이스를 대상으로 혈액 내 유전자 발현 양상을 정밀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혈색소 생성과 철 대사에 관여하는 일부 유전자들이 품종별로 뚜렷한 발현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돼지고기 색의 차이가 단순한 사육 환경이나 사료 차원을 넘어, 유전적 특성과 깊이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연구진은 혈액 속 적혈구 관련 지표가 육색 형성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적혈구 안의 색소량을 나타내는 MCH 수치가 높을수록 돼지고기 색이 더 붉어지는 경향이 확인됐다. 혈액의 생리적 특징이 고기 색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처음으로 구체화된 셈이다.
연구 과정에서 핵심 후보 유전자로 떠오른 것은 혈액 내 철 이동에 관여하는 HEPH 유전자다. 연구진은 이 유전자 인근에서 품종 간 차이를 보이는 4종의 유전자형 변이를 확인했다. 이 변이들이 혈색소 형성과 철 대사 과정에 영향을 주고, 결과적으로 돼지고기 적색도 차이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시됐다.


국립축산과학원은 이번 연구를 돼지고기 육색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유전자 변이와 혈액 생리 특성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탐색한 기초 연구로 평가하고 있다. 특정 유전자 변이가 육색 형성에 관여할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지금까지 경험과 감각에 의존하던 육질 평가 방식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 연구 성과는 산업 현장 활용 가능성도 크다. 국립축산과학원은 관련 기술에 대해 특허를 출원했으며, 향후 유전자 분석 전문기업에 기술이전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사육 단계에서 혈액이나 유전자 분석만으로 고기 색이 우수한 개체를 사전에 선발하는 기술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고품질 돼지고기 생산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기반 기술이다.
국립축산과학원 난지축산연구센터는 이번 연구가 돼지고기 품질 경쟁력을 과학으로 끌어올리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고기 색의 차이를 유전적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함으로써,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품질 기준 정립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평가다.
돼지고기 산업은 이제 맛과 식감뿐 아니라 색까지 과학으로 관리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혈액과 유전자에서 시작된 이 연구는 고품질 돼지고기를 예측하고 설계하는 새로운 축산 기술의 문을 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