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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묵시록, 남도 바다에 잠기다

이치저널 2026. 1.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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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 황봉연 사진기자

찰나를 늘려 영원을 포착하는 장노출의 마법. 남도의 바다는 그 거대한 캔버스 위에서 때로는 화려한 유혹으로, 때로는 서늘한 침묵으로 말을 걸어온다. 보성 득량의 그물망과 장흥의 매생이 양식장, 그리고 죽청리의 폐선까지. 칼라와 흑백이라는 두 개의 시선으로 남도의 겨울 서사를 읽어내려간다.

 

ⓒ 황봉연

 

보성 득량, 안개에 가둔 그리움 물안개 자욱한 득량만의 바다는 경계가 없다. 장노출로 매끄럽게 다듬어진 수면 위로 푸른 그물망이 솟아오른다. 칼라의 프레임 속에서 그물은 신비로운 생명력을 얻어 바다의 꿈을 건져 올린다.

 

ⓒ 황봉연

 

그러나 색을 지워낸 흑백의 공간에서 그물은 오직 가파른 선과 여백으로만 존재한다. 비워냄으로써 비로소 가득 차는 수묵의 미학이다.

 

ⓒ 황봉연

 

장흥 매생이 양식장, 빛의 검(劍)이 가르는 여명 바다에 박힌 수만 개의 말목은 남도 사람들의 억척스러운 삶의 기록이다.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태양의 궤적이 바다를 가로지른다. 장노출이 빚어낸 일출의 빛그물은 강렬한 색채로 수면을 물들인다.

 

ⓒ 황봉연

 

반면, 흑백으로 마주한 양식장은 엄격한 질서의 세계다. 화려한 빛을 거두어내면 바다는 오직 수직의 선과 수평의 고요가 맞물리는 거대한 기하학적 추상화가 된다.

 

ⓒ 황봉연

 

ⓒ 황봉연

 

ⓒ 황봉연

 

​ⓒ 황봉연

 

장흥 죽청리, 폐선이 건네는 마지막 위로 삶의 여정을 마치고 갯벌에 몸을 뉘운 낡은 배 한 척. 칼라 사진 속 폐선의 바랜 푸른색은 차라리 눈물겹도록 다정하다.

 

ⓒ 황봉연

 

하지만 장노출로 담아낸 흑백의 폐선은 존재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선다. 안개 너머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배의 실루엣은 삶과 죽음, 존재와 소멸의 경계에 서 있는 우리 모두의 뒷모습일지도 모른다.

 

ⓒ 황봉연

 

장노출은 단순히 셔터를 오래 열어두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남도의 바다가 품은 수만 번의 파도와 바람을 하나의 점으로 응축하는 기다림의 예술이다. 칼라로 읽는 남도가 '서정'이라면, 흑백으로 읽는 남도는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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