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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 뒤에 숨은 가로수 킬러, 우리가 뿌린 제설제의 배신

이치저널 2026. 2. 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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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쏟아지는 눈은 도시를 하얗게 수놓으며 낭만을 선사하지만, 그 뒤에는 우리가 모르는 소리 없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 눈을 녹이기 위해 도로와 보도에 뿌리는 제설제가 도시의 허파인 가로수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최근 연구를 통해 제설제 사용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 주변의 이팝나무, 왕벚나무, 은행나무가 매년 반복되는 고사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제설제 피해를 입은 이팝나무를 정밀 분석한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피해 나무의 잎에서는 건강한 나무보다 염소 성분 농도가 적게는 10배에서 많게는 무려 39배까지 높게 검출되었다. 나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소금기가 몸속에 쌓인 것이다. 이로 인해 따뜻한 봄이 와도 잎눈이 말라 비틀어져 잎이 돋아나지 못하고, 심한 경우 어린 나무들은 아예 목숨을 잃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나무마다 고통을 호소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봄마다 화사한 꽃을 피우는 왕벚나무는 염화칼슘 농도가 10%만 되어도 생존율이 33%까지 뚝 떨어진다. 살아남더라도 늦봄부터 잎 가장자리가 갈색으로 변하며 타들어 가는 증상을 보인다. 끈질긴 생명력의 대명사인 은행나무도 제설제 앞에서는 무력했다. 생존은 유지하더라도 늦여름이 되면 잎 끝부터 갈변하는 누적 피해가 공통적으로 관찰되었다. 겨울에 뿌린 제설제의 독기가 계절을 지나 여름까지 나무를 괴롭히는 셈이다.

문제는 제설제가 나무에 닿는 방식이다. 제설제가 직접 잎이나 줄기에 튀기도 하지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제설제가 섞인 눈을 가로수 아래에 산더미처럼 쌓아두는 행위다. 눈이 녹으면서 염분이 토양 속으로 스며들어 나무 뿌리를 절여버리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런 피해는 즉각 나타나지 않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서서히 발현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제설제 때문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채 나무를 방치하고 있다.

 

가로수 제설제 피해 수목 전경(이팝나무)

 

이에 국립산림과학원은 시민의 안전을 지키면서도 가로수를 살릴 수 있는 네 가지 개선안을 제시했다. 우선 제설제를 뿌릴 때는 가로수와 최대한 멀리 떨어진 보도 중앙부 위주로 살포해야 한다. 또한 제설제가 섞인 눈을 절대 가로수 밑에 쌓아두어서는 안 된다. 키가 작은 가로수 주변에서는 제설제가 잎에 직접 닿지 않도록 주의하고, 가급적 염화칼슘 대신 모래와 같은 마찰제를 적극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김선희 국립산림과학원 생활권도시숲연구센터장은 제설제가 도시 안전을 위한 필수 수단임은 인정하면서도, 잘못된 사용이 도시 경관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의 생명만큼이나 도시숲의 건강성도 중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뿌린 하얀 가루가 내년 봄 화사한 꽃나무의 숨통을 조이고 있지는 않은지, 이제는 도시 전체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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