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란교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못 알아보지만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그 인연을 살려낸다
요즘 길을 걷다 보면 간혹 아리송한 광경을 엿볼 수 있다. 배부른 들고양이가 도로변에 세워 둔 차량을 이불 삼아 그 밑에서 세상 편한 자세로 낮잠을 자고 있는데 통통하게 살찐 쥐가 그 옆에서 날 잡아 봐라 하며 어슬렁거리는 모습이다.
한 걸음 더 옮겨 공원 쪽을 바라보면 기우뚱거리며 먹을 것 달라고 사람을 줄기차게 쫓아오는 뚱뚱하게 살이 오른 닭둘기(필자는 잘 날지 않고 닭을 흉내 내는 비둘기를 닭둘기라 부른다)의 모습도 보인다.
하루 세끼 꼬박꼬박 뭘 해 먹을까? 날마다 고민하는 사람한테는 다른 사람이 차려주는 한 끼의 밥상이 말할 수 없이 큰 행복일 것이다. 이런 행복의 맛에 길들여져 배고픔을 모르는 이 녀석들은 조만간 인정 많은 사람들에게 매 끼니마다 맛있는 밥상을 차려내라 ‘야웅~~’, ‘구구구~~’ 하면서 큰소리를 칠 듯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층층이 육갑생(六甲生) 이름표를 붙인 아파트를 내놓으라 할 기세다. 참 인심 좋은 넉넉한 인연(人緣)을 만나 배부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쥐는 고양이 오줌에 들어 있는 펠리닌(Feilinine) 성분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고양이를 보면 천성적으로 도망가게 진화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미 젖 먹는 시기에 펠리닌 냄새를 맡으며 자란 쥐 이거나 몸집이 제법 큰 쥐는 고양이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공격하거나 편한 친구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고양이 앞에 선 쥐’라는 말은 이제 사라질 듯하다.
고양이가 쥐를 보고도 잡으려 하지 않고 함께 친구하려 한다면 과연 고양이라 할 수 있을까? 영양이 풍부한 사료를 배불리 먹어 체형이 커진 쥐는 어떠한가? 고양이를 보면 살기 위해 도망가야 마땅하거늘 천적인 고양이와 힘겨루기를 하려 한다. 고양이는 낮술에 취하고 쥐는 펠리닌에 취한 게 분명하다. 사람도 낮술에 취하면 부모도 못 알아본다 하더니만 딱 그 짝이다. 비둘기는 날개로 나는 본성을 잃어버리고 배가 불러서 더 이상 날지 못하고 기우뚱거리며 달린다. 마치 닭처럼 다리로만 걸어 다니려 한다. 넉넉한 인연(隣緣)을 만난 덕분인가? 아니면 배부른 타성에 맛 들려 배고픈 본성을 잃은 것인가?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 덕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돕는 사람이 있다)이라는 말이 있다. 나와 같은 생각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이웃이 있다는 것이다. 가까운 불은 먼데 있는 물로 못 끄고, 가까이에 있는 이웃사촌이 먼 친척보다 더 낫다고 한다.
나무가 마르면 오던 새도 안 오는 것처럼 무언가를 먼저 베풀어야 사람이나 동물이나 내 곁으로 다가온다. 여기저기 맛있게 차려놓은 밥상을 보고 어느 녀석이 다가오지 않겠는가? 아무런 노력 없이 감나무 밑에 누워서 홍시 떨어지길 기다리는 동물과 기회가 있으면 놓치지 않겠다고 감나무 밑에 누워 삿갓 미사리를 대고 있는 사람이 언제부터 이렇게 절친한 이웃이 되었을까?
바라기는 한쪽만 바라보도록 목이 굳은 사람이라 하는데 이 녀석들은 사람 바라기가 되어버린 모양이다. 사람도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나 인연 귀한 줄 모르고 내팽개치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높은 벽만 세워진다. 겹겹이 고독에 갇힌다. 그러다 보니 먹거리를 따라온 인연(因緣)들이 사람들의 소중한 말동무가 되고 사람들이 오히려 동물 바라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연의 점을 하나 둘 보태면 선이 되고, 선을 하나 둘 겹치면 면이 되고, 면을 하나 둘 포개면 공간이 되고, 공간에 인연의 점들을 흩뿌리면 이웃이 된다. 천생연분 만나는 참 좋은 인연(因緣),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 만나는 참 좋은 인연(人緣), 푸짐한 복(福)을 나눠주는 이웃 만나는 참 좋은 인연(隣緣), 그 인연은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되고 의미가 되고 큰 꿈을 이루는 원동력이 된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못 알아보지만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그 인연을 살려낸다고 한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석 달 장마 끝에 나오는 햇살처럼 그토록 그리던 바로 그 인연이다. 꼭 다시 만나고 싶어 가슴 쥐어뜯는 인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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