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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마당/이도연의 시선 따라 떠나는 사계62

명상의 숲을 걸으며 먼발치에 우뚝 솟아 힘차게 흐르던 산맥이 침묵 속에 고요하여 보이지 않는다 산이 구름을 가둔 것인지 구름이 산을 가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저들 홀로 자유로운데 사람의 사념이 산과 구름을 붙잡아 저 혼자 고민하고 괴로워하는구나! 구름은 구름대로 산은 산대로 시간이 흐르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을 아! 부질없는 사람의 마음아 너도 구름처럼 산처럼 저 홀로 자유로우면 좋을 것을! 키워드 #명상의숲 #이도연 #이치저널 #구름 #산맥 2024. 1. 19.
재개발 지역 그곳은 광야였다 사람의 땀방울은 애초부터 없었나 보다 수많은 사연이 풀뿌리처럼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은 골목이 사라진 후에 사람의 흔적 없는 민둥산은 고독만이 하릴없이 흙바람만 일으켜 세우고 버들강아지 하품하는 봄날에도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공터 차라리 폐허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 폐허는 흔적이나마 눈물겨운 자리에 존재할지라도 삶의 흔적조차 말끔하게 지워버린 재개발 지역의 공터는 공허하고 공허하다 높은 담 뒤 제7구역밖에는 결사 항쟁 붉은 깃발이 눈물로 충혈되어 두 눈 부릅뜨고 겨울바람에 흔들린다. 지는 노을이 아름다워 이곳에서 사진을 찍다 보니 매일 바라보는 노을 위치는 절기에 따라서 조금씩 좌측으로 이동하는 것을 알았다. 어제의 노을이 오늘의 노을이 아니다. 노을이 들판을 물들이는 장면을 바라보며 시.. 2024. 1. 12.
숲에서 만나는 인연 숲에서 만난 인연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병든 노모와 아들을 가끔 만난다. 산책 코스 중반쯤을 걸어가면 오솔길을 돌아 능선을 타고 정상으로 오르는 초입에 만나는 모자의 모습은 눈물겹도록 측은하거나 아름답다. 등산로 비탈 바닥에 누군가를 끌고 간 자국이 있어서 처음에는 아이들이 장난한 것으로 착각 했으나 갈 때마다 그 장소에는 신발이 끌린 흔적이 계속해서 있어서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 하며 궁금해 하였다. 그러나 어느 날 드디어 그 비밀을 풀게 되었다. 풍을 맞아 다리가 불편해져서 걸음을 잘 못 걷는 노모를 부축하여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로 운동을 나오는 것이었다. 경사가 제법 있어서 혼자 걷기도 불편할 텐데 노모를 부축해 산을 오르는 효심과 불편한 다리를 질질 끌면서 매일 산에.. 2023. 12. 29.
폐교 모두가 떠난 텅 빈 자리 동그란 운동장 위 네모난 교실이 두부처럼 납작 엎드려 외롭고 구석진 교실 후미에 골절상을 당한 의자의 삐걱 걸림이 늙은 고양이 울음소리를 삼키며 관절의 고통을 호소하며 누워있다 상처 나고 패인 책상에서 악동들의 익살스러운 웃음이 파란 곰팡이처럼 묻어나면 금이 간 유리창 너머 고개를 기웃거리는 실낱같은 한 줌 햇살이 유일한 위안이 되어 창살 아래 고여 든다 녹슨 시소는 무게중심을 잃어 운동장에 누워있고 아이들의 발자국 따라 잡초들만 무성하게 세월을 덮고 있다. 폐교였던 힐록 레스토랑의 불빛을 밀어내고 반환점의 중간 정도를 돌다 보면 사슴 같은 여인을 만난다. 자그만 키에 날씬한 체구의 여성인데 챙이 넓은 모자와 등에 조그만 배낭을 짊어진 여성분이다. 사슴 같다는 표현을 했는데 걸음.. 2023. 12. 22.
남해 가는 길 - 아득한 그리움의 바다. 5 보리암 가는 길 보리살타 옴마니 반매홈 천수경의 자락을 암송하며 깨달음의 보리를 찾아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여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오르고 또 오르고서야 만날 수 있었다. 가을로 붉게 무르익어가는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펼쳐진 모습은 남해의 비경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으며 황금빛 금산의 능선마다 기암괴석이 장승처럼 버티고 남해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득한 해무에 몸을 가리고 한 폭 수묵화를 그려 놓은 암회색 빛의 신비로운 다도해의 섬들은 몽롱한 꿈을 꾸는 모습으로 시야 가득히 들어와 바다에 옹기종기 모여 평화로이 바다를 품고 있다. 해안 단애를 간질이는 파도는 잔잔한 물결로 고요함을 밀어 올리며 보리암에서 울리는 독경 소리는 파도를 넘어 이 바다의 안녕을 구하는 염원의 울림처럼 들렸으며 보리암과 바다가 어우러.. 2023. 12. 1.
남해 가는 길 - 아득한 그리움의 바다. 4 다랭이 마을의 꿈 가천마을 다랭이 논은 국가 지정 명승 제1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산간 지방에서 벼농사를 짓기 위해 설흘산과 응봉산 비탈을 깎아 만든 계단식 논으로 바다를 향해 물 흐르듯 나아 있는 능선 위에 곡선의 결을 따라 백여 개의 층으로 일구어 산과 바다와 자연이 어우러진 모습으로 농촌 문화 경관이 수려한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 형성된 삶의 예술품이다. 인간이 자연과 함께 일구어 온 걸작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비탈은 바다로 내려서고 급경사의 좁은 땅에서는 농부의 헐겁고 가난한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조급한 마음과 수확의 결실을 위한 꿈을 꾸지만, 땅과 바다의 경계는 너무나 비좁아 농부의 마음은 산으로 바다로 땅을 넓혀도 수직의 세상은 하늘에 메이니 다랭이 마을 농토의 부피는 농부의 꿈처럼 더 이상 높.. 2023. 11. 24.
남해 가는 길 - 아득한 그리움의 바다. 3 언덕 위 고요한 독일 마을 파란하늘에 물빛으로 부서지는 가을 바다의 해풍이 실려 오는 이국적인 정취가 싱그러운 언덕에서 이방인의 마을에 또 다른 이방인이 되어버린 나는 그들의 일상 속에 어우러진 삶의 공간을 따라 걸어 들어간다. 독일 마을이라는 수식어와 이국적인 건물과 간판이 이 땅의 끝에서 만나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바뀌고 독일 쾰른 거리를 걷는 착각을 일으키며 독일식 식당에서 시원한 흑맥주 한잔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박미애 우리나라 근대 역사의 가난하고 헐벗어 암울했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뒤안길에서 만난 독일 마을의 풍경은 독일식 건축 양식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멋스럽게 지어져 있었으며 예쁘게 잘 정돈된 정원은 화사한 가을로 곱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화석이 되어 버린 것 같.. 2023. 11. 17.
남해 가는 길 - 아득한 그리움의 바다. 2 삼천포 대교를 넘어 다도해에 품에서 남해의 바다는 아름답고 고요한 물결 위에 어선들이 한줄기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자연과 바다 일부가 되어 떠 있고 삼천포대교는 바다를 가로지르며 섬과 섬을 결박하고 바다 위로 길을 낸다. 리아스식 해안의 복잡한 해안선이 육지와 절묘한 조화로 부드러운 단애가 풍요롭고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섬과 섬들을 하나의 풍경으로 묶어 놓았으며 섬들은 해풍에 그을리고 단풍으로 물들어 올망졸망 바다에 떠 있어 아름다웠으며 섬은 뭍을 그리워하고 뭍은 바다를 동경하며 서로를 부르며 시선 끝에 모이는 풍경은 물빛으로 반짝인다. 남해의 바다는 암청색 빛으로 세상의 모든 빛을 품어 어촌에는 풍요와 어민들에게 만선의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산맥의 끝이나 광야의 들판에서 다가온 사람들에게 바다는.. 2023. 11. 10.
남해 가는 길 - 아득한 그리움의 바다. 1 청명한 가을하늘이 밤사이 흐릿하게 젖어 있더니 아침 수은주가 5도까지 뚝 떨어져 서늘함을 느끼는 가을날 남해로 가는 분주한 아침에 이것저것 챙기느라 부산을 떨지만, 꼭 한두 가지 빼먹는 건망증 사이로 허전함을 달래며 길을 나선다. 복잡한 도심을 빠져나와 서해안 고속도로를 지나 홍성 방면으로 길을 잡아 경부고속도로를 경쾌하게 달려간다. 천안 삼거리 능수야 버들대신 산허리에 말갛게 핀 억새가 빛으로 반짝이며 투명하게 흔들린다. 높고 낮은 산맥들이 세를 불리며 푸르른 가을 하늘에 높이 닿았다가 들녘으로 고개를 숙이며 벌판을 달리는가 싶더니 이내 아침 연기를 피워 올리는 농가의 촌락 옆으로 숨을 고른다. 추수를 끝낸 들판은 허허로운 가을 들녘으로 횅하게 바람만 돌아들어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나무 아래에서 평화로운.. 2023. 10. 27.
거꾸로 걷는 섬 - 영종도에서 가을은 빛나는 계절처럼 싱그럽고 푸르른 하늘빛 바다로 왔으나 오늘은 쓸쓸한 침묵처럼 흐린 날씨가 아침 발걸음과 함께한다. 그래도 장렬 하는 빛의 인사를 받으며 걷는 따가운 가을 햇살보다는 괜찮아! 라는 위안을 스스로 하며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모두가 침묵하는 것이 불문율인 양 마스크 속에 미소를 감추고 하루의 일상을 시작한다. 우리나라 철도 역사의 종단점인 인천역은 암울한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서풍이 불어오는 바람처럼 과거의 눈물과 회한으로 녹슨 철로처럼 간직하고 과거의 명성을 한 몸에 누리던 수인선의 개통으로 새로운 희망과 번영의 길로 발걸음을 내디디며 철도의 종단점에서 새로운 길로의 여정을 시작하는 역으로 탈바꿈을 하였다. 인천역에서 출발하는 월미도 은하레일은 오랜 시간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듯.. 2023.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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