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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마당/이도연의 시선 따라 떠나는 사계

숲에서 만나는 인연

by 이치저널 2023.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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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만난 인연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병든 노모와 아들을 가끔 만난다. 산책 코스 중반쯤을 걸어가면 오솔길을 돌아 능선을 타고 정상으로 오르는 초입에 만나는 모자의 모습은 눈물겹도록 측은하거나 아름답다.

등산로 비탈 바닥에 누군가를 끌고 간 자국이 있어서 처음에는 아이들이 장난한 것으로 착각 했으나 갈 때마다 그 장소에는 신발이 끌린 흔적이 계속해서 있어서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 하며 궁금해 하였다. 그러나 어느 날 드디어 그 비밀을 풀게 되었다.

풍을 맞아 다리가 불편해져서 걸음을 잘 못 걷는 노모를 부축하여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로 운동을 나오는 것이었다. 경사가 제법 있어서 혼자 걷기도 불편할 텐데 노모를 부축해 산을 오르는 효심과 불편한 다리를 질질 끌면서 매일 산에 오르려고 하는 노모나 두 분이 다 대단한 효심과 열정으로 감동적이었다.

두 사람의 옆을 지나칠 때면 아무렇지도 않게 언덕을 올라가는 자신이 너무도 민망하고 죄스러웠으며 한편으로 헨렌 켈러의 기도문을 생각하면서 누군가에게는 하찮은 일이며 소소한 일상이 저분에게는 걷는다는 것 자체가 황홀한 기적을 경험하는 것이고 하늘을 향한 간절한 기도일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하고 저들의 힘겨운 노고가 하늘에 닿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어느 날 나는 그 기적을 보기 시작했다. 바닥에 끌리는 자국이 중간 중간 끊어지면서 노모의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지 조금씩 걷는 모습을 보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던가, 참 감사한 일이다.

저들의 바람대로 모자가 나란히 어깨를 마주하고 언덕을 오르는 모습을 상상하며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데 마침 까마귀 무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파란 하늘을 지붕 삼아 선회를 한다.

까마귀를 효조(孝鳥)라 부르는데 까마귀는 부화한 지 60일 정도는 어미가 먹이를 날라다 먹이다가 새끼가 둥지를 떠나도 무리 지어 생활을 함께한다. 어미가 늙어 먹이 활동이 불편해 지면 자식이 먹이를 물어다 어미를 먹인다. 까마귀를 보면 불길하다는 속설도 있지만 까마귀의 검은색 깃털 때문에 기인한 이야기로 추정되며 까마귀는 지능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미를 먹이는 이러한 습성을 반포(反哺)라 하며 극진한 효도를 이르는 말로 까마귀를 반포조(反哺조)라 부르기도 한다.

까마귀 울음소리를 들으며 오솔길을 걷다 보니 애완견과 함께 산책을 나온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나온 할아버지는 자신이 걷는 것보다도 강아지들에게 끌려가는 모습은 딱해 보이기도 하고 우스워 보이기도 한다. 편치 않은 몸으로 한 참 혈기 왕성한 강아지들을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나 사람과 동물이 서로 힘을 나누어 끌어주며 산행을 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어떤 아주머니는 절름발이 강아지와 항상 같은 시간에 산을 올라와 산책을 한다.

다리를 절름거리면서 부지런하게 주인을 쫓아가는 강아지의 충성심과 다른 강아지들처럼 재롱을 피우지 못하고 조금은 부족한 강아지 일지라도 매일 함께 시간을 가지고 서로 교감하고 사랑을 주는 것이 들개를 생각하며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반려견과 함께 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산행을 온 것인지 동해 해변으로 피서를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현란한 복장과 날씨가 흐리든 해가 지든 관계없이 검은 선그라스를 끼고 나타나는 부부의 모습도 보기가 좋을 뿐 아니라 연세가 지긋하신 노부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때로는 잔소리도 해가며 투덜거리고 다투다 비탈이 나오면 부축을 하면서 숲길을 걸어가는 황혼의 노부부 모습은 한참을 쳐다보아도 지루하지 않다. 저렇게 살아가며 늙어가는 것이구나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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