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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마당/이도연의 시선 따라 떠나는 사계

남해 가는 길 - 아득한 그리움의 바다. 5

by 이치저널 2023.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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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암 가는 길

 

보리살타 옴마니 반매홈 천수경의 자락을 암송하며 깨달음의 보리를 찾아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여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오르고 또 오르고서야 만날 수 있었다. 가을로 붉게 무르익어가는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펼쳐진 모습은 남해의 비경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으며 황금빛 금산의 능선마다 기암괴석이 장승처럼 버티고 남해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득한 해무에 몸을 가리고 한 폭 수묵화를 그려 놓은 암회색 빛의 신비로운 다도해의 섬들은 몽롱한 꿈을 꾸는 모습으로 시야 가득히 들어와 바다에 옹기종기 모여 평화로이 바다를 품고 있다.

해안 단애를 간질이는 파도는 잔잔한 물결로 고요함을 밀어 올리며 보리암에서 울리는 독경 소리는 파도를 넘어 이 바다의 안녕을 구하는 염원의 울림처럼 들렸으며 보리암과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는 나는 아득한 절경에 취해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벅차오르는 감격에 어찌할 줄 모르고 장승처럼 서 있다.

차라리 눈을 감고 바다에 귀를 기울이자 다도해를 떠다니는 섬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섬은 서로를 품에 안고 바다를 밀고 당기며 원양의 바다에서 들려오는 이별과 그리움의 이야기를 잔잔한 바다의 교향곡으로 노래한다.

 

 

보리암은 햇볕이 따스하게 번지는 양지바른 곳에 둥지를 틀어 안락했고 해풍이 다정하게 불어오는 금산의 산 중턱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다. 다도해를 바라보는 해수관음보살은 인자한 미소로 대중을 내려다보고 이순신의 바다를 품에 안으며 이 땅과 바다를 수호하며 대중을 향한 자비의 눈빛으로 구도의 바다에 불법을 전한다.

보리암에서 남해를 바라보는 해수관음보살의 시선은 그러할진대 이곳에서 기도하며 무소유의 삶을 살아간 법정의 시선 끝에 보인 것은 무엇이었을까?

법정이 그토록 버리고 싶어 했던 것은 그가 걸친 넝마 같은 법복도 아닐 것이며 주머니에 들어 있는 그가 소유한 알량한 소지품도 아니었을 것이다.

법정이 구도를 향한 일념으로 진정 버리고자 했던 것은 마음속에 해묵은 욕심과 증오와 소유하려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토악질하듯이 버리고 미련 없이 내려놓고 싶었을 것이며 내려놓으려는 그의 몸부림조차도 욕망의 끝이라 생각하여 괴로워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가파른 벼랑을 타고 바다로 난 길로 이정표가 붙어 있다. 태조 이성계가 기도하던 곳으로 급경사를 따라 이백 미터를 내려가자 절벽 사이에 자그만 전각이 단아한 모습으로 지어져 있다.

오백 년 도읍의 기틀과 법을 세우고 이곳에서 기도하던 태조 이성계가 마음에 품고 있던 불심의 끝에는 무엇이 보였을까? 모셔진 위패에서는 이성계의 마음은 보이지 않았다.

유교와 사대부의 나라를 세우면서도 그의 마음속에 불심이 타올라 이곳 해안 절벽에 은거하면서 무엇을 얻고 싶고 가지려고 관음보살 앞에 무릎을 꿇고 빌고 소망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이성계는 기울어가는 고려를 걱정하여 백성을 구하는 방법이 자신이 나라를 세우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오백 년 도읍의 번성과 그의 야망을 위해 불법을 구하려 했겠지만, 그날의 믿음은 바래 버린 암자의 단청만큼이나 희미한 기억 속에 해풍처럼 흩어진 지 오래고 암벽 벼랑 위에 서 있는 자그마한 전각은 고독한 바람 앞에 남해를 바라보며 역사의 일들을 지금도 말 없는 침묵으로 대변한다.

해수관음보살의 마음은 대중을 위한 자비의 마음이었을 것이고 법정의 마음은 버려서 구하는 것이요 태조의 마음은 채워서 구하는 것이었을 것이나 그들의 마음의 공통점은 대중을 위한 사랑과 구함이라는 명제 앞에 기꺼이 함께 합장하였을 것이다.

이런저런 사념을 떨쳐버리고 아련한 바다로 눈을 돌려 언제 다시 마주할지 모르는 남해의 비경을 바라보며 눈과 가슴에 담아 본다.

보리암에서 바라다 보이는 다도해의 아름다움은 숨이 막힐 지경이다. 보리암 처마 밑에 바다가 걸쳐 있고 기암괴석의 발아래에서 물결처럼 밀리고 바람으로 다가오는 섬들은 해무에 실려 오는 허상이며 실상이다.

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단애의 비경 속에서 나도 낙락장송의 한쪽에 뿌리를 내리고 나무가 되고 바다의 풍경이 되었다.

오랜 시간 화석이 되어 병풍처럼 자리를 떠날 줄 모르고 그곳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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