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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마당/이도연의 시선 따라 떠나는 사계

재개발 지역

by 이치저널 2024.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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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광야였다

사람의 땀방울은

애초부터 없었나 보다

 

수많은 사연이

풀뿌리처럼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은 골목이 사라진 후에

 

사람의 흔적 없는 민둥산은

고독만이 하릴없이

흙바람만 일으켜 세우고

 

버들강아지 하품하는 봄날에도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공터

 

차라리 폐허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

폐허는 흔적이나마

눈물겨운 자리에 존재할지라도

 

삶의 흔적조차 말끔하게 지워버린

재개발 지역의 공터는

공허하고 공허하다

 

높은 담 뒤 제7구역밖에는

결사 항쟁 붉은 깃발이

눈물로 충혈되어

두 눈 부릅뜨고 겨울바람에 흔들린다.

 

 

지는 노을이 아름다워 이곳에서 사진을 찍다 보니 매일 바라보는 노을 위치는 절기에 따라서 조금씩 좌측으로 이동하는 것을 알았다.

어제의 노을이 오늘의 노을이 아니다.

노을이 들판을 물들이는 장면을 바라보며 시를 낭송하듯 하는 영화 『변산』의 한 장면의 대사가 생각난다.

 

“매일 보는 노을인데 장엄하면서 예쁘고 예쁘면서도 슬프고 슬픈 것이 저리 고울 수가 있을까!” “우리 마을은 패항, 우리 마을은 가난해서 자랑할 것은 노을밖에 없다.”

나 또한 매일 보는 노을이지만 올 때마다 다른 노을을 찍어서 지인들에게 자랑하는 나만의 노을이 가슴 뛰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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