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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마당/이도연의 시선 따라 떠나는 사계

폐교

by 이치저널 2023.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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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떠난 텅 빈 자리

동그란 운동장 위 네모난 교실이

두부처럼 납작 엎드려 외롭고

 

 

구석진 교실 후미에 골절상을 당한

의자의 삐걱 걸림이

늙은 고양이 울음소리를 삼키며

관절의 고통을 호소하며 누워있다

 

상처 나고 패인 책상에서

악동들의 익살스러운 웃음이

파란 곰팡이처럼 묻어나면

 

금이 간 유리창 너머 고개를 기웃거리는

실낱같은 한 줌 햇살이 유일한 위안이 되어

창살 아래 고여 든다

 

녹슨 시소는 무게중심을 잃어

운동장에 누워있고

아이들의 발자국 따라

잡초들만 무성하게 세월을 덮고 있다.

 

 

폐교였던 힐록 레스토랑의 불빛을 밀어내고 반환점의 중간 정도를 돌다 보면 사슴 같은 여인을 만난다.

자그만 키에 날씬한 체구의 여성인데 챙이 넓은 모자와 등에 조그만 배낭을 짊어진 여성분이다. 사슴 같다는 표현을 했는데 걸음이 얼마나 빠른지 눈앞에 보이는가 싶으면 벌써 저만치 달아나고 바로 앞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모퉁이를 돌아서면 벌써 시야에 아른거릴 정도로 멀리 사라지는 것이 꼭 사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에서 등산동호회를 만들어 열심히 산에 다닐 무렵 후배가 등산에 관해서 일장 연설을 하며 자기 자랑을 한다.

흔히들 말하는 관악산 날 다람쥐가 바로 자기라며 어느 산을 가든지 제일 먼저 오르고 제일 먼저 내려오며 누구와 시합을 해도 자신이 있으며 자신의 과거를 소환하여 군 시절 특수부대 소속으로 산에 관한 한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호언장담을 하는 후배에게 그때 딱 한 마디 해준 기억이 난다.

오래 다니려면 게으른 산행을 하고 천천히 다니라고 말해 주었는데 세월이 몇 년 흐른 뒤에 그 친구를 만나서 요즘도 열심히 산에 다는 거야? 하고 물으니 관절에 이상이 생겨 수술 한 후에 전혀 산에 갈 수가 없다고 민망해하는 후배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급하게 먹으면 체하는 법이고 아무리 좋아하는 운동이라도 무리하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겨울 숲으로 가는 길은 천천히 명상 하면서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산행은 모름지기 게으른 산행을 하라고 말하고 싶다.

등산을 한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입산을 통해서 자연에 품에 안기는 것이 오른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등산 대회를 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경주를 하는 것도 아닌데 죽기 살기 식으로 무리하게 산에 오르다 보면 산에 다녀온 후에 별로 남는 것이 없다.

게으른 산행을 통해서 숲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자연의 생태계를 관찰하고 계곡의 물소리를 들어 보기도 하고 스치며 지나가면 보이지 않는 조그만 야생화의 얼굴도 사진에 담아가면서 게으른 산행을 하다 보면 자연에 품에서 더욱 행복할 수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고은 시인의 시처럼 “올라갈 때 못본 그꽃, 내려갈 때 보았네”와 같은 시어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의 글귀가 게으른 산행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표현인 것 같다.

빨리 가자고 산행을 재촉하는 친구에게 한마디 선문답을 던진다.

여보시게 친구 어차피 가야 하는 인생 뭐가 그리 급해서 빨리 가려고 하는가? 안 그래도 빠르게 가는 세상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흐르는 것이 세월인데 천천히 노닐다 가세나! 오늘 못 가면 내일 가고 내일 못 가면 한 세상 쉬어나 가세! 숲은 그런 것이라고 게으른 산행을 하자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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