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화력발전소 건립 막고 해양보호구역지정도 이끌어
"바다의 신음소리, 핏빛 울음소리가 들렸다"
주민의 힘으로 해양보호구역 지정
1965년생 지욱철, 통영이 고향인 그의 집은 바닷가에 널리고 널린 노 젖는 배 하나 없었다. 갯벌을 막아서 만든 논은 소금기가 많은 데다 논으로 끌어댈 물줄기는 멀어 하늘의 비만 바라보는 처지였다. 지욱철은 가난을 이겨보겠다고 해양과학대학 통신과를 나와 스물두 살 되던 1987년 원양상선에 몸을 실었다. 당시 대기업 초임이 30만 원 안팎일 때 첫 월급으로 백만 원을 받았으니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
잘나갈 것 같았던 원양상선 생활은 6년쯤 되었을 때 고비가 찾아왔다. 영국에서 스페인으로 가던 바닷길에서 몸에 종기가 심해 항생제를 먹었는데 차도가 없자 여러 알을 움켜 넣었다. 이내 정신이 몽롱해지며 그는 쓰러지고 말았다. 어린 시절 부모 따라 교회를 다녔던 그는 앓는 내내 "하나님 살려주세요. 살아나면 목사가 되어 당신의 종이 되겠습니다"라고 기도를 올렸다.
덕분인지 정신을 되찾고 스페인에 도착해 제대로 치료를 받았다. 지욱철은 그후 하와이 해역에서 참치잡이 어선에게 기름과 부식을 대주는 일을 잠시 하다 대서양에서 했던 다짐대로 1994년 성결대학교에 편입해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통영화력발전소 건립 저지에 앞장서다
지욱철은 견내량의 맞은바라기인 선촌마을 언덕에 한옥 교회를 지었지만 정작 목회활동보다는 통영바다를 지키는 일에 열중하였다. 현대산업개발이 2012년 옛 성동조선소 부지에 화력발전소 건립을 추진한 게 계기였다.
통영의 앞바다 견내량은 거제도가 앞에서 태풍을 막아줘 물살이 잔잔하다. 때문에 부근 진해만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굴양식장이 있고 멸치와 전어 등 여러 물고기가 살고 있다.
여기에 발전소가 들어서면 바닷물을 끌어다 발전기를 식혀야 하므로 빨려 들어가는 플랑크톤이나 치어들은 생명을 잃게 된다. 365일 따뜻한 물이 쏟아져나오고 염소와 같은 화학물질까지 흘러나올 테니 양식업은 큰 타격을 입을 것이고 물고기들도 큰 고통을 겪게 된다.
지욱철은 당시 교회에서 '한길아카데미'라는 인문학강좌를 운영하며 서울에서 송기득, 김민웅, 기세춘 같은 훌륭한 강사들을 모셔왔다. 세상은 기도만으로 변하지 않기에 '주민들과 함께 깨어나자'는 생각에서였다.
화력발전소 건설이 본격 추진되자 지욱철은 한길아카데미 회원들과 함께 저지투쟁에 나섰다. 그는 굴이나 멍게피해대책위원회와 같은 당사자 조직들을 세우고 어촌계, 수협같은 주민 조직을 일으켜 세웠다. 이 힘을 토대로 '통영화력발전소저지 시민사회단체연대'를 만들고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2002년 서른여덟 살 때 큰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어 휠체어로 움직여야 함에도 홍보 활동을 하며 집회를 꾸리고 통영시청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당시 김동진 시장은 발전소를 통한 지역경제 이득이 큰지 수산업을 지키는 게 더 나은지를 따져 최종 결정하겠다고 했으나 산자부로부터 발전소 허가를 받은 현대산업개발은 통영시의 건설 인허가를 계속 촉구했다.
밀고 당기는 오랜 싸움에서 전기가 된 건 2017년 대통령선거, 문재인 후보가 화력발전소 축소를 공약으로 내걸고 통영 어민과의 대화에서 "어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약속하고 당선되면서다. 2017년 5월 산업자원부는 통영화력발전소 건립허가를 취소시켰다. 6년에 걸친 싸움이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이다. 지욱철이 어민들과 시민들의 힘을 모아 이뤄낸 결실이었다.
"바다의 신음소리, 핏빛 울음소리가 들렸다"
지욱철은 발전소건설 반대투쟁을 하면서 거제와 통합되었던 통영환경운동연합의 지역조직을 재건하고 2013년에 의장이 되었다. 지욱철은 "환경운동을 하면서 바다가 새롭게 다가왔다. 바다의 신음소리, 핏빛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통영은 아름다운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해안가에 다가가 보면 온통 쓰레기 천지였다. 페트병같은 1회용 플라스틱에 어민들이 버린 스티로품 부표, 그물, 밧줄, 통발이 여기저기 그득했고 바닷속에 가라앉은 쓰레기 더미는 얼마가 될지 가늠조차 안 되었다.
지욱철은 2014년 가족과 함께 해안가 쓰레기부터 치우기 시작했다. 당시 막 재건된 환경운동연합 회원의 힘은 미약했고 그가 휠체어를 타고 있으니 고등학교 1학년이던 아들과 아내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아들의 노력은 친구들에게 알려져 '1급수 사람들'이라는 환경동아리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변화가 일어났지만 정작 어민들은 여전히 어업쓰레기를 바다에 마구 버리고 있었다.
지욱철은 2018년 견내량 해양쓰레기 정화 사업에 나선다. 이 지역의 '숙의민주주의 연구소' 장용창 소장이 "쓰레기를 치우면서 주민이 소득을 얻는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고 지욱철 의장이 '사회복지모금회'에 제출할 사업기획서를 썼다.
이 모금회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혁신적이고 파급효과가 큰 비영리단체의 사업을 발굴·지원하던 참이었다. 무려 1100여 개 단체가 지원한 가운데 지욱철 의장이 낸 기획안이 55개 중 하나로 채택돼 사업비 5억 원을 지원받게 되었다.
통영환경운동연합은 선촌마을 주민을 중심으로 환경연회원, '1급수 사람들' 등과 함께 3년 동안 매주 2회 한 해 8개월 동안 쓰레기를 치웠고 덕분에 견내량 일대 해변가는 눈에 띄게 깨끗해졌다. 참여한 주민들은 일당 5만 원까지 받았으니 마당 쓸고 돈도 줍는 격이었다. 해양쓰레기 조사 전문업체를 통해 선촌마을 방파제를 비롯 인근 섬들에 엄청난 쓰레기 더미들이 가라앉아 있는 것까지 밝혀냈다.
이 활동을 강구안 등 통영시 여러 곳에서 사진전시회를 열어 어민들과 시민들에게 알렸는데 그 메아리가 컸다. 그러면서 어민들도 바다에 무심코 버리던 그물과 밧줄을 되가져 왔고 어업 쓰레기 마대자루에 담아 지정된 장소에 버리기 시작했다.
주민의 힘으로 해양보호구역 지정
지욱철은 해양쓰레기를 치우는 사업과 함께 견내량 내 선촌마을 앞바다를 '해양보호구역'으로 만들고픈 바람이 있었다.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환경관리도 나아지고 발전소 건설을 막는 데도 좋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문제는 어민들의 태도. 그들은 해양보호구역이 되면 어업이나 양식업에 규제를 받을까 봐 반대했다. 국제적인 멸종위기종 '해마'를 내세웠지만 분위기를 누그러뜨릴 수는 없었다. 지욱철은 밑으로부터 어민들 내에서 공감을 이루기 위해 2015년 선촌마을의 화삼어촌계 계장에 출마했다.
그리고 주민들과 함께 순천만 갯벌, 고창의 운곡 같은 람사르 습지 지정구역을 둘러보았다. 그곳에서 확인한 게 환경이 보존되니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지역의 가치가 더 커졌다는 사실. 게다가 어업에 제약이 없음은 물론 지역 수산물에 '해양보호구역 생산물'이라는 인증 마크까지 붙일 수 있고, 바닷속 쓰레기를 치우는 예산까지 지원된다 하니 주민들이 변했다. 그렇게 2017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지역 어촌계가 '해양보호구역 지정'을 요청하고 나선 것이다.
용남면 화삼리 선촌마을 앞바다에는 거머리말·포기거머리말 등 해초류와 풀망둑·복섬·감성돔·보리새우 같은 주요 어류가 살고 통영 시내와 가까우면서도 1등급 수질을 유지하고 있었다. 또 주민들이 자기 손으로 '해양정화 사업'을 하고 있으니 공인받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해양수산부는 마침내 2020년 2월 14일 용남면 소우초도에서 동쪽으로 소류도 인근까지 남쪽으로는 이순신공원 인근 해역까지 약 1.93㎢(58만 3825평)되는 선촌마을 앞바다를 '해양생태계보호구역'으로 지정하였다.
이때 지욱철은 "환경운동은 이상적인 가치를 주장하는 것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주민들이 깨닫고 스스로 실천할 때 이루어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바다 속 잘피 숲
지욱철은 '해양보호구역지정'을 이뤄내자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보호구역 지정의 까닭이 되었던 '잘피숲'을 되살리는 사업에 착수한 것이다. 잘피는 바닷물 속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여러해살이풀로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만들어내는 귀한 존재다.
잘피숲에서는 물고기가 알을 낳고 복어·새우·낙지 등 다양한 어종이 산다. 견내량 앞바다에 무려 300만 평이나 되는 잘피숲이 있었는데 굴이나 멍게양식, 바다 쓰레기에 조선소 폐수 등이 쌓이면서 많이 줄어든 상황이었다.
문제는 잘피를 복원하는 기술. 그동안은 건강한 잘피를 뽑아 숲을 만들려는 곳에 옮겨심는 방식을 택했는데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방식인 데다가 모래 속으로 뿌리를 내리는 게 쉽지 않아 거의 쓸려가고 말아 오히려 훼손이 더 심해졌다.
지욱철은 오랫동안 잘피숲 되살리기 방법을 고민했다. 어는 날 잠자리에서 퍼뜩 떠오른 방법이 잘피도 식물이니 농사 경험을 써보자는 것.
"배추 모종 키우듯 어상자에 잘피싹을 키워 나무상자 통째로 옮겨 심으면 되겠더라구요. 나무상자는 자연으로 돌아갈 터이니 환경문제도 없고, 열 뿌리를 옮겨 심으면 오십뿌리가 올라오더라구요."
결과는 성공이었다. 역시 주민들과 힘을 모아 여러 시도를 한 덕분이었다. 이렇게 성과를 내기까지 지욱철은 통영시민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고자 선촌마을에서 2018년부터 '잘피음악제'를 열었다. 또 최근에는 통영시민 백 명이 참여한 '잘피 선언 100'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통영바다는 쉬이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지욱철은 이제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통영환경운동연합 의장을 내려놓으면 아내와 손잡고 좋은 곳을 여행하며 살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서른여덟 젊은 날 그에게 찾아온 '하반신 마비'는 아내와 아들에게도 큰 고통이었다. 지욱철이 좌절 속에 빠져있을 때 그를 일으켜 세워준 것은 신명기 29장 29절.
"숨겨진 것은 우리 하느님 야훼께서나 아실 일이다.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언제까지나 할 일은 이미 드러난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법에 있는 모든 말씀대로 실천할 뿐이다."
목회공부를 하며 수없이 읽으면서도 무심코 지나쳤던 글귄데 어느 날 사무치게 다가왔다. '숨겨진 것'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일이고 '이미 드러난 일'은 오늘을 사는 내게 벌어진 일. 지욱철은 이 구절을 되새기며 본인에게 닥친 불행을 받아들여 "오늘을 살아내기로" 마음을 먹고 삶의 자세를 추스렸다.
물론 그 옆에는 아내가 있었다. 그가 원양상선을 그만두고 기도원에 들어갔을 때 아내는 그곳에서 재생불량성 빈혈로 투병 중이었다. 지욱철은 아내에게 마음이 이끌려 정성으로 돌봤고 그 인연으로 신학교 3학년 때인 94년 8월 13일 결혼식을 올렸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하반신 마비가 된 이래로는 20년 동안 아내가 함께 해줬다.
그동안 지욱철은 통영환경운동연합 의장으로서 많은 일을 이뤄냈다. 하나님의 종이기보다는 통영바다의 종이자 지킴이로 살았다. 덕분에 월 후원금이 1200만 원이나 들어올 정도로 환경운동연합은 지역에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여전히 많은 과제가 놓여 있다. 다시 떠오른 게 화력발전소건립문제, 현대산업개발은 발전소허가 취소에 맞서 행정소송을 냈고 2019년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지금 현대산업개발은 통영의 안정국가산업단지에 화력발전소 건설을 다시 추진하고 있으니 이 기후위기시대에 참으로 난감한 노릇이다.
게다가 바다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는 그물과 밧줄들, 지금도 스티로폼 부표에서 매일 만들어지는 수억 개의 미세플라스틱, 옛 조선소에서 배출돼 바닷가에 켜켜이 쌓인 중금속 등등. 그리고 일본이 배출하기로 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는 하루하루 날짜가 다가오고 있으니 지욱철의 시름은 이래저래 깊을 수밖에 없다.
지욱철, 그는 하루종일 휠체어에 앉아 있어야 하기 때문에 몸에서 욕창이 떠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치료를 위해 1년에 한 번은 요양기를 가져야 한다. 이제 후진에게 의장 자리를 물려주고 건강도 돌보면서 아내와 떠나고 싶건만 통영바다는 쉬이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못 다한 이야기
◆ 2019 년에는 해양폐기물법이 만들어지면서 바다쓰레기를 청소업체에게 위탁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나 어민단체에게 맡길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만들어졌다. 지욱철이 추진한 '견내량 해양쓰레기 정화사업' 모델이 전국의 바닷가로 뻗어나갈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 지욱철이 개발한 잘피 이식방법을 토대로, 2021 년 하반기에 한국수산자원공단과 경상남도 사회혁신추진단에서 화삼어촌계와 함께 모판을 활용한 잘피 육성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한국수산자원공단은 예산과 기술 지원, 경상남도는 행정적 지원, 화삼어촌계 어민 30 여 명은 모판을 활용한 잘피 이식과 씨앗 심기와 관리,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은 모니터링으로 잘피 바다숲 조성에 협력한다.
◆ 지난 4월 26 일 통영시 이순신 공원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규탄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는 굴·멸치·멍게 관련 어민단체, 욕지·사랑 수협과 지역별 어촌계까지 통영의 거의 모든 어민들이 주최, 주관으로 참여했다. 코로나로 대회장에는 99 명만 모였지만 이순신공원 앞바다 그리고 사량도와 욕지도에서 300 척에 가까운 배가 뱃고동을 울리고 펼침막을 바람에 날려 분위기는 뜨거웠다.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에 흘려보낼 경우, 많은 전문가들은 통영과 제주도 앞바다에 1년 내에 다다를 것이라고 내다본다. 일본정부는 저장탱크를 더 많이 짓거나, 고체화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음에도 2021 년 4월 13 일 오염수 처리 방식을 해양방류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들이 말하는 다핵종 제거설비로 농도를 묽게 한다 해도 벌써 130 만 톤에 달하는 오염수의 세슘, 요오드, 삼중수소가 바다에 들어갈 건 뻔하다. 통영은 바다 없이는 살 수 없는 땅, 이 물이 들이닥치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렇기에 13 만 시민은 너나 할 것 없이 일본 정부를 성토하고 나선 것이다.
'스토리마당 > 민병래가 만난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정기술 보급하는 활동가, 이승석 (0) | 2022.08.31 |
---|---|
'사할린 독토르' 손병덕 (0) | 2022.06.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