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란교
외계어가 난무하는 세상, 소통이 불통
요즘 유행하는 말을 들여다보면 ㄱ ㄷ ㅂ ㅅ ㅈ 의 발음이 ㄲ ㄸ ㅃ ㅆ ㅉ 으로 점점 더 센 발음이 많아지고 있다. 감(監) 깜, 강(强) 깡, 기(氣) 끼, 생(生) 쌩, 장(長) 짱, 전(錢) 쩐, 진(眞) 찐 등등. 된소리는 센 발음을 동반하니 예사소리보다 더 강하고 단단한 느낌을 준다. 센 말을 하면 잘난 사람 우월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된소리를 하면 정말 힘이 센 사람이 되는 걸까?
아주 짧은 단어조차도 줄임을 하여 발음도 어색하고 느낌도 이상하고 뜻도 엉뚱하게 바꾸어 놓는다. 국적이 애매모호한 단어를 혼용하고 조합하기도 하며 접두사나 접미사를 붙여서 그 뜻을 강조하거나 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끼리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유행어를 순식간에 만들어낸다. 센 말을 해야 센 사람이고 줄임 말을 잘 이해해야 신세대에 끼일 수 있는가 보다.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순수한 우리말은 밋밋해서 자꾸 무언가를 덧대려 하는가?
요즘에는 어떻게든지 자신의 감정을 더 강하게 표현하고자 더욱 더 센 말을 찾는다. 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려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너보다 더 센 사람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과시하려는 것일까? 무시당하는 것이 싫어서 절대로 밀리지 않겠다는 약한 마음을 숨긴 체 선제공격을 하는 것은 아닐까?
끝판 세상에서는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찐짱이라 주장한다. 생존경쟁이 심해지니 너도나도 살아남기 위해 더 센 깡다구로 견뎌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몇 가지 단어를 예로 들어본다. 갑툭튀, 개고생, 개이득, 뇌피셜, 라방, 마통, 문빵, 빼박캔트, 쌉가능, 존맛탱, 줌공, 짱이다, 쩐다, 초격차, 핵노잼, 힙하다 등등. 처음 듣다 보면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이것은 뭥미? 마치 비밀정보요원들이 사용하는 비문(秘文) 같은 느낌이 든다. 온전한 우리말이 영혼마저 떠나면 어찌할꼬. 단어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뜻이 어지럽게 덧대어지고 쪼개지면 아싸들만의 암호놀이에 멈출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외국에 있는 바이어에게 통신문을 보내고자 할 때는 텔렉스와 팩스를 주로 이용했었다. 글자 수를 줄이기 위해 서로 약속된 축약어를 사용했다. 자수를 줄이면 용지도 줄고 타이핑 하는 시간도 줄고 비용도 절약되니 일석삼조였다. 요즘에는 인터넷이 발달하여 전 세계 어디든지 손쉽게 접속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SNS를 통한 의사소통도 시간 제약 없이 가능하다. 더구나 화상통화도 쉽게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들의 단어가 유행한다.
인싸들이 하는 말이 공중파를 타거나 SNS에 퍼지면 그를 좋아하는 인싸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며 그 말을 순식간에 유행어로 만들어낸다. 말투까지도 그대로 흉내를 낸다. 통하는 사람들끼리는 뭉침도 재빠르다. 세상이 이렇다 보니 우리들이 사용하는 말이나 단어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뜻이 갈라지고 또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고 있다.
쉰 세대는 신세대를 결코 이해할 수도 따라갈 수도 없을 정도다. 같은 말을 하고 있지만 뜻이 달라 의사소통이 꽤 어렵다. 나는 할 말 다 했는데 못 알아듣는 네가 바보라고 외친다. 층간 소음에 찌든 위층 사람과 아래층 사람이 내뱉는 다툼의 말을 들어 보았는가? 다 큰 어른과 갓 태어난 아이 사이에서 웅얼거리는 말을 걸고 있는가? 비싸게 팔아야 하는 사람과 싸게 사고 싶은 사람들이 하는 흥정의 말은 어떠한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서운하다고 하는 미운 말을 엿듣고 있는 느낌이다. 같은 말이지만 마음은 다른 세상에 있다.
말이 세지고 된소리가 늘어나고 덧대거나 줄임 말이 유행하는 현상을 어찌 바라보아야 할까. 온전한 한 문장 한 단어도 지루하게 생각하고 그 짧은 순간마저도 참으려 하지 않는다. 말을 온전히 다하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지 말을 쑥딱쑥딱 자른다. 그만큼 기다림은 바쁘다. 손톱에 다양한 인조 손톱을 덧붙이듯 마음 바쁜 사람들은 문자나 기호 이모티콘 등을 사용하여 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들만의 놀이문화를 만든다. 다른 이방인들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인싸가 큰소리치면 아싸는 설 데가 없고 그럴싸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인싸가 아싸를 무시하니 그럴싸인 척할 수밖에 없다. 따뜻한 봄이 오면 인싸와 아싸들 사이에 공감과 공명(共鳴)의 징검다리를 놓을 수 있을까? 마음이 멈춘 곳에서 고사리 손으로 마음의 길 말의 길을 이어보고 싶다.
* 인싸 : Insider의 준말, 잘 어울리면서 모임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사람
* 아싸 : Outsider의 준말, 잘 어울리지 못하고 모임에서 겉도는 사람 * 그럴싸 : 인싸도 아싸도 아닌 그 중간에 속한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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