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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게으름을 모르는 그녀, 박상영 소프라노

by 이치저널 2021.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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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가람 기자 choikaram88@naver.com

 

 

내면이 강한 그녀, 박상영
욕심많은 그녀, 시작하면 제대로 해본다

 

 

“바꿀 수 없다면 잊고 사는 게 행복하지요.”

'플레더마우스 : 박쥐' 1막 피날레에 나오는 부분이다. 인간 내면의 이주성을 풍자한 비엔나의 대표적 오페레타, '플레더마우스 : 박쥐'를 오는 9월 24일부터 이틀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로잘린데’ 역을 맡은 소프라노 박상영의 톡톡 튀면서도 우아한 목소리로 청중을 매료시키는 그녀를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소프라노 박상영, 그녀만의 매력은 무엇일까?

 

 

유년 시절, 그리고 음악

6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어린 박상영은 피아노 치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 한다. 부모님께 투정도 많이 부렸다고.

“사실 저는 피아노 치기에는 손이 비교적 작은 편에 속했어요. 그래서 피아노를 치면 아프고 잘 치려고 노력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어머니께 피아노 치기 싫다고 투정도 많이 부려보았지만, 당시에는 음악을 배우는 사람 대부분이 피아노를 기본적으로 배워야 하는 풍조가 있다 보니, 대세에 맞출 수밖에 없었어요.”

피아노 치라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내키지 않은 피아노 레슨을 받는 어린 박상영. 그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힘든 기억이 남아있다고.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피아노를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이 피아노를 치기 위해서는 손가락 사이를 찢어야 할 만큼 더 벌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때 저는 ‘아.. 이건 아니다’하는 마음에 부모님께 피아노를 그만두고 공부하겠다고 선언했어요. 그러다가 카르멘 오페라를 보게 되었는데, 그 오페라의 멜로디가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너무 아름다운 멜로디에 제 맘을 뺏겨버렸거든요. 이후 매일 밤 라디오를 켜서 오페라 가곡들을 듣게 되었어요."

오페라 카르멘을 접한 것이 계기가 되어 고등학교 1학년 때, 성악을 시작하게 된 그녀. 항상 부모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던 그녀가 피아노를 그만두겠다고 자신의 선택을 부모님께 선언했다는 것은 그 당시 소녀 박상영에겐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녀는 왠지 하나의 투쟁에서 승리하였던 것을 회상하는 듯했다.

“생각해보면, 다른 또래 친구들에 비해 늦은 편이었어요. 미국 유학 당시에도 느낀 점이지만, 다른 또래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성악을 전공하기 위해 공부해왔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입시 준비에 맹진하는데, 저는 그때부터가 시작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다른 아이들하고 경쟁하느라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성악을 공부하면서 지도해주시던 선생님들이 재능이 있다고 많이 격려해주셔서 용기를 가질 수 있었어요.”

 

 

무언가를 하려고 마음먹고, 주변을 돌아보면 남들에 비해 늦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일찍 시작한다고 결과가 모두 좋다는 보장은 없다. 중요한 것은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것’,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것’, ‘정말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인지를 알고, 또한 ‘끝까지 스스로 책임진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난 원래 꿈이 없어요”, “취직해야 하니까...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나요?”, “전 가능성이 없어요” 등 참 많다. 그런데 이런 핑계를 대는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의지는 무시하고, 남의 말에 의존하면서 “현실에 수긍해야지”라고 말하는 것이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소프라노 박상영은 그렇게 자신의 길을 스스로 밟아 나아가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핸디캡이 많았던 유학기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성악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으면서 내심 해외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된 그녀는 부모님께 부탁드려 미국 보스턴에 있는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conservatory) 음악전문대학교에서 첫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콘서바토리(conservatory)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음악 분야만 모아놓은 특성화전문대학이며 철저한 실기 위주로 수업이 진행되는 곳이에요. 물론 이론도 병행해서 가르치지만, 제가 다니던 학교는 실기를 더 우선시했어요.”

다른 또래 친구들에 비해 늦게 성악 공부를 시작한 그녀는 이미 이론과 실기의 기본기가 탄탄한 애들과 경쟁하고 같이 수업을 듣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고. 

“처음에는 따라가기가 너무 벅찼어요. 심지어 미국이니까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는데, 당시 영어 실력도 많이 부족하고. 정말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공부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마냥 죽기 살기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 당시 핸디캡이 많았다는 그녀. 하지만 그 핸디캡을 극복하고 오로지 수업에만 몰두해  졸업할 수 있었다는 박선영. 

상당히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서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성장했기에 별 어려움 없이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박상영 소프라노는 나약한 ‘온실 속 화초’가 아닌, 용광로에서 태어나 대장장이들의 두들김을 견뎌내고 나온 ‘강철’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외모는 스쳐 가는 바람에도 쓰러질 듯한 그녀지만, 내면의 그녀는 강했다.

 

 

“그래도 무사히 졸업해서 다음에는 보스턴 콘서바토리에서 대학원 과정을 진학하게 되었어요. 거기서도 치열하게 공부했어요”

결혼으로 인해 박사과정까지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하던 그녀에게 남편이 그 맘을 알았는지 이탈리아 유학을 권했다. 

“남편 덕분에 다시 유학길로 오를 수 있었지만, 미국보다 만만치 않았어요. 여러 곳을 혼자 기차 타고 다니면서 콩쿠르에 참가해야 했고, 정말 살인적인 일정으로 몸은 매우 힘들었지만, 하루하루 버틴다는 생각으로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만만치 않은 유학 생활이었지만, 그만큼 저의 음악이 탄생할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자산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생각지 못한 두 번째 유학의 기회. 박상영 소프라노는 지금도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이 역시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배우자가 타국 멀리 자신과 떨어져서 유학을 다녀오는 것은 부부로서의 시간을 희생해야 하는 것을 수반한다. 그러나 남편이 먼저 제안을 했다니, 남편이 그녀를 얼마나 신뢰했었는지를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다.

 

첫 작품 '라보엠', 그리고 '플레더마우스 : 박쥐'

31살 박선영의 첫 무대, 첫 작품 ‘라보엠’. 그 후에도 그녀가 제일 많이 출연한 작품 중 하나이며,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라보엠은 보헤미안적인 음악을 주로 다루고 있으면서 특색있는 멜로디로 극이 구성된 작품이다.

“제가 맡은 역할인 무제타의 캐릭터는 대중으로부터 자신을 내세우기를 좋아하면서 톡톡 튀는 성격이라 저를 매료시켰어요. 왠지 정이 가면서 애착이 가는 그런 특별한 역할이에요”

 

 

라보엠에서 맡은 캐릭터하고 비슷한 '플레더마우스 : 박쥐' 의 ‘로잘린데’라는 역을 맡은 그녀.

"무제타처럼 로잘린데도 사람들에게 뽐내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성격이에요. 특히 자신이 매우 엘레강스한 여성이라는 점을 많이 어필하면서 허영심이 심한 캐릭터로 나와요.”

'플레더마우스 : 박쥐'는 왈츠의 황제 요한 슈트라우스 2세(1825-1899)의 오페레타로 1874년에 빈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이래 세계의 오페라 팬들에게 사랑을 받는 유쾌하고 코믹한 오페레타 중 하나다.

“오페레타가 기존에 사람들한테 잘 알려진 오페라하고 다른 점이 있다면 이야기의 무게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오페라는 삶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로 해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반면에, 오페레타는 그냥 아침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이야기 소재가 매우 가벼워요. 주로 불륜이 단골로 등장합니다. 이번 작품의 이야기도 각 인물이 서로 다 연결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서로가 서로에게 불륜을 저지르는데, 서로 부부인데도 다른 사람인 줄로 착각하는 아이러니한 구도를 보실 수 있어요.”

 

 

베세토오페라단의 '플레더마우스 : 박쥐'는 원작의 시대를 충실히 반영하여, 관대함과 용서라는 본연의 주제와 느낌을 살린 연출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그뿐만 아니라 노래를 제외하고 한국어 대사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해도가 높아 보는 재미가 한층 더 해질 것이라고.
 

욕심 많은 그녀, 시작하면 제대로 해본다

“사실 제가 그냥 가만히 있는 성격이 아니기에 평소에 이것저것 여러 가지 것들을 많이 해요. 특히 아이돌 음악을 제외하고 여러 음악을 골고루 듣고 좋아하는데, 그중에 성악에 관심을 두게 되었어요. 그냥 좋아하는 것에서 그쳤으면 좋았을 텐데, 저는 성격상 시작하면 제대로 해본다는 마음에 30대 때 영국 런던의 뮤지컬 학교에 들어가서 과정을 수료하고 왔어요. 어찌 보면 또 다른 유학길이 된 셈이죠. 그런데 한 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는데, 제가 액팅(Acting, 연기)을 잘 못 했어요. 뮤지컬을 정말 제대로 배우니까 발성은 쉬운데, 노래를 부르면서 몸을 격하게 움직여야 하니까 상당히 힘들었어요.”

배우는 것을 즐기며, 배우는데 거리낌이 없는 그녀.

“물론 그것도 유학 때처럼 우여곡절 끝에 수료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이후에는 액팅에 미련이 있어서 발레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취미로 하다 보니 재미있어서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어요.”

취미이기 때문에 어렸을 때보다 공부하는데 부담감이 전혀 없어 즐기며 배울 수 있어 행복하다는 박상영 소프라노.

 

 

후학을 양성하면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정말 보람됩니다. 정말 학생들이 저마다 개성이 다르고, 수업 진도를 따라가는 속도도 저마다 다 다르지만,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그 모든 것을 이끌어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데려다가 고민도 들어주면서 지도를 해주었어요. 감사하게도 아이들도 저를 많이 따라주었고요.”

한양대, 한예종, 성신여대 등 여러 대학 강단에 서서 후학을 양성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한다.

“저를 비롯한 많은 선생님이 유학을 다녀오셔서 해외 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해서 아이들을 가르쳐요.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아이들의 실력이 외국 학생들 못지않게 매우 뛰어나요. 그래서 항상 아이들에게 ‘좀 더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유학을 권장해요. 아이들이 우물 안 개구리가 되게 할 수 없잖아요. 좀 더 시야를 넓히면서, 더 나아질 수 있는 길로 이끄는 것이 가르치는 사람의 의무이니까요.”

그녀는 자신이 겪은 유학 생활에서 얻은 경험을 학생들에게 전수해주면서도, 현재에 만족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그녀는 학생들에게 유학을 권장하는 이유가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여건이 되는대로 기회를 잡아야 하며,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이나 배경에 대해 평가 절하하는 것을 금한다. 그녀는 학생들의 능력을 믿고 있었고, 가능성을 보았으며, 아낌없이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해주려 노력했다.

 

 

성악가로 사는 삶 - 더 노력해야

“제가 생각하기에는 만족스럽지 않아요. ‘내가 조금 더 자신에 대해 투자하고, 업그레이드를 더 해야 했나’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맡은 역할과 노래를 최선을 다해 부르고 연기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져요. 어렸을 때는 잘하려고 힘을 주면서, 자신을 못살게 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좀 더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좀 더 부드럽게 음악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예술가와 코로나 19 - 이 또한 지나가리라

코로나 19는 박상영 소프라노에게도 큰 시련이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모든 문화 활동이 거의 마비된 것과 같은 상황에서도 그녀는 계속 활동을 이어오고 있었다.

“많이 힘들죠.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생각해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 인류가 이를 해결하고 다음 미래를 준비하는 것처럼 저희도 그때를 기다리면서 버티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반드시 이 어려운 시기가 지나가고 봄이 오는 것과 같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습니다”

 

성악가로서의 최종 꿈

“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 늘 해왔던 것처럼 좋은 무대든 안 좋은 무대든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서, 그리고 저의 목소리가 괜찮을 때까지 계속 노래하고 싶어요.”

 

 

소프라노 박상영에게 음악이란

“음악은 제가 아는 분야에서 잘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저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해요.”

 

 

자신이 맡은 역할에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항상 변치 않는 음악에 대한 애정이 오늘날의 소프라노 박상영을 만든 것 같다. 박상영은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아니, 천성이 게으름을 모르는 것 같은 그런 성격의 소유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펼쳐질 그녀의 로잘린데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선보여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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