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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마당/차용국의 걷기여행 이야기

미련 없이 떠나는 곳, 남양주 북한강길

by 이치저널 2021.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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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국 chaykjh@naver.com

 

 

아름다운 북한강변을 따라 여유롭게 걸으며 물에 관한 이야기를 감상해보라

 

 

 

 

 

 

미련 없이 떠날 일이다

- 남양주 북한강길

 

운길산역에서 차도를 건너 물의정원으로 들어갑니다. 북한강을 힘차게 달려온 푸른 물이 두물머리에서 남한강을 만나 한숨 고르고, 토실토실 흰 구름도 덩달아 쉬어갑니다. 진중리 앞 강변에 조성한 이 정원에 물의정원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아름다운 북한강변을 따라 여유롭게 걸으며 물에 관한 이야기를 감상해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일까? 이 정원에서는 사람도 강물도 구름도 한가롭게 가을 나라로 걸어갑니다.

물의정원은 온통 황색 코스모스로 물들어 있습니다. 황색 물결 출렁이는 드넓은 바다입니다. 사람들은 그 바다에 들어가 사진을 찍기도 하고, 온통 황색의 꽃이 양 옆으로 도열하고 있는 꽃길을 따라 즐겁게 걷기도 하며, 돗자리를 펴서 쉼터를 만들고 앉거나 누워서 풍경을 즐기기도 합니다. 나도 황색 바다와 운길산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찌고 나면 늘 어색한 얼굴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 주로 자연의 배경 사진만 찍는데, 오늘은 셀카봉을 길게 뽑아 내 얼굴이 나오도록 찍어보았습니다. 역시 맘에 들지 않지만 배경이 좋으니 봐줄만 하다고 위로해 봅니다.

때때로 바람이 코스모스 허리를 흔들며 지나갑니다. 나는 이 특이한 황색 코스모스를 요리조리 살펴봅니다.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코스모스와는 사뭇 다른 꽃입니다. 바람에 한들거리는 여느 코스모스와는 달리 매우 강한 줄기와 견고한 꽃잎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외래종이거나 개량종으로 보이는데, 지금 여기서 그것을 찾아보고 따져볼 일은 아니기에 인터넷에서 찾기를 접고 그냥 걷기로 합니다.

황색 코스모스 군락지는 마음정원까지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음정원은 송촌리 앞 강변의 생태습지로 수생식물과 철새들의 낙원입니다. 이 정원은 강물이 생태습지에서 깨끗한 물로 정화되는 과정을 통해, 깨끗했던 과거의 북한강 모습을 떠올리고, 마음을 씻어 맑게 치유하라는 뜻을 담아 조성했다고 합니다.

강가에 배 모형의 조형물이 있습니다. 예전에 이곳이 용진나루였다는 유래를 알리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나루가 있었다는 것은 사람과 물품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었다는 함의가 아니겠는가?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늘 그렇듯이 이야기가 돌고, 전설과 역사의 진실이 어디엔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듣고 싶습니다. 하지만 우선 배부터 채워야겠습니다. 서울에서 아점(아침 겸 점심)을 먹고 늦게 출발하기도 했지만, 운길산 수종사에서 너무 여유를 부려서 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마침 마을 입구 쪽에 국수집이 보입니다. 차림표에 동치미국수가 눈에 확 띕니다. 얼른 국수를 주문했습니다. 국수는 나오자 먼저 국물부터 마셔봅니다. 새콤한 동치미 국물이 목을 자극하면서 면을 폭풍처럼 흡입합니다. 시내에서 파는 국수 한 그릇보다 양이 많았지만 순식간에 한 그릇을 비우고, 국물도 바닥까지 마셨습니다.

서둘러 계산을 하고 마을길을 걸어갑니다. 마을로 깊이 들어갈수록 골목은 좁아지고, 예스러운 풍경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마을 유래에 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마을에서도 1919 3 1일에 불붙은 만세 운동이 있었다고 합니니다. 주민 100여 명이 3 14일과 15일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운동 시위를 벌였고, 이들 중 17명이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세상일에 등 돌리고 무심하게 강물을 바라보며 사는 마을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운길산 쪽으로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가자 소담스런 고택이 나타납니다. 운길산 바로 아래입니다. 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집인 듯합니다. 조그만 정자도 하나 있습니다. 읍수정이라고 합니다. 마당에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 고목이 있고, 그 아래 말 조형물도 있습니다. 사람은 살고 있지 않은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집은 조선 시대 한음 이덕형(1561 ~ 1613) 선생이 짓고 살았던 별서였습니다. 한음은 31세에 대제학, 42세에 영의정의 벼슬을 거친 인물입니다. 그는 45세에 관직에서 물러나 부친을 모시고 이곳 별서로 왔습니다. 그러니까 별서는 한음이 벼슬에서 물러난 후 부친을 모시고 여생을 보내기 위해 마련한 집이었습니다. 한음이 이곳에 별서를 마련한 것은 운길산과 북한강이 어우러진 빼어난 산수 때문입니다. 퇴임 후 한적하고 소박한 삶을 살기에 최적지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세상에 나가 각기 맡은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것을 소임이라 합니다. 세상에 태어나 부모와 여러 은혜로운 분들의 보살핌과 가르침을 받았으니, 세상에 나아가 일함에 있어 어찌 그 소임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소임은 열과 성을 다 바쳐 후회 없이 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 소임을 마치면 미련 없이 떠날 일입니다.

한음은 그런 멋진 삶을 산 인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45세에 초야로 들어가 산다는 것은 너무도 이른 조기퇴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문득 소임을 마치는 것이 어찌 연령으로만 판단할 일인가 하는 생각도 스쳐갑니다. 당시의 생애주기가 지금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었을 것이고, 삶의 가치를 어찌 관직의 고저와 나이를 가지고 저울질할 일이던가? 어쩌면 한음은 관직의 명예보다도 이곳 별서에서의 삶이 더 행복한 소임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별서에 앉아서 잠시 생각에 잠겨 봅니다. 가끔 마을 토박이로 보이는 사람들이 삽이나 낮을 들고 별서 앞 골목을 지나가기도 하지만, 거의 인적이 없는 적막한 고택입니다. 고택은 예나 지금이나 이 자리인데, 인심은 시류에 따라 친소가 나눠지는 것인가 봅니다. 옆 마을인 진중리에 운길산역이 생기면서 운길산으로 오르는 주요 등산로와 음식점 등 상권이 그쪽 마을에 조성되어 휴일이면 산객으로 북적이는 풍경과는 대조적입니다.

가을의 짧은 해가 강물에 석양의 긴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습니다. 저녁이 되자 제법 차가운 강바람이 코스모스 옆구리를 흔들며 스쳐갑니다. 가을도 떠나가나 봅니다. 이제 나도 가야합니다. 자연이고 사람이고, 때가 되면 떠나야 합니다. 떠나는 가을처럼.

 

 

북한강을 힘차게 달려온 푸른 물

남한강을 만나 한숨 고르고

 

토실토실 흰 구름

덩달아 쉬어 가는데

 

어찌 그대는

서둘러 떠나려 하시나요

 

코스모스 옆구리 스치는 바람 붙잡아

토닥토닥 함께 걸어온 길 돌아보고

 

황금빛으로 써 내려간

추억을 불러내

 

손잡고 얘기하며 걸어가면 안 되나요

그대 갈 길 멀지라도

 

 

(졸시, 가을이 떠나가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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