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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마당/김기록의 역사기행이야기

한수이북 제일의 무속 성지, 감악산

by 이치저널 2022.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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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聖地)의 주인 몰자비, 빗돌대왕으로 숭배

 

 

 

 

 

감악산(紺岳山)은 파주와 양주를 수호하는 진산(鎭山)이다. 산을 덮고 있는 바위의 색깔이 짙은 감색이어서 감악(紺岳)이란 이름을 얻었다.

 

 

삼국시대부터 쟁패의 각축장이 되다 보니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임진강과 파평산, 감악산 등 요충지마다 칠중성(七重城) 호로고루성(城) 아미성(城) 등의 성곽이 1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감악산은 특별한 영기(靈氣)를 품고 있어 사냥꾼이 감히 사냥을 하지 못한다 하며, 태백 일월 지리 계룡 4대 접신(接神)의 산을 제외하고는 한수이북 제일의 무속 성지로 꼽는다.

성지(聖地)의 주인은 감악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름하여 몰자비(沒字碑)다. 비(碑)에 글자가 없기 때문에 무자비(無字碑)라고도 하며, 민간에서는 빗돌대왕으로 숭배해왔다.

 

 

원래 글자가 없었는지, 아니면 있었는데 천년 풍진 세월에 닳아 없어진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조선중기(1600년대) 금석문의 대가 미수 허목 선생이 이 비를 보았을 때도 글자가 없었다고 전한다.

몰자비는 신라의 팽창기에 진흥왕순수비로 세웠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일설엔 고구려를 멸한 당나라 장수 설인귀의 비석이라고도 하나 역시 고증된 건 아니다. 오히려 사대주의를 부추기려는 일제 식민사관의 장난으로 추측되는 주장이다.

 

 

몰자비가 정확히 언제부터 이 자리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산의 영검함을 외경했던 신라는 일찍이 소사(小祀)를 지내 신령을 위로했고, 조선 태조실록엔 봄 가을로 두 차례 향과 축문을 보내 산신제를 봉행토록 했다 하니 빗돌대왕의 위신력은 아득한 시절부터 떨쳐왔던 것으로 보인다.

 

 

글자의 유무가 무슨 상관이랴.

빗돌대왕의 영검은 일월과 더불어 오늘에도 여전하니 나는 임인년 5월 계묘일, 한 잔 술에 북어포로 세상의 근심을 덜어주실 것을 축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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