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직연금 적립금이 430조 원을 넘어섰다. 더 이상 기업의 비용이 아닌, 개인의 노후자산으로 퇴직연금의 성격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2024년 퇴직연금 통계는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으로의 이동이 뚜렷해졌음을 보여준다.
퇴직연금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이유는 제도 구조의 차이에서 나온다.
확정급여형(DB)이 회사가 퇴직 시 받을 금액을 미리 보장하고 운용 책임도 기업이 지는 방식이라면, 확정기여형(DC)은 회사가 매년 일정 금액을 적립하고 운용 결과에 따라 근로자가 퇴직연금 수령액을 결정받는 구조다. 수익률이 높아지면 연금도 늘어나지만, 반대로 운용 성과가 부진하면 그 부담 역시 개인에게 돌아간다.
개인형 퇴직연금(IRP)은 이러한 DC 구조를 개인 단위로 확장한 계좌다. 근로자가 직장을 옮기며 받은 퇴직금을 한 계좌로 모아 운용할 수 있고, 자영업자나 프리랜서도 가입할 수 있다. 납입·운용·상품 선택까지 모두 개인이 결정하는 만큼, 노후자산을 ‘관리’하는 연금이라는 성격이 가장 강하다.
실제로 IRP에서는 원리금보장 상품뿐 아니라 펀드, ETF 등 실적배당형 상품 선택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 퇴직연금이 ‘회사에서 받아가는 돈’에서 ‘스스로 굴리는 자산’으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DC와 IRP의 확산은 곧 개인의 투자 판단과 금융 이해도가 노후 소득을 좌우하는 구조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2024년 말 기준 퇴직연금 총적립금액은 431조 원으로 전년보다 12.9%, 금액으로는 49조 원 늘었다. 이 가운데 확정급여형(DB)은 214조 원으로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구성비는 49.7%로 1년 새 4.0%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개인형 퇴직연금(IRP)은 99조 원으로 30.3% 급증하며 전체의 23.1%까지 비중을 키웠다. 확정기여형(DC) 역시 116조 원으로 16.9% 증가해 점진적인 확산 흐름을 이어갔다.
운용 주체도 달라지고 있다. 적립금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은행에 몰려 있지만, 증권사의 성장 속도가 눈에 띈다. 은행은 224조 원으로 전체의 52.1%를 차지했고, 증권은 104조 원으로 24.1%까지 확대됐다. 특히 증권권역은 전년 대비 적립금 증가율이 19.8%로 가장 높았다.
운용 방식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원리금보장형 비중은 74.6%로 여전히 높지만, 전년 대비 5.8%포인트 감소했다. 대신 실적배당형은 17.5%로 4.7%포인트 늘었다. 개인형 퇴직연금(IRP)의 경우 실적배당형 비중이 33.4%에 달해, 노후자산을 적극적으로 운용하려는 흐름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다.
퇴직연금 도입 사업장은 44만 2천 곳으로 1년 전보다 1.3% 늘었지만, 전체 도입률은 26.5%에 그쳤다. 여전히 10곳 중 7곳 이상은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상태다. 도입 사업장의 83%는 종사자 30인 미만 사업장이었고, 대기업일수록 도입률이 높았다. 300인 이상 사업장의 도입률은 92.1%에 달한 반면, 5인 미만 사업장은 10.6%에 불과했다.

근로자 가입 현황도 비슷한 구조를 보인다. 퇴직연금 가입 근로자는 735만 4천 명으로 전년 대비 2.9% 증가했지만, 가입률은 53.3%에 머물렀다. 절반 가까운 근로자는 여전히 퇴직연금 사각지대에 있다. 특히 30대와 40대의 가입률이 각각 60.7%, 59.0%로 높았고, 60세 이상은 37.6%에 그쳤다.
산업별 격차도 뚜렷하다. 금융보험업의 근로자 가입률은 75.4%로 가장 높았고, 정보통신업과 제조업이 뒤를 이었다. 반면 숙박음식업, 농림어업 등은 20%대 초반에 머물러 업종 간 노후보장 격차가 여전함을 보여줬다.
개인형 퇴직연금(IRP)은 단연 올해의 핵심 키워드다. 가입 인원은 359만 명으로 11.7% 늘었고, 적립금은 99조 원으로 30% 이상 증가했다. 자영업자와 퇴직금제도 적용 근로자, 직역연금 가입자까지 IRP로 유입되면서 퇴직연금의 무게중심이 개인으로 이동하고 있다.
다만 중도인출과 해지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 2024년 중도인출 인원은 6만 7천 명, 금액은 3조 원에 달했다. 사유의 절반 이상은 주택 구입과 주거 임차였다. 노후자산이 여전히 생계자금으로 소진되고 있다는 의미다.
431조 원 시대를 맞은 퇴직연금은 이제 ‘얼마나 쌓였는가’보다 ‘어떻게 운용하고, 얼마나 지켜낼 것인가’가 더 중요해졌다. 제도 확대와 함께 실질적인 노후소득 보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다음 과제가 분명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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