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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마당/이도연의 시선 따라 떠나는 사계

"거진항", 아버지의 바다!

by 이치저널 2022.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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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연 doyeonlee3@navet.com

 

 

세월의 시간을 수없이 밀고 밀려오는 파도의 숫자만큼 헤아리다 좌초한 기억은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물거품 속에서 한 줌 빛으로 사그라져 소멸하며 가엽게 반짝인다.

 

 

 

 

 

바다는 항상 그곳에 있었고 꿈꾸는 나는 바다의 그림자에 기대여 언제나 그곳을 동경하고 있었다.

세월의 시간을 수없이 밀고 밀려오는 파도의 숫자만큼 헤아리다 좌초한 기억은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물거품 속에서 한 줌 빛으로 사그라져 소멸하며 가엽게 반짝인다.

세찬 바람에 물거품이 일어서고 바다는 심술을 부리며 뭍으로 바다로 파도를 세차게 몰아세운다.

 

ⓒ이미지 제공 - 박미애 사진작가

 

늙은 어부는 소금에 절어 거칠어진 어망의 밧줄을 바싹 잡아당기며 까맣게 열려 있는 수평선 너머의 거친 파도 속으로 시선이 고정되어 있고 마음은 벌써 펄떡이는 파도의 숨소리를 들으며 달려 나간다.

검은 바다, 인적이 끊긴 바다, 어쩌면 언제나 텅 비어 있는 망망대해 바다 위에 어부와 파도는 마주 서서 굵은 힘줄을 튕겨내며 힘겨루기를 한다.

검은 바다도 혼자이고 어부도 혼자인 망망대해 수평선에 기진하며 공평한 외로움으로 지쳐간다.

새벽잠을 떨쳐 버리고 여명이 바다 건너 수평선 아래서 졸고 있는 까무룩 한 밤에 분주히 배를 몰아 아버지의 바다를 헤쳐 나온 늙은 어부의 눈곱이 힘겨워 파르르 떨려온다.

수천 년 전에 불어오던 원양의 바람을 기억하고 전설처럼 유전되어 온 그날의 파도도 변함없이 북서풍을 밀어 올리고 태고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모래알 같은 시간이 흘러도 아버지! 그 아버지의 바다는 변한 것이 없고 바다는 숙명이고 어부의 바다는 눈물이다.

어부의 눈물 속으로 바다가 들어와 염분을 뿌리고 어부는 바다에서 일어서고 바다에서 드러누웠다.

별이 쏟아지는 파란 새벽 바다는 위안이 아니라 바닷속으로 무너져 들어가는 힘겨운 사투요 투쟁의 빛이다.

늙은 어부의 주름진 이마 위로 흐르는 땀방울이 이슬처럼 반짝일 때 게으른 여명이 어둠을 서서히 밀어내며 고요하게 밝아오고 어부의 입가에 비로소 엷은 미소가 번진다.

갓 잡아 올린 그물의 고기들은 새파란 파도의 빛으로 물들고 아침노을이 쓰다듬으며 주황빛으로 퍼덕이며 어부의 등 뒤로 아침 햇살이 가득 번져간다.

항구로 향하는 뱃전에는 하얀 물살 위로 가르마를 타며 달려가고 뱃머리의 깃발들은 새벽 찬바람에 울음을 울어 쇠 소리를 내며 펄럭인다.

바람 끝에 갈가리 찢어지는 깃발은 오랜 세월 변색하여 훈장처럼 흔들리며 아침 햇살과 바람 앞에 사투를 벌여도 새날이 밝아 오는 여명을 향한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포구의 새벽은 별과 바람과 파도와 함께 사투를 벌인 어부의 고독한 흔적을 지워내고 파도에 지친 바다에서 달려온 배들로 시끌벅적 고함으로 가득하고 전형적인 어촌 항구의 새벽 어시장의 소슬한 풍경 속으로 빠져들고 오늘도 포구의 삶은 늙은 어부의 굵은 땀방울과 함께 새벽 난장에 살아 있음을 증명하듯 갓 잡아 올린 생선의 푸른 등지느러미처럼 번뜩인다.

뱃머리에 힘차게 나부끼는 깃발에서 바람의 얼굴을 본다. 그래서 깃발이 움직임은 곧 바람의 모습이며 바람은 언제나 깃발을 흔들며 나타나며 우리의 인생도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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