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변의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을 깬다.
부지런한 옆방의 나그네들이 벌써 일어나 새벽 먹이를 찾아서 둥지를 날아가는 새처럼 이른 새벽부터 등산을 가기 위해 어디론가 미지의 세계를 위해 떠날 채비를 하느라 분주히 움직인다.
바쁠 일 없는 게으름으로 기지개를 늘어지게 하며 굼벵이처럼 뒤척이다 몸을 일으킨다. 지척에 계곡의 물소리가 들리고 소양호에서 불어오는 솔향기 가득한 물바람이 시원하고 상쾌하다.
어젯밤에 삶의 이야기를 가득 담은 곡차를 제법 많이 마셨는데 공기가 좋아 그런지 양심도 없이 멀쩡하다. 숲속에서 끊임없이 펌프질하는 청량한 공기 때문인 것 같다.
흘러가는 시간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처럼 마음껏 게으름을 피우며 천천히 씻고 산나물 비빔밥 한 그릇과 오래 묵은 김치를 푹 지져 구수한 비지 김치찌개에 칼칼한 콩나물국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아침이라 공깃밥을 반만 먹으려 했는데 바쁘게 움직이는 숟가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부 비벼 먹고는 미련한 포만감에 기분이 더없이 좋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으며 밥도 맛있고 든든하게 먹었으니 천년의 숨결이 묻어나는 청평사로 향한다. 청평사로 가던 중에 어젯밤에 함께 민박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던 일행을 만났다 짧은 인연의 만남이었지만 반갑게 인사를 하고 언제 일지 모를 기약 없는 약속을 나누며 서로의 길을 향했다.

오봉산의 허리를 감아 내리는 배후령과 바람골 깊숙한 계곡을 옆으로 끼고 흐르는 깊은 골짜기에 천 년의 숨결을 품은 청평사가 있다. 비바람 긴 세월을 버텨낸 역사의 징표로 남아 있는 그곳에 천 년의 바위 위에 피어나는 생명의 이끼는 계곡을 따라 오늘도 무심천에 피어난다.
맑은 물 골짜기 굽이돌아 흐르는 물길 따라 천만년 인연을 가슴에 묻고 한 발 한 발 세월의 발자국을 찍어 징표를 남기며 억조창생의 역사 앞에 종교적 신념과 관계없이 두 손 합장하며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
계곡 옆에 중국 원나라 공주의 상사뱀에 얽힌 설화를 간직한 공주의 동상이 있고 좁은 비탈길을 올라가면 양지바른 언덕 위에 공주 탑이 세워져 있다.
구송 폭포는 파란 하늘에 주변 풍경과 잘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 같은 모습으로 아름다우며 검푸른 빛을 감도는 용소 아래로 물줄기가 힘차게 떨어지는 것이 단아한 기품으로 옥쟁반을 펼쳐 놓은 것 같다.
야생화가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영지라는 조그만 연못이 나오는데 생각보다 소박한 모습이자만 오봉산 정상이 영지에 고스란히 투영되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봉산 정상을 바라보며 영지에 투영된 그림자를 바라보며 계곡 물소리를 따라 좀 더 오르자 청평사 누각이 보인다. 청평사로 들어가는 초입 다리 기둥에 선동교 라고 판각된 글자가 보인다. 이 다리를 건너면 속세를 초월하여 사바의 세계를 넘어 신선이 사는 동네로 들어가는 것이라 했다.
오전이라 그런지 경내는 고요하고 파란 하늘 밑에 매달린 풍경만 가끔 찰랑찰랑 맑은소리를 낸다. 며칠 후 다가올 부처님오신 날을 준비하느라 마당에는 화사하고 부드러운 향기를 피워낼 것 같은 연등으로 가득하다.
망루에 올라 창문을 열고 선문답을 해본다.
창밖에 무엇이 보이는고? 신록으로 우거진 계곡과 산이 보이는고?
아름다운 대자연에 부처님의 형상이 보입니다.
그러면 부처님은 어디에 계시는고?
절간에 모셔놓은 돌부처 금부처는 살아계시는가?
불상을 만드는 불사를 하고 마지막에 불상의 눈에 혼을 불어넣어 화룡점정 눈동자를 그려 넣으면 살아있는 부처님의 불상이 되는 거지요?
화룡점정은 누가 하는고? 그 또한 사람이 하는 것이니 법당에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부처는 내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일체유심조라 내 마음먹기 달려있고 내 마음속에 선과 악이 있으니 선과 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사리사욕이 없는 세상 그것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불쌍한 중생을 구제하면 그곳에 부처가 있지 아니한가?
스스로 선문답을 하고 조용히 눈을 감고 합장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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