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장독대 위에 유난히 소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빗방울은 시가 되고 음악이 되어 추억이 된다

동서남북 병풍을 두른 산머리 위에 하늘 아래 첫 동네 구구리말(마을) 위로 파랗게 보이는 물빛 하늘은 엽전의 구멍처럼 작고 둥글다.
한나절 태양도 순간의 미소로 머물다 사라지고 달도 별도 잠시 인사를 건네면 그만이다. 산중의 오두막에 어둠이 내리고 실록의 산내들은 살랑 바람을 타고 코끝을 스치는 자연의 싱그러운 향기로 가득하다. 산비탈 벼랑 위에 군데군데 목청을 설치한 것이 눈에 뜨인다.
깎아지는 벼랑 위에 어떻게 올라 목청을 설치했을지 벌들의 겨우살이 먹이인 꿀을 탈취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대단하다. 어쩌면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산란을 할 수 있도록 공생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적막한 어둠의 검은 숲속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잔잔한 풀벌레 울음소리 사이에 물웅덩이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겹치고 들짐승의 울음소리가 가끔 숲을 지나고 처량하지만 날카롭게 들리는 부엉이 울음소리는 숲에서 나는 밤의 소리와 섞여 도시를 떠난 자연의 합창으로 귓가에 생소한 울림으로 숲속의 적막을 깨는 밤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어느 곳에서 시작된 소리인지 알 수 없지만 끊임없이 흘러가며 단조로운 리듬으로 이어지는 계곡의 물소리가 밤새 들어도 지루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정겹고 물소리의 소리의 결을 따라 심연의 나를 만나는 내면의 고요함으로 깊은 사색의 세계로 인도한다.
칠흑 같은 까만 어둠과 하늘과 엽전 구멍 닮은 구구리마을 조그만 하늘에 무거운 물구름이 가득하더니 이내 힘에 겨워 빗방울이 떨어진다. 바람의 장단에 맞추어 사락사락 춤을 추기 시작한다. 반짝이는 물방울 따라 영롱한 이슬 맺힌 하늘에는 그리운 임의 고운 눈물이 별처럼 가득 고여 있다.
산속 오두막 추녀 끝에 깜빡이며 졸고 있는 노란 불빛 사이로 하얗게 비가 내린다.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심술궂은 소리를 내며 투둑 투둑 툭 투둑 장단을 맞추고 이내 나뭇잎과 빗방울의 대화로 온 숲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문지방 댓돌 위에 운동화가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해 한 귀퉁이로 몸을 피한다.
해묵은 장독대 위에 유난히 소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빗방울은 시가 되고 음악이 되어 추억이 된다. 파란 숲속에 애잔하게 울리던 소쩍새의 슬픈 사연도 빗물의 교향곡과 화음을 이루어 가녀린 가슴에 비수가 되어 더욱 슬프고 외롭다.
오두막 네모의 공간 속에는 빗소리와 계곡 사이 흐르는 자연의 합창으로 온통 가득하다. 나도 자연의 일부가 되어 네모의 방에 존재하고 자연과 동화되어 깊어 가는 숲속에 내가 있다. 창밖에 비 내리는 풍경은 촉촉한 물기에 젖어 고요한 어둠 속에 아무도 모르는 내 마음의 풍경으로 동화 속 요정들의 예쁜 세상이 된다.
길가에 홀로 빗방울 반기며 빗소리에 답장하듯 외롭게 흔들리고 있는 노란 호박색 가로등 불빛 위로 빗물이 투명하게 반사된다. 빛의 무리가 빗방울을 만나 안개처럼 번지는 파스텔 색조로 부드럽게 만져지는 불빛이 곱디고와 너무도 사랑스럽다.
비 내리는 산속의 오두막 밤 풍경은 이미 내 영혼을 사로잡는 태초의 자연 무아의 세상이 되어 버렸다. 깊은 산속 오두막에 어둠의 은빛 투명한 비가 내리고 홀로 창밖을 바라보며 독백을 하는 외로운 고독은 오히려 행복이고 사색의 시간이다.
하늘 아래 첫 동네 구구리말(마을)의 비 오는 밤의 하루가 어둠 속 빗방울과 함께 꾸뻑꾸뻑 졸며 깊어만 간다.


'스토리마당 > 이도연의 시선 따라 떠나는 사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명의 기원, 물 (5) | 2023.09.01 |
---|---|
숲속의 오두막 (0) | 2023.08.25 |
산사의 아침 (0) | 2023.08.11 |
천년 고찰, 청평사 (0) | 2023.08.04 |
밥그릇을 엎어놓은 것같은 산방산 (0) | 2023.07.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