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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마당/송란교의 행복사냥

쭉정이는 바람을 무서워한다?

by 이치저널 2023.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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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녘에는 농부들의 피와 땀을 먹고 자란 알곡들이 예쁜 모습으로 쌓여만 간다. 바람이 불면 쓰러질까 가뭄이 들면 말라 죽을까 장맛비에 녹아 내릴까 애간장을 태운 그 수많은 시간들이 여문다. 새봄에 똑똑한 씨를 골라 뿌리고 늦가을에 거두어들이기까지 다정한 눈길 주면서 수만 번의 걸음걸이로 논두렁에 큰길을 낸다.

꽃밭 속의 꽃길에는 향기가 나고 잘 익은 낟알에는 농부의 땀 냄새가 스민다. 가을 하늘이 보고 싶은 누님의 얼굴을 닮아갈 때면 곱게 익어가는 가을 햇살이 넉넉한 농부의 마음도 함께 거둔다. 아름다운 꽃 탐스런 과일이 매달린 곳에는 반드시 길이 생긴다.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바지랑대로 하늘 재기 한다고 주장하면서 잘 익은 감을 살짝살짝 따간다. 은근슬쩍 훑어가고 꺾어가고 캐가는 못된 손찌검은 검불 속의 쭉정이와 무엇이 다를까? 알곡 속으로 어중이떠중이가 모여들면 쭉정이들을 솎아내기 위해 농부의 발걸음도 바빠진다. 20여개 가량의 쇠꼬챙이를 세운 홀태에 빗질하듯 훑고, 가시가 뿔처럼 붙어 있는 드럼통 같은 탈곡기를 쉼 없이 발로 밟아 돌리며 곡식의 낟알들을 털어낸다.

기다란 작대기 끝에 매단 둥근 판자나 부챗살처럼 살이 많은 갈퀴 모양의 고무래를 이용하여 낟알들을 긁어모은다. 지푸라기도 검불도 쭉정이도 함께 따라온다. 알이 꽉 찬 서리태와 들깨는 도리깨질 한 방에 모두 튀어나온다. 매타작하듯 화풀이하듯 휘두르면 모두 튀어 도망가니 살살 두드려야 한다. 곡식 따위를 담고 까불러서 쭉정이와 ·검부러기 등을 제거하는 키로 키질을 하면 쭉정이는 쫓겨나간다.

 

알알이 꽉 찬 알갱이 속에 숨고 검불 속에 붙어 있는 속이 텅 빈 쭉정이는 결국 바람에 날린다. 쭉정이는 풍무기의 센 바람을 더욱 싫어한다. 물을 부으면 숨을 곳이 없어 허우적거리다 위로 떠 오른다. 한 소쿠리 담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조금씩 흘리면 검불과 쭉정이도 낟알들과 분리된다.

호가호위하면서 농부의 마음을 거짓으로 훔친 정체가 한 점 바람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 가마니에 담겨지는 낟알들은 서로 부대끼며 웃지만 쫓겨나는 쭉정이는 바람에 날리며 서글피 운다. 거짓의 가면을 쓰고 진짜 얼굴인 양 떡 하니 쳐들고 다니다 민심의 바람이 불어오는 순간 고개를 숙인 척한다.

 

그러면서 스치는 바람이라 손가락질하며 무시한다. 주머니 속 고무줄 잣대는 자라목처럼 불쑥불쑥 나왔다 들어갔다 한다. 따뜻하면 늘어나고 차가우면 줄어드는 엿가락들이 내가 재면 원칙이고 법이라 떠들어댄다. 검불 속 쭉정이처럼 토실한 낟알에 기대어 부끄러움을 잃어 간다. 소금에 찌든 자반고등어의 흐릿한 눈으로 똑바로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겠는가?

 

덧칠한 페인트 속에 맨 얼굴을 숨기고 사는 위선자들, 진실은 감쪽같이 감추고 페이크(fake, 운동 경기에서 상대편을 속이기 위한 동작)만이 진실인 양 춤을 춘다. 기름칠한 겉은 번드르르하고 썩어 문드러진 속은 개똥으로 가득 차서 올챙이배를 닮아간다. 값비싼 명품으로 치장하고 내가 난데 하면서 허름한 몸빼바지처럼 으르렁거린다.

 

쓸 만한 알곡은 없고 쓸데없는 쭉정이만 나불댄다. 쪽팔림은 순간이고 부귀영화는 대물림한다고 으스댄다. 뻣뻣한 파는 짠 소금에 숨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부끄러움이 철면피와 놀아나니 파렴치한이 되어 간다. 떠난 부끄러움이 철면피로 돌아오니 민낯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철면피(鐵面皮, 쇠처럼 두꺼운 낯가죽이란 뜻으로, 뻔뻔스럽고 염치없는 사람), 파렴치한(破廉恥漢, 체면이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한 사람), 불한당(不汗黨, 남을 괴롭히거나 재물을 마구 빼앗는 것을 일삼는 파렴치한 사람들의 무리)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사라지면 좋겠다. 검불 같은 싸구려 입들의 합창인가?

쭉정이 같은 한없이 가벼운 말들이 여기저기 나뒹군다. 부침개는 타지 않도록 뒤집어야 맛이 있지만, 하는 행동과 내뱉는 말이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면 어찌 올바른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 싸구려 입으로 떠드는 뜻 없는 소리는 여기저기 늘어나지만 감동을 주는 진실한 말은 점점 사라져간다.

 

파전에 파가 사라지면 파전이라 할 수 있을까? 일은 하지 않고 꾀만 피우고 잔머리만 써서 자기만 편하려 하는 쭉정이 같은 무리들, 너는 ‘얼마짜리’ 인생인가? 라고 물으면 어찌 대답할꼬! 쌀을 쪄서 밥을 지어야지 쭉정이를 쪄서 밥을 지을 수야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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