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쓴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 1911~1983)는 “돈 없이 젊은 시절을 보낼 수 있지만 돈 없는 노후는 보낼 수 없다”라고 했다. 돈은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현대사회에서는 돈은 ‘신분’이고 ‘계급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하다.
특히 노년기는 젊을 때처럼 경제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실패를 딛고 일어설 만큼의 육체적ㆍ정신적 건강을 담보할 수 없으므로 돈에 대한 기대치가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대부분 노인은 나이가 더할수록 돈 지갑은 없어 보인다.
인생의 황혼 무렵 수중에 돈이 있다고 해도 내가 죽으면 돈도 소용없으며, 자식에게 상속한다고 해도 자식이 행복해지지 않는다. 돈에 관해 자식을 교육 시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 부모가 돈이 없는 것이다.
재산을 쌓아놓기보다는 벌어들인 재산과 수입을 최대한 활용하는 데 관심을 두는 게 훨씬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 노년은 그동안 모은 돈을 즐겨 쓰는 시기이다. 돈을 축적하거나 신규 투자하는 시기가 절대로 아니다. 자식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평화롭고 조용한 삶을 찾아라.
외롭고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죽음 직전까지 돈을 생명줄처럼 움켜쥐고 있던 노년의 강박감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돈은 써야 내 돈이다. 내가 벌어놓은 돈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쓰지 않으면 결국 남의 돈일 수밖에 없다.
오래전에 아무개 씨의 묘가 사라졌고, 묘비는 뽑힌 채 버려졌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한참 일할 때는 현금 자루가 머리맡에 놓여있었다고 회고했을 정도로 큰 부를 거머쥐었던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유족들은 기껏해야 1년에 100만 원 안팎인 묘지 관리비를 체납했을 정도로 유산을 탕진했다고 한다. 참으로 고인의 처지가 안타깝고 딱하다. 잘못된 재산상속은 상속인에게 독이 든 성배(聖杯)를 전해주는 꼴이다.
그뿐만 아니다. 국내 재벌치고 상속에 관한 분쟁이 없는 가문이 거의 없다. 재벌뿐 아니라 평범한 가정에서도 상속을 놓고 전쟁을 벌이다시피 한다.
어쨌든, 상속 문제로 혈연 해체가 급증하고 있다. 부모ㆍ자식 간, 형제자매간 벌어지는 소송 때문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자신의 법정 상속분의 절반도 못 받았을 경우 공동상속인인 형제자매를 상대로 내는 유류분(遺留分) 소송이 2022년 경우 1,091건이나 발생했다. 부모·자식, 형제자매들이 한 법정에서 원·피고로 갈라져 다투다 남보다도 못한 관계로 전락하는 일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봉이다. 먹여주고 입혀주는 걸로 부족해 대학원 진학에 해외 유학까지 보내주고 나서도 취직을 못 하면 데리고 산다. 급기야 결혼할 때는 살 집까지 해준다. 나는 이걸 지나친 가족주의라 칭한다. 지구상에 이런 나라가 거의 없다.
물론 돈이 많으면 다 해줄 수 있다. 하지만 여유가 없는 이들도 그렇게 하는 건 문제다. 수명이 짧을 땐 가능했지만 지금처럼 장수하여 부양비용이 급증하는 시대엔 부적절하다. 성인이 된 자녀는 경제적으로 독립시키고 부모는 자력으로 살아가는 보다 느슨한 가족관계로 가는 게 맞다.
내가 죽은 뒤에 남겨진 돈이 있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음에도 죽음 직전까지 돈을 생명줄처럼 움켜쥐고 있던 노년의 강박감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돈은 써야 내 돈이다. 내가 벌어놓은 돈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쓰지 않으면 내 돈이 아니라 남의 돈일 수밖에 없다. 내가 죽으면 돈도 소용없고, 자식에게 준다고 자식이 행복해지지도 않는다.
돈을 남겨주고 떠나기보다는 살아 있을 때 함께 가족여행을 가거나 자녀의 자기 계발을 위한 자금을 도와주면 훨씬 낫다. ‘장의사에게 지급할 돈만 남겨두고 다 쓰라’라는 말은 미래 걱정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현재의 삶에 충실해지라는 뜻이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자연과 하늘이 준 물질적인 축복을 마음껏 누리고, 마지막엔 빈손으로 세상을 떠나는 것이 순리다. 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남에게 말할 때는 그렇게 말하면서 정작 본인은 돈에 집착하는 경우가 거의인 것을… 그것이 인간이 지고 갈 멍에가 아닐는지 자못 궁금할 뿐이다. 돈은 가지고 있는 자의 것이 아니고 그것을 즐기는 자의 것이다.
'예습도 복습도 없는 단 한 번의 인생의 길'이라는 말이 문득 가슴을 친다. 내 자식이나 형제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생각은 엄청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자식들에게 돈을 남겨주고 떠나지 말고, 장의사에게 지급할 돈만 남겨두고 다 쓰라’라는 말을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하늘이 준 물질적인 축복을 마음껏 누리고, 마지막엔 내생을 위한 공덕(功德)을 마음껏 짓고 세상을 떠나는 게 순리가 아닐까?
자식들에게 돈을 물려주고 떠나면 원수지간이 되어 싸울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돈을 물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후손들이 화목하게 잘 살 수 있도록 가풍을 조성하고, 삶의 기틀을 마련해주라는 얘기다.
재벌뿐만 아니다. 평범한 가정에서도 재산상속을 놓고 가족 간에 전쟁을 벌이다시피 하는 일을 심심치 않다. 이렇게 남기는 건 재산인데 남는 건 형제자매 간의 원수 관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유산을 놓고 싸움질하는 자식보다 재산을 물려주고 떠나는 부모의 책임이 더 크지 않을까?
돈은 살아있는 동안 써야만 내 돈이다. 장의사에게 지급할 돈만 남겨놓고 살아있을 때 가진 돈을 자신을 위해, 자녀를 위해, 가족을 위해, 사회를 위해 마음껏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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