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켈란젤로가 이태리를, 피카소가 프랑스를, 셰익스피어가 영국을, 톨스토이가 러시아의 격을 높이고 정신문명을 풍요롭게 했다고 알려졌지요. 대전에서는 ‘이응노 미술관’이 그 역할을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요?
시민들을 만나 이응노 미술관에 관한 얘기를 하다 보면 잘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고암 이응노 선생은 한국과 서양의 근현대 미술사의 중심에 있었던 분답게 프랑스에도 많은 제자와 고암 학파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현재 프랑스 파리 근교에 있는 이응노 레지던스는 고암이 생전에 설립한 동양 미술학교와 더불어 유럽인에게 동양 미술과 고암의 미술 세계를 전수하고 있습니다.

2014년부터 매해 3명의 작가를 선발해 이응노 아틀리에에 파견하는 사업을 하고 있으며, 그들은 파리 시내의 갤러리에서 자신들의 작품 전시를 통해 현지 미술인들과 접촉을 늘리고 있으며, 이들은 파리 미술계에 이응노 미술관과 한국의 청년 작가들을 알리는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고암은 회화뿐 아니라 서예, 도자 조각 등 장르를 초월한 예술 활동으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그의 문자 추상은 자연의 형태를 추상화하거나 음과 뜻을 획과 점이라는 조형적 형태로 표현함으로써 한자(漢字)와 서예에서 동양적 추상의 가능성을 발견한 획기적인 업적으로 칭송되고 있습니다. 저는 문자 추상을 볼 때마다 만약 스티브 잡스가 고암의 문자 추상을 이전에 접했더라면 ‘애플’의 상징 대신 고암의 ‘문자 추상’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는 나름의 상상을 해봅니다.
끝내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프랑스 파리의 근교에서 삶을 마감한 그는 어떤 의미에서 예술계의 한류를 태동시킨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K-컬쳐가 세계를 휩쓸고 있지만 향후 순수예술에서의 한류는 동서 예술을 접목한 고암 이응노의 작품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꿈을 가져봅니다.
2007년에 개관한 이응노 미술관은 대전 둔산 대공원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입구에 들어서면 쪽마루로 길게 이어진 복도 쪽 통유리로 대나무 몇 그루가 조용히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평소 대나무를 잘 그려 청년 시절 스승으로부터 받은 호가 ‘죽사(竹史)’였다는 이응노의 대표작인 ‘군상(群像)’ 시리즈는 그분의 글에 작품 의도가 잘 표현되었습니다.
“나에게는 권력 있는 사람들보다는 약한 사람들, 모여서 살아가는 사람들, 움직이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 쪽에 마음이 쏠리고, 그들 속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하곤 했다.”
고암은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작품으로 승화시키고자 언제나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애정이 고암 예술 세계의 원천이었던 것이지요. 대전 시민은 물론이고 타지의 많은 분이 고암의 예술 세계를 감상하기 위해 이응노 미술관 나들이를 해보심이 어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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