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사람은 한계가 없고, 부정적인 사람은 한 게 없다.’ 윌리엄 아서 워드(William Arthur Ward)는 ‘비관주의자는 바람이 부는 것을 불평한다. 낙관주의자는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를 기대한다. 현실주의자는 바람에 따라 돛의 방향을 조정한다.’라고 했다. 이루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되는 방법’을 찾아내고 미루려는 사람은 ‘안 되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우리의 뇌는 긍정적인 말 보다 부정적인 말을 더 잘 기억한다. 한 실험에서 피실험자들에게 15개의 좋은 말과 15개의 나쁜 말을 보여준 결과 66%의 실험자가 나쁜 말을 더 많이 기억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말을 배우는 시기에도 고운 말보다는 욕설 같은 단어나 그러한 말을 더 빨리 배우는 데에는 이러한 사정이 있었는가 보다. 그러므로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와 미치겠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 그럴 수 있어.’ ‘괜찮아, 모든 일이 다 잘 될 거야.’라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마도 긍정의 시작이 될 것이다.
고소고발사건에서 당사자들이 하나의 사건이지만 ‘나는 잘못이 없고 네가 잘못했다’라고 주장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권력을 가진 사람과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도 국민이 바라는 마음은 하나인데 각자의 입맛대로 해석을 다르게 한다. 피해자 또는 이용당하는 사람과 가해자 또는 이용하려는 사람이 하나의 사건을 놓고 바라보는 관점과 잇속 챙기는 생각이 서로 다르기에 전혀 다른 주장을 하게 된다.
똑같은 시간이지만 어떤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시간을 더 만들어낸다. 어떤 사람은 불편한 마음으로 그냥 흘려보낸다. 월급을 주는 사장님은 월급날이 왜 이렇게 빨리 오는 거야 하면서 투덜거린다. 월급 받는 근로자는 월급날이 왜 이리 더디게 오냐고 불평을 한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지는데 각자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느낌의 차이가 이렇게 다르다.
하나의 사물을 놓고 위를 보고 밑을 보고 좌(左)를 보고 우(右)를 보면 각각 다르게 보인다. 누구에게는 정상으로 보이고 누구에게는 밑바닥으로 보이고, 끝점과 시작점으로 달리 보인다. 같은 방향을 보고 있음에도 다르게 보인다면 이는 마음을 다르게 쓰고 생각을 달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곳에 서 있든 앞을 보는 사람은 앞에 있는 것을 보게 되고, 뒤를 보는 사람은 뒤에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다만 바라보고 있는 것들이 긍정인지 부정인지, 행복인지 불행인지는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결정한다. 바라보는 방향이 어디인가에 따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이렇게 큰 차이가 난다.
내 아이의 뱃살이 불룩하면 장대비 내린 후 마중 나온 햇살처럼 반갑지만, 해가 뜰 때마다 불거져 나오는 나의 아래 뱃살은 얄밉기가 한이 없다. 같은 뱃살인데도 느낌이 다르다. 반가운 마음이 시작하는 곳은 어디이고 얄미운 마음이 끝나는 곳이 어디인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좋은 추억 나쁜 기억들을 떠올리지만 어떤 기억을 더 많이 떠올렸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의 씨앗을 키우고,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의 뿌리를 내린다. 시작점에서의 아주 작은 생각 차이가 끝점에서의 결과를 크게 가른다. 마치 강남에 있는 빌딩 소유주와 집 한 채 없이 서울 변두리에서 월세로 살아가는 빈털터리와의 차이만큼 확연해진다. 인생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내가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고 말한다. 일어나지도 않을 걱정거리를 앞세워 날마다 걱정 놀이를 한다. 날마다 ‘걱정’거리를 찾는 부정적인 생각과 그러한 습관은 병을 키운다. 걱정 근심으로 키운 암 덩어리는 더 큰 걱정거리를 만들어낸다. 매사 ‘안되면 어떡하지’, ‘왜 나만 못하지’라는 부정적인 생각들은 진정 어느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 근육을 건강하게 키워 부정적인 생각의 싹을 싹둑 잘라내야 한다. 데일 카네기의 말처럼 바람개비를 계속 돌리기 위해서는 바람이 불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앞으로 달리면 될 일이다. 부정적인 생각을 줄이고 긍정의 말꼬리를 조금씩 이어가다 보면 분명 큰 행복이 다가올 것이다. 긍정이라는 생각의 자석을 끌어당기고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말을 찾아내자. 오늘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내 인생의 마지막 한마디일 수 있다. 믿는 대로 되는 긍정의 힘, 모든 성공은 긍정의 말에서 시작된다고 믿어보자. 나는 돈과 행복이 어울리는 사람이라 생각해보자. 그러면 남은 인생이 정말 여유로울까?
할 수 없다 → 하면 되겠지. 긴장하지 말고 → 맘 편하게. 긴장돼 죽겠어 → 너무 긴장해서 입술이 떨려. 수능시험 보러 가는 아이에게 재수할 생각 꿈에도 하지 마 → 힘들었지 무사히 잘 보거라. ~~하지 마 → ~~하세요. 가지 마 → 머물러주세요. 출입금지 → 떨어져 있으세요. 오지 마 → 홀로 있고 싶네. 요구사항이 말도 안 되는군요 → 요구사항을 명확하게 해주세요. 뛰지 마라 → 걷는 발을 이용해라. 만지지 마세요 → 내 손을 잡으세요. 의자 위로 올라가지 마세요 → 발을 바닥에 두세요. 우산을 가져오지 못했네 → 우산을 놓고 왔네. 큰소리치지 마세요 → 조용한 목소리 들려주세요. 바빠 죽겠다 → 잘나가니 바쁘네. 고생하셨습니다 → 정말 멋졌습니다. 너의 실수 이제 넌더리가 난다 → 교정 한 번 더 보는 것이 황당한 실수를 피합니다. ~~ 때문에 → ~~ 덕분에 등등 부정어를 긍정어로 바꾸어 표현하면 분위기가 훨씬 부드럽다. 어딘지 모르게 그 사람이 고급지게 보인다.
잘하고 있어, 더 좋아질 거야, 다 잘 될 거야, 괜찮아, 좋아 등의 긍정적인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많은 힘을 준다. 그냥 듣기만 하는 것보다 말을 하면 효과가 두 배로 나온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 하루 제가 계획한 것들 다 이루겠습니다’라고 외치면 저녁에는 ‘오늘 계획한 것을 다 이루었습니다. 감사합니다.’를 외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나에게 내뱉는 말의 힘’은 매우 크다. 매사 긍정적인 언어를 통해 주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면 좋겠다. 내가 하는 말은 듣는 상대방과 내뱉는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사무실에서 상사가 나 아닌 다른 동료에게 욕설을 퍼부어대면, 나의 귀를 통해 들어온 그 욕 때문에 나한테도 부적정인 파장을 일으킨다. 무시하고 잊으려 해도 계속 떠오른다. 그러니 부정적인 단어, 욕, 험한 말은 하지 않고 듣지 않는 게 상책이다.
부정적인 언어를 줄이려는 어느 선생님은 “ ‘저 망했어요’라는 말을 하고 싶으면 ‘망고’, ‘아 짜증 나’라는 말을 하고 싶으면 ‘짜장면’을 외쳐라”라고 하였다고 한다. 망했어요, 짜증 나 라는 단어는 듣는 사람 누구에게나 악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망고, 짜장면 등으로 바꾸어 표현하면, 그 뜻을 알고 있는 나 자신 이외의 사람에게는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른 말꼬리도 더 찾아보자.
말들에게 먹을 것 주지 마시오 → 말은 사과와 당근만 먹어요. 아직 못 받았습니다 →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CCTV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훔쳐 가지 마세요 → 카메라를 보고 웃어주세요. 나무에 오르지 마세요 → 길에 머물러주세요. 풀을 밟지 마시오 → 식물이 자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세요. 등등.
‘괴롭다’ ‘힘들다’ ‘죽겠다’ ‘미치겠다’라는 말이 입에 붙어 있다면 그 말대로 내 마음이 괴롭고 힘들어서 죽어간다. 이러한 말이 습관적으로 배어 있는 사람은 말의 씨가 싹이 트고 자라서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 괴롭고 힘들어서 결국은 죽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
파블로 피카소는 ‘나는 최고로 성공하는 화가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하고 다닌 덕분에 30대에 백만장자가 되었고 크게 성공했다. 빈센트 반고흐는 ‘나는 이렇게 비참하게 살다 죽을 것 같아, 불행은 나를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 같아’라는 말을 하고 다닌 덕분에 그는 죽을 때까지 가난했고 무명으로 살다 무명으로 죽었다고 한다.
우리는 어떤 말을 더 많이 하면서 살아가는가? 긍정의 말인가 부정의 말인가? 긍정의 말이 활짝 꽃피도록 해보자. 인생을 감사로 물들이고 긍정의 힘으로 주변을 밝게 해보자. ‘이것조차도 고맙다’라는 생각과 ‘이것밖에 대접을 못 받네’라는 생각의 차이 얼굴에 피는 주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긍정의 천사를 만나거나 부정의 악마를 만나게 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언어습관에 달려있다.
'스토리마당 > 송란교의 행복사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하는 말에 살아있는 색깔을 입히자 (0) | 2024.02.01 |
---|---|
낮말은 뇌가 듣고 밤 말도 뇌가 듣는다 (2) | 2024.01.25 |
나는 지금 어떤 말을 뿌리고 있는가? (1) | 2024.01.11 |
줄 것 없는 빈손, 채울 것 없는 빈속 (2) | 2024.01.04 |
정이 메말라 소화불량 걸리면 인생도 불량하다 (1) | 2023.12.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