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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마당/송란교의 행복사냥

말에 향기를 입히자

by 이치저널 2024.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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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란지교(芝蘭之交)는《명심보감(明心寶鑑)》교우(交友) 편에 나오는 문구다. 지초(芝草)와 난초의 향기롭고 고상한 사귐이라는 뜻이다. 원문을 더 살펴보면, '공자(孔子)는 "선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향기를 맡지 못하니, 그 향기에 동화되기 때문이다(子曰 與善人居 如入芝蘭之室 久而不聞其香 卽與之化矣).

선하지 못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치 절인 생선가게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그 악취를 맡지 못하니, 또한 그 냄새에 동화되기 때문이다(與不善人居 如入鮑魚之肆 久而不聞其臭 亦與之化矣). 붉은 주사를 가지고 있으면 붉어지고, 검은 옻을 가지고 있으면 검어지게 되니, 군자는 반드시 함께 있는 자를 삼가야 한다(丹之所藏者赤 漆之所藏者黑 是以 君子必愼其所與處者焉)"라고 하였다.

공자의 말처럼 향기로운 사람이 곁에 있으면 향기로운 냄새가, 생선에 절인 사람이 곁에 있으면 생선 절인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주변에 지초와 난초처럼 향기로운 사람이 많으면 향기로 물들 것이고 소인배들이 많으면 썩은 냄새로 물들 것이다.

몸에 밴 냄새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입에 밴 말에 따라 낚싯밥에 고기가 몰려들 듯 다른 사람들이 몰려오기도 한다. 역경(易經) 계사상전(繫辭上傳)에서 금란지교(金蘭之交)라는 말이 유래하였는바, “군자(君子)의 도는 나가서 벼슬을 하거나, 물러나 집에 있거나, 침묵을 지키거나, 말을 할 때, 두 사람이 마음을 하나로 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고, 마음을 하나로 하여 말하면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子曰 君子之道 惑出惑處 惑默惑語, 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 라고 하였다. 서로 다른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두 사람이 어찌 한 마음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한 마음이 되어 말을 한다면 난향과 같이 향기롭다고 일러준다.

 

 

 

길을 걷다 보면 유난히 많은 개미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다. 빵부스러기이거나 바짝 마른 벌레의 다리 조각들에 수백 마리의 개미가 달라붙어 있다. 단물을 빨기도 하고 잘게 나누어 먹기도 한다. 이들을 한 곳에 불러 모으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흙먼지 속에 숨어있는 먹을거리를 어찌 찾아낼 수 있을까? 이는 배고픔의 힘이 아닌 냄새의 힘이 아닐까?

유난히 사람들을 잘 모이게 하는 이웃 사람을 볼 수 있다. 겉모습을 보아서는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밝은 표정이나 말하는 품세가 남과 다르다. 말에 단내가 나고 인품에 향기가 나니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이다. 그는 향기 있는 사람이다. 만나면 반갑고, 만나지 못하면 보고 싶고, 만날수록 정이 드는 사람이다. ​코로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아니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오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겸손한 언행,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씨는 좋은 향기의 원천이 된다.

 

근주자적(近朱者赤), 붉은 것을 가까이하면 자기 스스로도 붉게 물든다는 것으로, 먹을 가까이하면 검게 물든다는 근묵자흑(近墨者黑)과 비슷한 뜻이며, 근주필적 근묵필치(近朱必赤 近墨必緇)라고도 한다.

 

중국 서진(西晉)의 문신이자 학자인 부현(傅玄:217∼278)이 편찬한 《태자소부잠(太子少傅箴)》에 실려 있는 다음 구절에서 나온 성어이다. '붉은색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붉은색으로 물들고 먹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검어진다. 소리가 고르면 음향도 맑게 울리고 형상이 바르면 그림자도 곧아진다[近朱者赤 近墨者黑 聲和則響淸 形正則影直].' 좋은 친구를 사귀거나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면 좋은 영향을 받고, 나쁜 친구를 사귀거나 나쁜 환경에서 생활하면 좋지 않은 영향만 받는다는 말이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다. 세 사람이 거짓말로 없는 호랑이를 만들어낸다. 나는 거짓이라고 주장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몇 차례 우기면 거짓이 참이 되고 참이 거짓으로 둔갑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늙은이 취급하면 스스로 늙은이가 되어버린다. 건강한 사람이 갑자기 환자로 변하고 젊은 사람이 갑자기 늙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자신이 그렇게 반응을 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아픈가, 내가 그렇게 늙었는가 하는 생각이 자신의 뇌를 지배하면 결국 아프지 않고 늙지 않고 견뎌낼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하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 수도 타락으로 이끌 수도 있는 것이 우리들이 하는 말이다. ‘나는 아닌데’ 라고 말하고 싶은가요? 우리들은 만나는 사람들을 무의식적으로 등급을 매긴다. 우리들은 평가하고 있는 사람을 자신이 평가하고 있는 수준으로 만들어 내곤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각은 언제나 옳다고 믿기 때문에 자신이 평가하는 다른 사람은 결코 자신의 평가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을 여차저차 평가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그 사람에 대하여 평가하는 말을 밖으로 끄집어낸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 대해 나쁘게 평가할 필요는 없다. 말에 향기가 있어 나쁠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무조건 좋은 말 예쁜 말 향기로운 말로 감싸주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말이 나를 그렇게 만들 듯이 나의 말이 다른 사람을 또한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다. 향기로운 말은 향기로운 사람을, 악취를 풍기는 말은 악취 나는 사람을 만들어낸다. 내가 좋은 말을 더 많이 하면 다른 사람은 나쁜 말을 덜 듣게 된다. 내가 나쁜 말을 더 많이 하면 다른 사람들은 좋은 말을 덜 듣게 된다.

 

사람들이 싸우면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대부분 자기보다 낮은 수준의 사람으로 만들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갈수록 더 천박하고 수준 떨어지는 나쁜 말들을 꺼낸다. 한 대 맞으면 두 대를 때리고, 두 대를 맞으면 세 대를 때리고 싶은 것처럼, 상대로부터 무시당하는 말을 들으면 그보다 훨씬 더 세게 보복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말싸움하다 주먹다짐이 되고, 어린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는 경우가 그렇다.

말도 품앗이다. 자신의 생각, 자신의 말로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대부분 남의 생각, 남의 말로 살아간다. 좋은 평가 좋은 대접을 받고 싶으며 다른 사람에 대해 좋은 평가를 먼저 해주면 된다. 인생은 Give & Take다. 먼저 베풀고 나중에 돌려받는 것이 맞는 순서다.

 

꽃의 향기가 퍼져가는 길을 눈을 부릅뜨고 따라가 보았는가? 꽃이 피어나는 소리를 귀를 활짝 열고 들어 보았는가? 말에 향기가 있고 인품에 향기가 흐르는 사람을 닮아보려 했는가? 아름다운 추억을 아지랑이처럼 피어나게 하는 예쁜 꽃을 얼마나 자주 상상하는가?

좋은 생각이 많으면 좋은 생각이 늘고, 나쁜 생각이 많으면 나쁜 생각이 많아진다. 목재를 대패질하고 그 목재에 자개를 붙이고 예쁜 모양을 새겨 넣고, 그림을 그리고, 장인의 손, 명장의 손을 보태면 결국 그 목재는 명품으로 거듭난다. 평범한 사람도 말에 향기를 입히면 명품 인재로 거듭날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십악(十惡)은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을 뜻한다.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기어(綺語). 탐욕(貪欲). 진에(瞋恚). 사견(邪見)을 일컫는다. 이 중에서 입이나 말을 통한 악행이 4가지나 된다. 妄語(거짓말이나 헛된 말), 惡口(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兩舌(이간질하는 말), 綺語(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등이 있다. 말에 향기가 있어야 선행이 가능하다.

들어서 기분 좋은 말, 정말 잘했어. 와! 너 짱이네. 넌 웃는 게 좋아 보여. 잘 지내. 행복하자. 사랑해. 수고했어. 역시 자네가 최고야. 이번 일은 자네 덕분에 잘 끝났어. 괜찮아 실수할 수도 있어. 오늘 내가 한 잔 살게. 그런 인간적인 면이 있었군. 내가 뭐 도와줄 건 없을까. 그래 자네를 믿네. 잘 될 거야. 이런 말을 들으면 더 잘해보려는 욕망이 솟는다.

밥 한 끼 먹자고 찾아온 친구에게 시간 없다는 핑계를 대며 매몰차게 되돌려 보내지는 않았는지, 함께할 시간을 공동으로 투자하고 싶어 하는 친구에게 나의 시간만 소중하다고 외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도도히 흐르는 인생의 강에서 징검다리를 나 혼자 건너려 떼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냥 말을 하고 싶어서, 말이 그리워서 홀로 지내는 시간을 멈추어보고 싶어서 찾아온 사람에게 너무 매몰차게 굴지는 않았는가? 두발로 걷고 뛰어다닐 수 있는 나는 외발로 위태롭게 다니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양보하고 있는가? 부는 바람이라고 골방에 갇힌 쾌쾌한 냄새를 좋아할까? 그래도 말없이 방 한 바퀴 돌면서 찌든 냄새는 가져가고 새롭게 향기로운 바람을 넣어 준다. 봄날의 향기를 닮아가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똥 밟은 신발에는 똥파리가 모일 것이고 꽃 등 이고 걸어왔으면 꽃나비들이 모여들겠지요. 첫날밤의 달콤한 키스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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