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초원과 광활한 사막, 한국인이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며 여행하고 싶어하는 버킷 리스트의 나라
오는 금년 5월 15일부터 한국인에 대해 무사증 입국 허용, 비약적인 교류 협력의 확대 속에 긴밀한 상생의 관계

드넓은 초원과 광활한 사막. 사람의 마음을 탁 트이게 한다. 사람이 자연과 서로 교감하며 하나가 되는 나라, 몽골. 한국인들이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며 여행하고 싶은 버킷리스트에 있는 나라가 몽골이다.
몽골을 여행하는 한국인이 급격히 증가했다. 몽골 이민청 자료에 따르면 팬데믹(pandemic) 직전인 2019년에만 10만 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몽골을 방문하였는데, 이는 러시아, 중국에 이어 한국이 세 번째이다. 특히 금년 5월 15일부터 한국인에 대해 무사증입국을 허용되면서 더 많은 우리 국민이 몽골의 자연을 맘껏 느끼게 될 것이다. 반면 몽골인이 가장 많이 진출해 있는 해외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국내 거주 몽골인의 숫자에 완전고용과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이들이 한국에서 버는 소득은 원화로 연간 약 1조 5천억 원에 이른다. 이는 몽골의 한해 국가예산의 약 1/3에 해당한다.


몽골에서 영사로 근무하던중, 몽골 정·관계 인사들을 만나면 우스개 질문을 던지곤 했다. “몽골의 아이막(province, 道)이 몇 개인가요.” 다들 “21개”라고 대답한다. 맞다. 21개이다. 그러나 나는 22개라고 생각한다. 인구 규모로 볼 때, 2만 명이 넘지 않는 아이막이 여럿 있는 것을 볼 때, 4만 여명의 몽골인이 살고 있는 한국은 아이막 중에서도 꽤 큰 아이막인 셈이다.(2022년 3월 기준)
한국과 몽골의 외교적 관계는 1990년으로 거슬러간다. 몽골은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사회주의를 채택했으나, 이를 폐기하고 1990년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했다. 그해 몽골은 한국과 수교를 맺었고, 러시아, 중국 일변도의 외교관계에서 이른바 “제3의 이웃국가 정책(The third neighbor policy)”을 표방하며 외교다변화를 추진해 오고 있다. 물론 제3의 이웃국가 중 가장 중요한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과 몽골은 유사성이 많다. 정을 중시하는 삶이나 위기 속에 끈끈한 공동체 의식을 중심으로 강하게 단결하는 모습 등이다. 한국은 일본강점기의 독립운동과 6.25전쟁 등 여러 순간에서 이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몽골도 청나라로부터 독립쟁취나 스탈린의 압제를 견디는 과정 등에서 민족적 긍지와 강한 공동체성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한편 현대에는 칭기스칸의 서사적 영웅담과 적은 규모의 인구 현실 앞에서 일반 대중의 가슴속에 강한 공동체성이 깊이 내재되어 국민들의 끈끈한 단결력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 몽골 두 나라 모두 아픈 근대사를 겪고, 민족이 나뉘어 있다는 점에서도 서로의 성정을 느끼기에 충분하다.(몽골 민족도 내몽골을 비롯하여 여럿으로 분할되어 주로 중국, 러시아에 흡수되어 거주하고 있다.) 차이는 어떠한가. 한국은 과거 농업중심의 정착민족으로 살아온 반면 몽골은 유목민족의 삶을 영위해 왔다. 그리고 한국이 좁은 국토에 인구밀도가 높다면 몽골은 광활한 영토에 인구밀도는 세계에서 매우 낮은 국가에 속한다.

오늘날 한국과 몽골은 경제, 사회, 문화 등 많은 분야에서 교류협력이 확대되고 있으며, 긴밀한 상생체제를 구축해 가고 있다. 몽골은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여 한국의 경제개발을 발전모델로 삼고 있다. 그리고 몽골인들은 한국에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 가며, 인류학적으로 한국인들에게 친밀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국의 사회, 문화, 정서를 이해하는 인재의 필요성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이상 학위를 받은 1,200여명의 한국유학파가 몽골에 귀국하여 사회 각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지금도 1만여 명에 가까운 몽골 젊은이들이 한국에서 땀 흘리며 공부하고 있다.
몽골은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이후 급격한 경제발전을 경험하고 있는 ‘가능성과 미래’의 나라이다. 다양한 젊은 세대들의 교류가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몽골의 청소년과 대학청년 등 미래 세대들의 교류확대에 관심을 가져보자. ‘미래’는 바로 그들의 것이고 양국 모두에게 유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몽 두 나라의 아름다운 미래에 대해 중앙 및 지방정부와 대학, 기업 등 민간이 함께 하기를 기대하며, 몽골 노래 "뜨거운 나의 고향(Халуун элгэн нутаг)"제목의 마두금 연주영상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길강묵 / 전 주몽골대한민국영사, 법무부 화성외국인보호소장, 행정학박사)
1. 할롱 앨겐 누탁(Халуун элгэн нутаг) 연주곡
연주(Morin Khuur) : 길강묵, 천상의 선율(Sky Melody) 밴드
*천상의 선율 밴드는 몽골 국립문화예술대 교수로 구성되어 있음
2. 할롱 앨겐 누탁(Халуун элгэн нутаг) 노래곡
오페가 가수
(1절) 오페라 가수 자브하(Javkhaa) (2절) 오페라 가수 잉크나란(Enkhnaran) (3절) 오페라 가수 자브하(Javkhaa), 잉크나란(Enkhnaran) 중창
한국어 번안 가사
(1절) 마음속 깊이 새겨진 나의 고향 몽골이여, 선인부터 전해 온 포근한 황금 품이어라
(2절) 봄꽃이 피어오르는 기쁨의 봄 다시 왔네, 강과 개울 노래해 하얀 성산도 미소 짓네
(3절) 서늘한 바람이 불어 잇고 머리 얼굴 감싸주니, 나의 맘이 행복해 따스한 이곳 나의 고향
이 노래는 모르는 몽골인은 없을 정도로 대중적이다. 몽골의 '나라노래(국가)'가 있어서 당연히 몽골 어린이들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에서 배운다. 할롱 앨겐 누탁(Халуун элгэн нутаг)은 몽골의 제2의 국가 노래라고 칭할 정도이니, 이 노래가 갖고 있는 몽골 사회에서의 위상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어떤 분들은 이 노래를 한국의 ‘아리랑’에 빗대어 비교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는다. 아리랑은 한국인들에게 대중적이지만 ‘국가(애국가)’를 대체할 만한 곡은 아니기 때문이다. 할롱 앨겐 누탁(Халуун элгэн нутаг)은 몽골국가를 대체할 정도의 무게감도 있으면서 대중성도 있다.
할롱 앨겐 누탁(Халуун элгэн нутаг)’은 한국어로 "뜨거운 나의 고향" 정도로 번역이 되는데, 나는 한국어로 "고향의 찬가"라고 제목을 붙여 보았다. 실제로도 이 노래를 ‘고향에 대한 찬가’라고 불러도 가히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몽골 어디를 가든지 이 노래를 악기로 연주하면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다함께 합창을 한다. 그만큼 이 노래에는 대중성뿐만 아니라 민족성이 담겨 있고, 공동체성도 느껴진다.
이 노래는 남스라자브(Ц.Намсрайжав)라는 음악가가 작곡하였는데, 이 분은 몽골 국립필하모니를 설립한 몽골 음악계의 거두이다. 가사는 바뜨라(Ж.Бадраа)라는 작가가 썼는데, 바뜨라(Ж.Бадраа)는 글을 쓸 때에 중의적 표현을 매우 잘 사용한다. 나는 이 노래를 한국어로 표현하기 위해 매우 신중하였다. 왜냐하면 이 노래가 갖고 있는 상징성과 무게감이 매우 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노래의 작사 작곡가 두 분이 몽골 당대의 최고의 음악가와 문학가이셨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표현하는 것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누가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롱 앨겐 누탁(Халуун элгэн нутаг)의 2절에 등장하는 “봄”이라는 단어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2절의 '기쁨의 봄'은 매우 중의적인 표현이다. 한국이 일본강점기에 있을 때, 그 당시 저항시인이었던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에 등장하는 '봄'의 의미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 몽골은 1918년~1921년 사이에 청나라 군대가 물러가고 독립국가로서 출발하게 된다. 그런데 독립을 한 이후에도 러시아의 영향으로 ‘독립’, ‘주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문학가 바뜨라(Ж.Бадраа)는 몽골의 독립, 주권국가로의 회복 등을 표현하기 위해 ‘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었다. “봄꽃이 피어오르는 기쁨의 봄 다시 왔네, 강과 개울 노래해, 하얀 성산도 미소 짓네” 이 노랫말에는 다음과 같은 매우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몽골나라가 주권국가로서의 독립을 쟁취하니까 봄이 온 듯 기쁨이 넘치는 구나. 얼마나 기뻤으면 몽골의 강과 개울도 기쁨의 노래를 부를까. 심지어는 변함없이 몽골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았던 만년설산조차도 환하게 웃음 띤 얼굴을 하는구나.”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자브하가 부른 1절을 유의해서 들어보면 매우 흥미롭다.
'스토리마당 > 길강묵의 몽골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두금의 에피소드 (제3부 - 2) (0) | 2022.06.30 |
---|---|
몽골의 초원 위에 흐르는 모린호르(馬頭琴)의 선율 (제3부 – 1) (0) | 2022.06.09 |
시 '고비의 바람'이 프렙수렝이라는 유명 작곡가에 의해 노래로 탄생 (0) | 2022.05.25 |
생존을 위해 힘겨운 투쟁의 삶을 사는 이들 (제2편 -2) (0) | 2022.05.25 |
생존을 위해 힘겨운 투쟁의 삶을 사는 이들 (제2편 -1) (0) | 2022.05.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