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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마당/길강묵의 몽골 이야기

시 '고비의 바람'이 프렙수렝이라는 유명 작곡가에 의해 노래로 탄생

by 이치저널 2022.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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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강묵 ghilpaul@naver.com

 

 

몽골 오페라 가수 잉크나란이 직접 노래

 

 

 

 

(제목) 고비의 바람(Говийн салхи) (작사) 길강묵 (작곡) 푸렙수랭 (노래) 잉크나란

 

 

고비의 바람(Говийн салхи)

 

고비의 바람은 마음의 숨결이라

마음의 모든 세속, 바람 따라 흐르니 

머리를 헝클여도 마음은 개결하네.

고비의 바람은 강렬한 생명이라

누런 빛, 황무지에 생기를 부어주니 

나그네도 어린양, 들풀과 함께 소생하네

고비의 바람은 응원의 함성이라 

그 바람, 머리얼굴 감싸주니 

친구들 기뻐하고 내 마음은 들뜨네

메마른 땅, 솟아나는 한줌의 풀 

거친 광야, 뛰노는 어린 사슴 

땀 흘리며 쉴 틈 없이 물 긷는 아이 

이들을 대하는 모든 나그네에게도 

응원의 함성으로 다가서는 고비의 숨결

고비의 바람에 고개를 숙인다.

 

고비 사막! 고비라는 말은 ‘사막’이라는 뜻이다. 많은 세계인들이 고비를 꿈꾸며 고비에 가봤으면 하는 생각을 한번쯤은 한다. 필자도 몽골에 근무하는 중에 고비에 한번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였지만, 선뜻 엄두가 나질 않았다. 

울란바토르에서 1박 2일간 달랑자드가드(Dalanzadgad)를 거쳐, 다시 6시간 황무지 광야길을 통해 홍그린엘스(Khongoliin els)을 향해 내달렸다. 고비지역은 메마른 땅에 종일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것은 누런빛 황무지뿐이었다. 날은 뜨겁고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처럼 보였다. 몽골은 하루 중 오후 2시부터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하여 보통 오후 3~4시 전후에 기온이 가장 높다. 오후 2시쯤 되었을까.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드넓은 광야 사막에서 눈에 보이는 유일한 게르가 보였다. 게르 주인은 지나가는 여행객이 식사할 수 있도록 게르를 흔쾌히 개방해 주었다. 고마웠다. 따스한 인심이 느껴진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주 어린 여아는 낯선 사람을 보고 신기해한다. 낯설어서가 아니라 아마 외국인이라서 그런 듯하다.

 

테를지 국립공원의 게르식 호텔. 밤에는 하늘의 별을 감상할 수 있다.

 

뜨거운 햇볕을 피해 게르에 들어가서 게르 문 밖을 내다보니, 뜨거운 열꽃이 황무지의 공중을 향해 뜨겁게 피어오르고 있다. 그런데 예사롭지 않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내 아이가 어디선가 연신 물통에 물을 길어다가 게르 문앞의 큰 물통에 물을 붓고, 또 길어서 붓고…. 

나는 나가서 그 아이에게 물었다. “몇 살이니?” “12살이어요.”라고 대답한다. 기특하고 대견했다. 어른 스러움도 느껴졌다. 그 뙤약볕에 땀을 뻘뻘 흘리며 물을 긷는 몽골 아이. 바로 그 때였다. 하늘에서 바람이 내려와 그 사내 아이와 나의 머리 얼굴을 감싸고 지나갔다. 그 순간 '쉴 틈 없이 물을 긷느라 땀에 범벅이 된 아이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흘렀다. 나는 아이를 감싸 안았다. 쉴 틈 없이 땀 흘리며 물을 긷는 아이에게 "고비의 바람"(Govi's wind, Говийн салхи)이 다가오자, 아이의 얼굴은 환한 미소로 바뀌었다. 고비의 바람은 아이에게 생명과 응원의 함성이었다.

고비의 바람은 한줌의 풀에게, 생존을 위해 뛰는 사슴에게, 쉴 틈 없이 물 긷는 아이와 여행하는 나그네에게도 숨결과 생명, 그리고 응원의 함성이었다. 나는 고비의 바람에 경이를 표하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느낌을 글로 표현하였는데, 그 시가 바로 ‘고비의 바람(Говийн салхи)’이었고, 노래로 탄생하였다.

 

 

나의 친구 바트 볼드 도로교통개발부 차관은 나의 자작시를 읽더니 노래로 만들고 싶다고 한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몽골 고비사막의 모습, 시에 담긴 의미가 새롭다고 한다. 나는 그저 덕담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시 '고비의 바람'이 프렙수렝이라는 유명 작곡가에 의해 노래로 탄생하였다.

그리고 얼마후 몽골 오페라 가수 잉크나란이 자신이 꼭 이 노래를 부르고 싶다며 이 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몽골 국가행사에 초청받는 촉망받는 오페라 가수였다. 모두가 감사한 분들이다. 고비에서도 꿈틀거리는 생명을 느껴 글로 표현한 외국인, 그 시를 읽고 고비의 새로운 의미를 찾은 사람들, 생명이 담긴 노래로 만들고, 노래를 불러준 가수…. 서로의 느낌과 감상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음악작품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한국인은 잉크나란이 한국어 가사로 부른 2절 후렴 부분을 유의해서 들어보면 매우 흥미롭다.

<고비의 바람>을 감상하면서 문득 고비의 바람과 같은 삶이 떠올랐다. 뜨거운 광야에서 서늘한 바람과 같이, 무더운 날에 시원한 냉수와 같이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뜨거운 날, 힘들고 지친 날 <고비의 바람>과 같은 삶을 살기를 꿈꾼다. 고비를 여행하는 모든 분들에게 애창되는 곡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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