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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마당/정의식의 기생이야기

길상사를 기부한, 자야 김영한

by 이치저널 2022.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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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식 jus5858@naver.com

 

 

시인 백석이 사랑한 여인, 자야 김영한

 
 
 
 
 

일제강점기 시인 백석은 천재적인 재능과 훤칠한 외모로 당시 많은 여성의 선망 대상이었다. 구전(口傳)에 의하면 그가 길을 지나가면 여인들이 자지러졌을 정도라 했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인, 기생 김영한과의 러브 스토리는 '로미오와 줄리엣'만큼이나 가슴이 찡하고 아려온다.

 

인터넷캡쳐

 

백석은 함흥 영생여고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하던 1936년, 회식 자리에 나갔다가 기생 김영한을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

잘생긴 로맨티스트 시인 백석은 그녀를 옆자리에 앉히고 손을 잡고는, "오늘부터 당신은 영원한 내 여자야.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기 전까지 우리에게 이별은 없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백석은 이백의 시구에 나오는 '자야(子夜)'라는 애칭을 김영한에게 지어줬다고 한다. 그렇게 둘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져 연인이 된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도 장애물이 등장한다. 유학파에, 당대 최고의 직장인 함흥 영생여고 영어 선생이었던 백석의 부모는 기생과 동거하는 아들을 탐탁지 않게 여겼고, 강제로 다른 여자와 결혼을 시켜 둘의 사랑을 갈라놓으려 한다.

백석은 결혼 첫날밤에 그의 연인 자야(子夜)에게로 다시 돌아간다. 그리고 자야에게 만주로 도망을 가자고 제안한다.

그렇지만 자야는 보잘것없는 자신이 혹시 백석의 장래에 해가 되진 않을까 하는 염려로 이를 거절한다. 백석은 자야가 자신을 찾아 만주로 올 것을 확신하며 먼저 만주로 떠난다.

만주에서 홀로된 백석은 자야를 그리워하며 그 유명한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짓는다. 그러나 잠시 동안이라고 믿었던 이별은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만다.

해방되고 백석은 자야를 찾아 만주에서 함흥으로 갔지만 자야는 이미 서울로 떠나 버렸다.

그 후 3.8선이 그어지고 6.25가 터지면서 둘은 각각 남과 북으로 갈라져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다. 이후 백석은 평생 자야를 그리워하며 홀로 살다가 북에서 1996년 사망하게 된다.

怨恨의 38선을 넘어 함경남도 함흥에서 여자 몸으로 서울로 피난 온 기생 ‘자야’(子夜; 본명 金英韓(1916 ~ 1999)는 당시 대한민국 3대 고급 요정 중 하나인 '대원각(大苑閣)'을 설립(1953년), 한국 재력가로 성장했다.

 

 

훗날 자야는 당시 시가 1,000억 원 상당의 대원각을 조건 없이 법정 스님에게 시주를 한다. 그 대원각이 바로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사찰 '길상사(吉祥寺)'이다.

평생 백석을 그리워했던 자야는 폐암으로 1999년 세상을 떠난다. 그녀가 떠나기 전 1,000억 원 상당의 재산을 기부했는데 아깝지 않냐? 라는 기자의 질문에 자야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1,000억 재산이 그 사람 시 한 줄만도 못해. 내가 죽으면 화장해 길상사에 눈 많이 내리는 날 뿌려달라."고 하였다 한다. 백석의 시처럼 눈이 푹푹 내리는 날 백석에게 돌아가고 싶었나 보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하고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다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흐르는 깊은

산골로 가 살자.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면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다.

 

 

함흥에는 지금도 영생여고가 자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함경북도 함흥에 가서 함흥냉면과 가자미식해도 맛보고 싶은데 가자미식해가 없으면 꿩 대신 닭이라고 명태식해라도 먹어보고 싶었다.

1996년 북쪽에서 자야를 그리면서 홀로 지내다가 돌아가신 백석의 순애보도 대단하지만, 백석을 그리워하면서 어렵게 세운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하고 돌아가신 자야 김영한의 순정이 너무 아름답다.

또 대단한 것은 대원각을 길상사에 봉헌을 하고도 10년 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법정 스님도 이 시대의 위인이셨다.

1997년 개원법회를 할 때 김수환 추기경께서 개원축사를 해 주셨고, 2005년 김 추기경과 수녀님들을 모시고 길상음악회를 열었는데 종교를 뛰어넘는 감동이었다.

기독교 신자이신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이 7층석탑을 사찰경내에 세우는 것 또한 종교화합의 도량이기도 하다.

‘백석과 자야’ 두 사람의 슬픈 애정스토리는 지금도 성북동 ‘吉祥寺’ 풍경소리를 타고 아름다운 여운으로 길게 길게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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