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봉사자의 일기
부끄러운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치매라는 질병이 부러워진다
나는 이제 요양원의 일을 막 시작한 요양원 봉사자이다. 오늘도 요양원에는 또 한 분의 치매 환자이신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다. 매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적지 않게 치매를 비롯한 요양을 필요로 하는 노인 어르신분들이 입소하신다.
오늘의 하루도 다른 날과 별다름 없이 할머니를 모시고 아드님과 며느리분이 방문하였고, 원장 선생님과 함께 서류를 작성하며 이것저것 물어보고는 시설을 둘러보았다.
부모님께서 머물러야 하는 곳이니 찬찬히 둘러보며 여러 가지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고 당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부부를 바라보면서 내가 느끼는 씁쓸한 마음은 왜일까? 아마도 시설을 둘러보는 부부의 모습이 부모인 할머니의 치매라는 질병보다는 시설에 관심을 두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인 것 같다.
부모님의 치매 요양을 맡기려는 부부의 덤덤한 모습에서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을까 하는 모습이 느껴져서이다(자식이지만 조금은 어쩔 수 없다는 귀찮은…).
이런 내 느낌이 좀 예민한 걸까? 아니면 자연스럽게 갖는 감정인지 내내 낮의 일을 생각하며 나 자신을 돌아본다. 그러면서 그런 부부의 덤덤한 모습과 나 자신도 별다르지 않음을 생각해본다.
죄라 여길 만큼의 악한 생각은 아닐지라도 악한 마음의 생각을 한 적은 없는지 가끔 나의 이기적인 생각으로 누군가에게 대하지는 않았는지 등등, 이러한 나의 반성과 나를 돌아보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면서 부부의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덤덤한 부부의 모습과 다른 봉사자의 안내를 받으며 머물러 계실 곳으로 걸어가시는 할머니의 뒷모습 광경이 내 기억 속에 교차하는 순간이다. 그 생각이 떠나지 않는 밤이다. 그리고 나의 이런 부끄러운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치매라는 질병이 부러워지는 밤이다.
그러면서 내 생각의 저편에서 '치매도 부러울 때가' 있다는 소리 없는 무언의 외침이 나를 새삼 놀라게 한다. 왜냐하면 부부를 생각했던 내 기억과 오늘까지 살아오며 생각했던 악한 생각, 이기적인 생각 등등이 기억나지 않게 말이다. 그러면 오늘이라는 내 기억의 하루가 덜 부끄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 아니 어쩌면 잊는다는 치매 때문에 나의 부끄러움을 기억 못 하고 그저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하루로 살아가니 말이다.
이렇게 치매가 부러울 때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내일 어제 오신 할머니를 보게 되면 어느 특정한 가정의 어머니가 아닌, 오늘 여기 계신 어르신의 현재 모습으로 대하리라는 생각과 다짐을 하면서 잠을 청해본다. 이런 내 생각과 반성이 앞으로 치매 환자이신 분들을 대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나의 마음을 다른 사람 모두에게도 전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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