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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마당/송진호의 복지수다

교권과 장애인 인권에 대한 짧은 생각

by 이치저널 2023.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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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부일체라는 말은 그저 옛말일 뿐인가?

 

나에게는 누나가 한 명 있다. 누나는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요즘 같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70년대 말에는 가능했던 모양이다. 누나는 요즘말로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다.

출산이 예정일로부터 2주 이상 지연되었고, 출산 당시 머리가 나오질 않아 기계로 잡아 꺼냈다고 한다. 그리고 네 살 때까지 말을 하지 않아서 말을 못하는 줄 알았었다고 한다. 우리 누나에게 70년대의 평범한 부모가 아닌 우영우의 엄마 아빠 같은 부모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누나는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 선생님의 말과 행동을 따라 한다든지 수업시간에 교실 밖으로 나간다던지 하는 행동을 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폐스펙트럼 장애의 특징적인 행태 중 한 가지 였다. 엄마는 선생님께 죄송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누나를 자퇴시켰다고 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누나가 한글, 한자, 영어 등을 스스로 터득하고 12간지, 양음력 변환 등을 줄줄 외웠다는 점이다. 누나는 내가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나보다 영어와 한문을 많이 알았었다. 버스를 잘못 탔다가 집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백화점에서 혼자 구경을 다니다 엄마를 찾은 적도 있다고 했다.

 

내가 누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글을 쓰는 이유는 어느 웹툰 작가에게 고소를 당하여 고통 받고 있는 특수교사의 사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선생님께 죄송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가 되는 것이 미안하여 딸을 자퇴시켰었다. 그런데 어느 유명 웹툰 작가는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본인의 아이를 지도하는 특수교사를 아동학대로 고소했다

장애가 심한 경우 발달장애 아동에게 자신의 잘못을 이해시키고 행동을 개선시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어려운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특수교사의 복직은 이루어졌지만 유명 웹툰 작가는 소를 취하하거나 사과하는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

 

언젠가부터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옛날 임금 같은 존재가 아닌지 오래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스승이 아닌지 오래이며, 아버지 조차도 언젠가부터 아이들에게는 그저 꼰대 취급을 받는 경우를 많이 본다.

 

사실 나도 우리집 아이들에게 꼰대 소리를 가끔 듣는다. 옛날에도 선생님들을 별명으로 부르며 뒤에서 욕하는 문화는 있었다. 여자 선생님들에 대한 짖꿏은 장난도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선생님 앞에서 버릇없이 구는 일은 보통의 학생들은 하지 못했다. 학생인권조례가 생기고 체벌이 금지되면서 중학생 쯤 되면 선생님들을 만만하게 보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세월이 흘러 나도 학부모가 되었고 아이들의 모든 선생님들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교권을 존중해야 하고, 가끔은 나에게 조차 버릇없이 구는 아이들에게도 학교에서는 집에서처럼 하면 안된다고 말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나와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일부 학부모들의 갑질과 이기심은 도를 넘은지 오래인 듯하다. 

 

발달장애인의 가족으로서 그리고 사회복지사로서 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들의 고충과 애환을 모르지 않는다. 어쩌면 나 만큼 잘 아는 사람도 드물지 모르겠다. “발달장애 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의 소원은 그 자녀보다 하루만 더 사는 것 이라는 말이 있는데 정말 많은 부모들이 실제로 그 소원을 마음에 품고 산다. 그리고 사회복지사로서 나는 가족이 장애인 자녀를 포기하지 않도록 사회가 보둠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러나 장애를 이유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 무마된다거나 배려를 받는 것이 당연시 되어서는 안된다. 하물며 장애인의 부모가 정당한 교권을 무시하고 본인 자녀로부터 피해를 입은 학생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는 행태는 적반하장에 가깝다.

 

장애인 부모로서 교사의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수도 있다. 그러나 본인 자녀의 행동이 장애를 이유로 이해를 구하기에는 도를 한참 넘은 행동이었음을 먼저 인정해야한다.

드라마 굿닥터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환타지다. 적어도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현실에도 사회에 잘 적응하여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장애인들은 수없이 많고, 그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들도 많다. 금번의 사태가 교권이 회복되고, 교사의 사명이 존중 받으며,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의 고충이 이해되어지는 계기가 되어지기를 바라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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