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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마당/송진호의 복지수다

“팀 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팬 보다 위대한 팀은 없다. 팬 보다 위대한 야구는 없다”

by 이치저널 2022.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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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진호 sjhjks@naver.com

 

 

박용택 선수의 은퇴식에서 후배들에게 꼭 가슴 깊이 새겨달라며 전한 이야기

 

 

 

 

 

2022 7 3일 엘지트윈스 박용택 선수의 은퇴식에서 박용택 선수가 후배들에게 꼭 가슴 깊이 새겨달라며 전한 이야기다.

 

 

어느 지난 글에서 밝혔지만 나는 야구를 좋아한다. 1982 3 27일 프로야구가 시작된 이후 서울을 연고로 한 MBC 청룡을 응원하였고, 1990년 엘지트윈스를 인수하여 리그에 참여한 엘지트윈스의 팬이다.

김재박, 이해창, 이광은, 노찬엽, 김용수, 이상훈, 서용빈, 봉중근 등등 엘지트윈스의 스타플레이어들을 두루두루 좋아했지만, 선수 개인의 열성 팬이었던 적은 거의 없는 듯하다. 그러다 2001년 겨울 고교야구 선수들과 친분을 쌓을 정도로 열정적인 선배 덕에 엘지트윈스 입단을 앞두고 있던 야구선수 한 명과 저녁 식사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1998년 고졸 우선지명으로 엘지트윈스에 지명을 받고 고려대에 진학했던 박용택 선수였다. 나는 선물로 네 잎 클로버 열쇠고리를 준비했고 “FA 두 번 하세요 하고 덕담을 했었다.

2002년 시즌이 시작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용택 선수는 1군에 데뷔했고, 신인왕 후보에 오르는 좋은 활약을 했다. (은퇴식에 같이 갔던 아들이 묻길래 찾아봤는데 그 해 신인왕은 투수 조용준이었다.)  특히 플레이오프 5차전의 활약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날 광주 야구장에 불이 났다. 박용택 선수는 그 해부터 19년간 엘지트윈스에서만 뛰며 야구선수로서 훌륭한 업적을 많이 쌓았는데 7년 연속 150안타, 통산 2,504안타가 최초이자 아직 유일한 대표적인 기록이다.

 

신인 시절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던 박용택은 이승엽, 마해영의 홈런에 막혀 우승을 놓치는데, 그 후로 은퇴할 때까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고 결국 우승 반지 없이 은퇴하게 되는데 선수 본인에게는 물론 팬들에게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은퇴식에서 우승 반지 대신 팬들의 사랑을 가지고 은퇴한다고 말해 팬들을 감동하게 했다.

 

2002년 데뷔 이후 박용택 선수는 스타로 발돋움했고, 그와 다시 마주한 것은 2013년 팬 페스티벌에서였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열 번의 시즌 동안 엘지트윈스는 한 번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고 나 역시 직장생활과 결혼, 지방근무 등으로 야구팬으로서의 열정은 잠시 접어두고 살았던 터라 야구를 TV로만 주로 보았다.

 

2013년은 내가 혼자가 아닌 아들과 함께 야구장에 다니기 시작한 첫해였고, 엘지트윈스가 11시즌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해였다. 그 해 시즌 종료 후 아들과 함께 팬 감사 행사에 참석했었는데, 공식행사가 모두 끝난 후 끝까지 남아서 팬들에게 싸인을 해 주던 박용택 선수와 마주했었다. 그 후로 또 2년이 지난 후 박용택 선수를 처음 만나게 해 주었던 선배의 주선으로 팬들과 박용택 선수의 식사 자리에 참석했고 그날 저녁 안부 메시지에 박용택 선수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후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쭤보려고 했다고 답을 주어 사회복지사와 스타 선수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2015년 겨울 산타원정대 대표 산타 역할을 제안했고, 박용택 선수는 2016시즌 1안타당 3만 원을 적립하여 소이증 아동의 수술을 도와주었고, 2017년에는 야구 꿈나무를 지원했는데 그 선수가 지금 박용택 선수가 졸업한 대학에서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그 외에도 저소득층 한부모가족과 지역아동센터 아동들에게 야구 관람의 기회를 주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사회복지사인 나에게 좋은 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5년 박용택 선수가 어린이재단 본부를 방문하여 협약식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때 박용택 선수가 나에 대해 물었다. 그 물음은 나에게 나와 박용택 선수의 인연을 회상할 기회를 주었고, 나는 박용택 선수에게 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나는 배재고등학교 출신이다. 1995년 대통령배 고교야구 결승전에서 우리 학교가 휘문고와 만났다. 나는 졸업생 신분으로 모교 야구부 응원을 갔고, 거기서 1학년 1번 타자 중견수 박용택을 처음 보았다. 고교야구에서 1학년이 주전으로 뛰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호리호리한 체격의 1학년 학생, 그가 내가 응원하는 엘지트윈스의 심장으로 불리는 전설이 될 것이라고는 그때는 미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회복지사와 후원자로 만나고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되리라고는 더더욱... (사실 박용택 선수가 먼저 나에게 연락할 일은 없다^^::) 그리고 고마운 것은 귀찮은 내색 없이 꼬박꼬박 답장을 해준다는 점이다.^^ 협약식 진행 후 박용택 선수에게 나와 어떻게 아는 사이냐는 질문이 나왔다. 박용택 선수는 아주 꼬마 때부터 아는 사이라고 대답했다. 그 후에 직원들이 나에게 친구냐고 물었었다.^^ 아마도 내가 이야기한 고등학교 때의 인연을 떠 올려 그런 대답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에겐 무척 고마운 일이었다.

 

박용택 선수가 양준혁 선수의 통산 최다안타 기록을 넘어서는 순간 나도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축하 메시지를 보냈는데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답장이 왔다. (사실 나는 답장을 기대하고 연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항상 답장이 온다. 그날도 그랬다) 너무 늦어서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께.

 

2016년 어느 날 야구장에 일찍 도착해서 사인회 현장에 우연히 줄을 섰는데 차례가 되자 나를 알아본 박용택 선수가 "뭐 이런데 줄을 서고 그러세요?" 하더니 아들과 찍어 준 사진

 

어제(2022 7 3일 일요일)는 참 힘든 날이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교회에 가서 오후 예배까지 모두 마친 후 야구장으로 이동하여 3 30분경부터 대기하고, 5시부터 야구 경기를 관람하고 은퇴식에 참석했다. 집에 오니 밤 11시가 다 되어 있었다. 오늘 기사를 보니 박용택 선수는 새벽까지 팬들에게 사인을 해 주었다고 한다.

엘지트윈스 박용택은 그런 사람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해서 30 8개월간 야구를 했는데 한순간도 즐겁지 않았다고 했다. 늘 이기고 싶었고, 더 할 수 없을 만큼 항상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2009년의 어느 순간을 떠 올리며 그 순간 졸렬했을지 모르지만, 저 졸렬한 사람 아닙니다라고 말하며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시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거라며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과거의 잘못을 돌이켜 인정하고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다. 야구를 사랑하지만, 한순간도 즐겁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여러분이 즐거웠으면 된 거죠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대한민국 야구 발전을 위해 파이팅하겠습니다라고 마지막 포부를 밝히는 천상 야구인이다.

은퇴식을 앞둔 이른 아침 주고받은 메시지를 끝으로 이 글을 맺는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아주 특별한 하루가 되시겠네요.

코로나 때문에 늦어졌지만, 팬들로 가득 찬 경기장에서 은퇴식을 할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입니다.

저도 오늘 아들과 함께 현장에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야구를 좋아하고 엘지트윈스를 응원하는 팬으로서 엘지트윈스에서 뛰어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의 삶도 늘 항상 언제나 변함없이 응원하겠습니다.

훌륭한 야구선수, 존경받는 야구인,

행복한 자연인 박용택 건승을 기원합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충분히 즐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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