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호 sjhjks@naver.com
스승의 은혜 감사합니다
“너는 네가 이해 못하면 인정 안 하잖아” 내가 사회복지사가 될 결심을 굳히는데 큰 영향을 주신 모교 병원 사회사업실 의료사회복지사 선생님의 한마디였다. 대화 중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20대 초반의 철부지 청년에게 던진 촌철살인의 한미디였다. 그 분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몰랐었으니까.
나는 대학 시절 구청과 모교 병원의 지원을 받아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모교 병원의 사회사업실 의료사회복지사 선생님과 연을 맺게 되었고, 내가 사회복지사가 되고, 어린이재단에 입사하고, 현장에서 일하는 동안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의료사회복지사의 역할도 그 분을 통해 잘 알게 되었다. 그러다 그 분께서 병가로 모교 병원 자리를 비우시는 동안 연락이 뜸해 지기도 했지만 그 때의 고마움은 지금도 있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분이 젊은 시절의 나에게 던진 한 마디는 결코 잊혀지지 않는 한마디가 되었다.
“너는 내가 볼 때 그릇은 대접인데 왜 공부는 간장 종지 처럼 하냐?” 이 말은 학부 시절 교수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인데 훗날 여쭤보니 교수님께서는 기억 조차 못 하셨지만 나는 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학부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그런데 대학에서 배우는 사회학이라는 학문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고, 부전공으로 행정학을 공부해 보려 했었는데 마침 “최소전공인정학점제”가 도입되면서 4년 안에 복수전공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나는 행정학을 부전공이 아닌 복수전공으로 택했다. 그러다 보니 3학년 부터는 사회학 보다 행정학 수업을 더 많이 듣게 되었는데 그 때 교수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조직행정론” 수업을 들었는데 출석을 부르시던 교수님께서는 “너희 과에 훌륭한 교수님 계시는데 왜 내 수업을 듣냐?” 하셨다. 행정학과 전공필수 수업을 사회학과 학생이 듣고 있으니 하신 말씀이셨고, 당시 사회학과에는 “조직사회학”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복수전공 때문에요”
시간이 조금 지나서 알았지만 교수님께서는 미국에서 공부를 하시고 내가 2학년 때인 1996년에 우리학교에 처음 부임하신 분이셨다. 그래서 였을까? 교수님의 수업방식은 나에게 참 잘 맞았다. 수업시간에 불쑥불쑥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셨고 학생들의 생각을 존중해 주셨다. 오히려 자신 없어 하며 대답을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사회과학에는 정답이 없다. 네 생각을 말해라” 하셨다. 나에게 그 말씀은 지금도 명언 같다. 공강시간 교수님 연구실 문은 항상 열려 있었고, 어떤 날은 여학생들의 쾌활한 웃음 소리가 세어 나왔고 어떤 날은 복학생 선배와의 진지한 대화 소리가 들렸다. 나도 공강 시간에 여러 번 교수님 연구실을 방문해서 대화를 나눴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했을 때 행정대학원 원장님께 나를 추천해 주신 적이 있는데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궁금해서 여쭤봤더니 “포텐셜이 있는 친구라고, 가르쳐보시면 재미있으실 거라고 했지” 하셨다. 타인으로부터 들었던 나에 대한 이야기 중에 가장 기분 좋은 이야기였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공부를 계속할지와 취업을 놓고 고민할 때 “너를 박사과정에 추천해 주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기껏 추천해 줬는데 취직했다고 수업 안 나오면 안되니까 지금 너에게 중요한 게 뭔지 잘 결정해라” 하셨다. 입사시험 합격 소식을 전하고 석사학위 수여식에 갔는데 일부러 내 자리에 오셔서 “진호야, 발령났냐?” 하셨던 것도 너무 감사했다.
그 후로도 나는 종종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고 여러 가지 조언과 도움을 받았다. 2007년 6월 결혼식 주례를 맡아 주셨는데 “제가 아직 주례 설 나이가 아닌데 얘 때문에 처음 주례를 섭니다” 하셨었다. 알고보니 교수님께서 30대에 우리 학교에 부임하였고 40대에 나 때문에 처음 주례를 서신 거였다. 교수님을 직접 뵌지도 3년이 지났다. 그래서 조만간 찾아뵐려고 마음 먹고 있다. 지금도 교수님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시고 조언을 해 주신다.
결혼을 하고 몇 년이 지나 친구들과 모임을 가진 적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 친구들이다. 그 중에는 우리 엄마가 “아들 바꿨으면 좋겠다” 했던 친구가 있다. 술잔을 기울이던 중 그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 네 결혼식에 오셨던 거 알고 있냐?” 친구들과 뒤에서 내 결혼식을 조용히 보고 가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또 물었다. “너 입장할 때 선생님께서 뭐 하셨는지 아냐?”
글을 통해 여러 번 밝혔지만 나는 다리가 불편하다. 걸을 때 발이 끌리고 비 오는 날 미끌어지지 말라고 깔아 놓는 양탄자에 걸려 넘어지기가 일쑤다. 선생님께서는 그런 나를 위해 신랑신부 입장하는 길에 깔린 천(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음^^)을 내가 걸려 넘아지지 않도록 잡아 주고 계셨었다고 했다.
나에게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은 특별하다. 좋은 선생님을 만났고,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6학년 올라갈 때 선생님도 아이들도 모두 그대로 올라갔으면 좋겠다는 대화를 나눈 친구들도 있었다. 현실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 시절 친구들과 선생님과는 아직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로 3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시절 좋은 선생님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하고 있다. 추억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이제 하려고 한다.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제 삶을 지켜봐 주시고 지지와 격려를 아끼지
않아 주신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인정해 주시고 많은 가르침을 주신
교수님 감사합니다.
사회복지사가 어떤 일을 해야하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 주신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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