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의 선율이 허공을 가르면 낙엽이 비처럼 내린다. 흩어져 바람에 날리다 발 위로 구르며 채이고 우수처럼 흩날리며 가을이 어깨 뒤로 떨어져 찬바람 속으로 사라진다.
섬의 앞자락에 탁 트인 바다는 말이 없는데 바다 위 이념의 경계와 분단의 아픔은 힘겹게 바다를 만나 평온을 찾은 한강의 상류로부터 이미 경계를 이루며 흘러내려 물길을 갈라놓았다. 남과 북의 이념의 경계가 가장 가까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강화의 제적봉 평화의 전망대를 찾았다.

그곳의 바다는 울렁이고 출렁거렸으며 북녘의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때 이른 한 겨울 날씨처럼 매섭게 불어왔다. 검은빛으로 일렁이며 거센 파도를 밀고 당기는 바다의 물길은 세찬 바람과 함께 으르렁거리며 더욱더 사납게 뒤채이며 흘렀다.
2km 남짓한 좁은 물길건너의 땅들은 고요하고 평안했지마는 넘을 수 없는 금단의 땅이요 한 서린 슬픔의 흔적이었다. 물길 건너 드넓게 펼쳐진 연백평야는 황량한 바람처럼 누런 벌판으로 을씨년스럽게 쓰러져 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 사라진 오랜 전 촌락의 모습을 하고 있어 기억의 저편에 자리한 추억이 정지된 공간으로 남아 있다. 들판 언저리의 산들은 메마르고 실팍한 옷을 입고 있다.
가을의 끝자락이 오기 이전부터 이미 산들은 성글어 민둥산이 되어있고 남루한 모습으로 들판과 맞닿아 있다. 나무가 없는 민둥산은 들판과 같은 빛깔로 누렇게 성글어 가고 헐벗은 산하는 골짜기마다 슬픔이 가득 고여 정적이 흐른다.
개성의 송악산에서 발원한 산맥과 들의 헐렁한 슬픔은 눈물로 고이다 넘쳐흘러 예성강 꼬리를 물고 하구의 물길이 되어 바다로 흐른다. 교동도 앞바다 건너 길게 물길을 내어 바다로 향해 흐르는 북녘의 예성강이 힘겨워 보이고 한강 물길이 강화 앞바다에서 흐르다 예성강 물길을 만나 조우하고 합류하여도 흐르기를 거부하지 않는다. 다만 이념의 강물이 슬프게 흐를 뿐이다.
강화 앞바다를 휘돌아 교동대교로 빠져나가 서해를 이루며 강은 소멸하고 바다는 생성한다. 지척의 바다 건너 암갈색의 높은 봉우리를 병풍처럼 두른 송악산을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 마시는 은은한 커피 향기의 달콤함이 부드러울수록 마음은 더욱더 시린 향기로 다가오고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가곡 그리운 금강산의 선율은 고독한 감회와 애잔하고 비통함으로 가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드넓은 갯벌 위 파란 하늘 기러기 무리는 바다와 들과 무심한 철책 위를 선회하며 저마다의 뜻대로 하늘을 날아가며 방향에 경계가 없다. 서해의 바다와 노을로 물들어 가는 금단의 들판 사이로 갈대숲이 흔들리며 반짝이는 물빛 햇살이 무심하기만 하다.
우수에 찬 나그네의 쓸쓸한 어깨 위로 떨어지는 낙조는 붉게 물든 바다와 가을 철새들의 군무로 아름답게 수를 놓는다.
바다나 강이 늘 푸르고 아름답지만은 않구나!
흐르는 곳에 따라 아프고 시리게도 보인다.
인생을 흘러가는 여정의 강물도 때로는 격랑을 일으키며 흐르지 않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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