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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마당/이도연의 시선 따라 떠나는 사계

강천산 단풍 고운 빛으로

by 이치저널 2023.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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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강천산으로 떠나는 날 새벽 뒤척이며 잠을 설치다 4시 40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마음 내키면 훌쩍 떠나는 주말여행이지만 여행은 언제나 설레게 하나 보다.

길게 기지개를 켜며 라디오를 튼다. 아나운서가 공영방송의 윤리규정 등 방송 시작을 알리는 설명을 장황하게 하고 나자 애국가가 흘러나온다. 일절부터 사절까지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애국가인 것 같다. 일찍 일어난 탓에 느긋하게 배낭을 챙겨 길을 나선다.

입동이 지난가을 새벽바람이 제법 차게 불어오며 길은 달밤에 그을린 빛으로 아직 어스름하고 사람들의 표정은 등산복의 선명한 무늬처럼 밝고 활기가 넘친다. 정안 휴게소에는 가을의 절정인 단풍놀이를 하러가기 위한 향락차량으로 발 디딜 틈이 없고 남자 화장실까지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정안 휴게소를 빠져나와 다시 천안 논산 고속도로를 들어서자 차량의 흐름이 원활하다. 논산을 거쳐 호남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려 전주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온다. 들판에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추수 후 텅 빈 들판과 강가에는 철새들이 무리지어 모이를 먹어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살찌우기가 한참이고 파란하늘 위로는 기러기 떼가 먼 길의 여정을 위한 힘찬 날갯짓이 바쁘다.

 

 

 

순창 방향으로 접어들자 모악로 옆으로는 파란색 물결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기름진 들판에 구이 저수지가 수반처럼 잔잔한 물살을 일으키고 있고 우측으로는 전주 모악산이 붉은 단풍을 곱게 차려입고 수줍은 모습으로 배시시 웃고 있다.

섬진강 줄기들이 산내들을 감싸 돌며 골짜기와 마을들을 부드럽게 적시고 있다. 고추장 된장 익어가는 마을 순창 읍내를 지나 강천산 입구부터 눈부신 단풍이 부서지는 햇살 사이로 현란한 빛으로 반짝인다.

계곡을 거슬러 오르며 피어나는 아기단풍은 바람에 날리며 흐르는 물결 따라 떨어져 물 위에 바람꽃으로 피어나고 꽃물이 되어 계곡 위를 흐른다. 가을하늘 파란빛을 머리에 이고 계곡을 가로막고 시원스럽게 쏟아지는 병풍폭포 아래로 물보라가 일어나며 무지개가 오색 구름다리를 만들어낸다

숲속 산책로 옆길을 따라 오르자 고요의 정적이 흐르는 강천사가 나온다. 오래 세월의 풍상으로 형체가 희미한 부도전은 천년 세월을 거슬러 기억 저편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강천산 왕자봉을 우러르며 산의 깊은 가슴 속에 둥지를 틀고 있는 천년 고찰 강천사는 소박한 경내의 대웅전 빛바랜 단청이 단아하고 노스님의 염불 소리는 산사의 침묵을 깨며 고요의 울림 속에 속세의 번뇌를 뿌리치듯 깊은 빗장을 두르고 세상을 등지고 돌아누워 깊은 세월을 꿈꾸고 있다.

강천사를 뒷담을 따라 오르자 길섶에 수령이 300년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모과나무가 오랜 세상과 침묵으로 벗하고 서 있다. 길 위쪽으로 뻗어 있는 대나무 숲길에서는 하늘을 향해 초록빛 청초한 푸르른 대나무 숲의 맑은 울림 속에서 서걱거리는 바람 소리가 파랗게 일어난다.

비움과 채움의 소리가 대나무의 마디마디 숲속 가득 고여 있고 가을의 빈 하늘로 곱게 뻗어 올라간 대나무 이파리는 고독의 빛깔로 고요하다. 헐떡이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계곡의 물길 따라 언덕을 오르자 붉은 단풍으로 옷을 입은 현수교가 높이 50m 길이 78m 아스라하게 계곡을 가로질러 봉우리 사이에서 서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계곡을 한 눈으로 담아 가며 현수교를 건너자 하늘을 향하는 천국의 계단같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계단이 시작된다. 계단 중간마다 피로를 덜 수 있도록 쉼터가 설치되어 있고 가파르게 일어선 정상의 전망대에는 정자가 푸른 가을하늘과 맞닿아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 보는 조망은 호남정맥으로 이어지는 산맥의 꿈틀거림이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용천산이라 했다는 말처럼 용트림하듯 남북으로 이어지고 강천산 정상인 왕자봉의 위용이 수많은 깊은 골짜기를 거느리고 하늘 높이 호령을 하고 있다.

깊어 가는 가을의 정취는 온 산으로 불타오르는 산맥을 타고 번져가고 정상에 우뚝 서서 불어오는 바람 앞에 산하를 우러러보며 천년의 풍상을 지켜온 고사목의 세월을 더듬어 시간을 거슬러 오르며 나 또한 산과 바람의 일부가 되어 오늘도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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