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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마당/이도연의 시선 따라 떠나는 사계

가을비에 젖은 물왕저수지

by 이치저널 2023.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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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부터 내린 비가 아침까지 단비 되어 내린다.

길가에 피어난 연분홍 코스모스가 실바람에 가는 허리를 흔들어 살랑살랑 춤추며 꽃잎에 맑은 구슬을 올려놓고 가을비에 젖어 투명하게 빛난다. 빗물이 촉촉이 스며드는 호숫가를 따라 길게 늘어선 갈대들의 흔들림으로 물왕저수지의 가을은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빛으로 더욱더 풍요롭다.

절기가 변하여 곧 가을이 다가올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물 위로 날아드는 물새들은 한가로운 물장구를 치고 물가에 가장 커다란 느티나무 위에 홀로 자리 잡은 왜가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장승처럼 서 있다.

 

안개비에 젖은 저수지의 물안개가 자욱하고도 몽환적인 풍경으로 수면위에 낮게 드리우며 살금살금 퍼져 나간다. 물안개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빗소리의 리듬을 따라 그리움을 자극하는 노래들이 호수의 자장가처럼 들린다.

 

 

 

저수지 주변에 지어진 음식점과 카페는 저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아름다움을 자아내며 수면 위로 물그림자를 드리워 비 오는 날의 수채화로 그림을 그리고 붓질하기에 여념이 없다.

바람결에 갈대는 춤을 추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호수에는 물비늘이 동그랗게,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수없이 많은 사연의 이야기를 물 위에서 하늘 위에서 수면을 가로지르며 퍼져 나가 동화 속 이야기처럼 알록달록 예쁜 모습으로 흔들린다.

 

아담하고 예쁜 카페에서 맑고 투명한 사기잔에 김이 솔솔 올라오는 진한 아메리카노 향이 사르르 구수하고 부드러움으로 감미로운 감성이 되어 가슴 깊이 짜릿하게 스며든다. 젊은 청춘들의 싱그러운 모습도 나이 지긋한 중년의 부드러운 만남도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 속 주인공이 된다.

 

브라운 빛깔과 물방울무늬 커튼이 드리워진 네모난 창 너머로 풍경화 한 폭이 가득 담겨있는 저수지가 잔물결을 일으키며 우수에 찬 동공을 자극하여 시선 끝에서 아른거린다. 창은 풍경을 담은 화폭이 되었고 액자 속 풍경은 불어오는 바람 따라 수시로 얼굴을 바꾸고 있다.

 

저수지 잔잔한 물결 위에 그리움이 고여 갈 때면 그리운 이의 얼굴이 책갈피 사이로 아련한 추억처럼 떠오른다. 카페의 은은한 조명 따라 추억은 빛이 되고 기억이 되며 슬픔과 아픔 모든 것이 아련한 강물 속에 투영되는 풍경 속의 일부가 되었다. 스피커에서는 오래된 풍금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박화목 시인의 그리운 가곡 보리밭이 흘러나온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이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물빛이 깊어 가는 가을호수 주변의 젖은 풀잎을 쓰다듬으며 빗소리에 모든 소리가 하나로 동화되는 적막을 향하여 천천히 물가를 거닐어 본다. 물가 나무는 비에 젖어 야윈 가지를 흔들고 발밑에 차오르는 호수에 젖는다.

비에 젖어 떨어지는 붉은 낙엽은 아쉬운 세월의 애절함에 미련이 남아 바람 위에 한참을 머무르다가 팔랑팔랑 수면 위로 사뿐하게 내려앉아 맴돌다 호수에 몸을 실어 노란가을 속으로 사라진다.

 

저수지에 동그란 원을 그리며 떨어지는 빗방울이 서로 겹치고 또 겹치면 그리움의 시간을 수없이 만들어 내고 이내 물결 위에서 춤추듯 가을을 노래하다 지나간 시간이 그리워 미련을 감추지 못하지만 세월의 물결에 떠밀려 자진하고 물속으로 스며든다.

새로운 시간을 알리는 동그라미 시계가 끝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소멸하며 생성하고 자멸하며 윤회의 시간 앞에 시야는 어찌할 줄 몰라 현실의 발걸음을 옮긴다.

 

가을비에 젖어 가는 몸과 마음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번민하며 투명한 물빛 속으로 스며들면 시공은 강물을 건너고 세월은 호수에 젖어 물왕저수지 계절은 가을비에 젖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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