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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마당/이도연의 시선 따라 떠나는 사계

들길 따라 가을 걷기

by 이치저널 2023.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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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퉁이 오솔길 가을을 걸으면 여름내 달궈진 길 들이 뜨거운 열기를 내려놓고 팔월의 녹음이 절정에 이를 무렵 처서를 뒤로하고 서서히 식어 간다숲길도 시원한 바람이 가을을 실어 보내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물빛인 듯 하늘빛인 듯 나뭇가지 사이로 살짝 보이는 하늘은 파랗게, 파랗게 높아만 가며 늙은 노송의 그림자가 하늘 숲을 이루고 정오의 햇살을 온몸으로 버티며 땀방울을 식혀준다.

 

 

산머리 파란 하늘 위로 비행기가 선명하게 궤적을 그려 선을 그어놓으면 선 따라 푸른 하늘에는 뭉게구름 무리지어 피어오른다장독대 위로 가을이 묵은 된장처럼 익어가고 처마 밑에 줄을 꿰어 매달아 논 빨간색 고추가 가을을 향해 정겹게 줄지어 흔들리며 가을을 부르고 가을을 재촉하는 누런빛 갈대 춤사위에 고추잠자리도 함께 나풀거리며 날아오른다.

산자락 밭둑 수숫대는 머리가 무거워 고개를 숙인다낱알을 새들과 먹이로 나누다 지친 농부가 수숫대 머리 위에 그물망을 씌워 놓은 것이 새들과 힘겨루기 하는 농부의 수심이 보이고 한낮의 태양이 더위를 양보하면 넓은 잎사귀 넝쿨에 주렁주렁 달려오는 고구마는 자줏빛 수확의 기쁨으로 흥이 넘친다.

시원한 물길 따라 가을 야생화가 피어나고 버들강아지 부드러운 솜털이 바람결에 나부낀다. 활짝 핀 나팔꽃 선명하게 피어난 들꽃이 강물 위에 투명한 빛깔로 아름답게 흔들린다.

구불구불 이어진 오솔길 모퉁이마다 가을이 움츠려 얼굴을 내밀고 길손의 발자국 따라 소리 없이 가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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