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逆說, Paradox)’이란 말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을 역설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역설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주의나 주장에 반대되는 이론’, 또는 ‘겉으로는 모순되고 불합리하여 진리에 반대하고 있는 듯 하나 실질적인 내용은 진리의 말’이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역설 중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를 비유한 ‘제논의 역설’이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도 수많은 역설이 산재해있습니다.
최근 투표의 등가성과 정당정치의 활성화를 위해 국회의원 선거구를 소선거구제에서 중·대선거구제로 조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투표의 역설’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는 프랑스의 정치가이며 수학자인 콩도르세의 이론이기도 한데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다수결로 의사를 결정하지만, 투표가 실제로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주장입니다.
예를 들어 세 후보가 있을 때 A와 B의 여론조사에서 B가 이기고, A와 C의 조사에서는 C가 이기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 결과를 보면 일단 세 사람 중 A의 경쟁력이 가장 떨어집니다. 그러나 세명이 출마한 투표 결과는 A가 40퍼센트의 득표로 당선이 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A를 지지하지 않지만, B(35퍼센트)와 C(25퍼센트)로 표가 나뉘면서 전체 유권자의 뜻과는 상관없이 A가 당선됩니다. 이를 콩도르세의 역설 또는 투표의 역설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비민주적이라 말할 수 없지만, 다자구도에서는 개인 경쟁력은 1등을 못 한 후보가 당선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투표에 있어서 완벽한 등가성과 민의 반영은 현실화 될 수 없는 이상일 것입니다.
이상에서 얘기한 투표의 역설 이외에도 도시의 역설, 규제의 역설, 절약의 역설, 자유의 역설 등 수많은 역설이 존재합니다. 어쩌면 인간이 추구하고 발견한 진리에는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고 상대적이고 모순적이며 양면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만사가 역설일지도 모릅니다. 이를 적절히 풍자한 시가 하나 있지요. 오스트리아 시인 제프 딕슨의 <우리 시대의 역설>이라는 시인데, 몇 줄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지혜는 모자란다.”
“세계 평화를 더 많이 얘기하지만, 전쟁은 더 많아지고 여가시간은 늘어났어도 마음의 평화는 줄어들었다.”
'스토리마당 > 염홍철의 아침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늦은 후회 (1) | 2023.10.31 |
---|---|
늦장 부리는 사람들 (0) | 2023.10.24 |
언제까지 숨 막히는 속도를 쫓아가며 살아야 할까? (0) | 2023.10.10 |
부모가 아이를 망친다 (0) | 2023.09.26 |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라는 공포 (0) | 2023.09.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