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토리마당/송란교의 행복사냥

꿈은 다른 사람과 공유할수록 가치가 늘어난다

by 이치저널 2024. 2. 22.
반응형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꿈은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기 위해 땅속에 묻혀 있는 것이고, 입 밖으로 나온 꿈은 따스한 봄 햇살을 받고 꽃을 피우기 위해 기지개를 켜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꿈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입을 통하든 글을 통하든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바람결에 스치듯 지나가는 말이 아닌 침 발라가며 또박또박 눌러쓴 꿈은 새봄과 함께 새파란 싹이 솟아오를 것이다.

사람들은 매일 밥을 먹는다. 배가 고프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가 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먹을 것을 찾는다. 날이 추우면 따뜻한 난로를 찾고 날이 어두워지면 밝은 불빛으로 모이고, 외로우면 위로해줄 사람을 찾게 되는 것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사람들은 매일 꿈을 먹고 산다. 이루고자 하는 꿈이 거대하거나 아주 사소하거나는 문제 될 게 아니다. 우리 마음속에 꿈 자체가 있고 없고에 따라 살려고 발버둥 치는 삶의 에너지에 차이가 있게 된다. 꿈을 품고 있어야 그 꿈을 이루려는 욕망도 생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살려고 하는 것이다. 목숨을 연장해서라도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을 꼭 이루어보려고 도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살아있는 꿈을 가졌는가? 내 심장을 뛰게 하는 뜨거운 꿈을 품었는가?

사람은 누구나 꿈을 가질 수 있고 꿈을 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 꿈의 조각들을 퍼즐 맞추듯이 한 조각 한 조각씩 맞추어야 하고, 도미노를 쌓듯이 조심조심 정성 들여 쌓아야 한다. 꿈의 파편들이 펄떡펄떡 뛰고 있을 때는 그 주변도 역동적인 에너지 덕분에 환하게 빛날 것이다. 그래서 꿈은 불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불씨가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면 주변을 밝고 따뜻하게 해줄 것이다. 꿈이 없는 삶은 공허하다. 춥고 어둡다. 그러니 작은 꿈이라도 품고 살아야 한다.

 

 

꿈은 미로를 달리는 인생항로(人生航路)에서 등대 역할을 한다. 꿈은 외로움을 삭이는 별빛이요, 어둠의 길을 비추는 달빛이다. 그러니 날마다 내 꿈이 잘 있는지 살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골목길에 내버려 둔다 해서 훔쳐 갈 만큼 탐나는 물건은 아니겠지만 자신에게는 황금과도 바꿀 수 없는 아주 소중한 물건이다. 꿈은 파닥거리는 내 영혼의 심장인 것이다.

내 꿈을 향해 열렬하게 응원해본 적이 있는가? 내 꿈을 향해 진실하게 대해 본 적이 있는가? 올봄에는 내 꿈에 대해 진정한 팬이 되어보면 어떨까? 내가 선택한 꿈은 다른 사람의 질문이나 강요에 따라 눈치를 보면서 내뱉는 꿈과는 차원이 다르다. 생성되는 에너지가 확연히 다르다. ‘나’의 꿈과 ‘남’의 꿈은 다를 수밖에 없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쏟아야 할 내가, 남의 논이나 남의 꿈에 물만 대고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반사적으로 꾸며내는 꿈은 ‘남’의 꿈이고 남의 논일 뿐이다. ‘나’의 꿈이 뭔지도 모르고, 모르니 말도 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니 꿈에 대해 열정도 가질 수 없고 팬이 될 수도 없다. 그러니 응원과 격려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닌가?

연초가 되면 새해 목표를 세우곤 한다. 어린 시절에는 장래의 꿈을 마음에 새긴다. 그런 ‘나’의 꿈들이 이제 입 밖으로 나오게 해야 한다. 그러면 더 구체성을 가지게 된다. 꿈을 이루는 방법을 더 많이 가지게 된다. 입 밖으로 내뱉어 놓으면 그 꿈들은 살아서 돌아다닌다. 누군가에게 ‘나’의 꿈을 들려주었다면, 그들은 나의 꿈을 훔쳐 가거나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할 것이다.

‘나’의 꿈을 다른 사람들이 듣도록 큰 소리로 말해보자. 나의 꿈을 듣는 사람도 ‘나’의 꿈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나의 꿈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다 보면 수만 개의 보는 눈이 있고 듣는 귀가 있으니 더 열심히 노력하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꿈 이야기는 듣는 사람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너른 밭에 씨 뿌려놓고 저절로 자라겠지 하면서 돌보지 않고 관심을 두지 않으면 새가 날아와서 그 씨를 쪼아 먹어 버릴 수도 있다. 새싹이 돋아나면 토끼가 뜯어 먹어버릴 수도 있고, 너무 습하면 싹조차 트지 못한 채 썩어버릴 수도 있다. 바람불면 꺾일 수도 있고 가물면 말라죽을 수도 있다. 소중한 나의 꿈을 외롭게 내버려 두고 싶지는 않겠지요? 농사를 짓는 농부가 씨를 고르면서부터 수확을 할 때까지, 씨 뿌려진 논밭을 수만 번씩 들여다보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성껏, 진정성을 가지고 가꾸어야 한다.

하늘이 한자의 비를 내리면 식물은 한자만큼만 자란다. 그러나 꿈은 한 입에서 나와 수만 개의 귀로 들어간다. 수만 배로 커진다. 사람의 뇌는 말을 듣는 순간 반응을 시작한다. 내가 하는 말은 나의 뇌가 가장 먼저 듣게 된다. 그러니 반응도 가장 먼저 하게 되고, 꿈을 이루는 방법도 그만큼 먼저 찾아내게 될 것이다. 보물찾기 경쟁에서 한발 앞서게 되는 것이다. 내일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꿈을 이야기해보자. 도박은 망할 때까지 하고 음주운전은 사고 날 때까지 한다고 하는데, 꿈을 이룰 때까지 왜 도전하지 않고 왜 중도에 포기하는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담임을 맡으신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맨 처음 묻는 말이 있다. ‘학생 여러분, 장래 꿈이 뭐예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등등. 그러면 학생들은 ‘대통령이 되고 싶습니다’, ‘장군이 되겠습니다’, ‘의사가 되겠습니다’, ‘농부가 되고 싶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라는 다양한 대답들이 나온다.

학생들의 꿈을 듣다 보면 ‘무엇이 되고 싶다’, ‘무엇을 갖고 싶다’, ‘무엇을 하고 싶다’. 등으로 집약되는 듯하다. 여기서 선생님이 한 번 더 질문을 해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하지를 않는다. 즉,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이 생략된 채 그 수업이 끝난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으니 그 꿈을 이루는 방법 등을 듣고 싶어 했을 것이다.

꿈, 노력과 희생을 먹고 자란다. 생각만으로도 꿈을 키울 수 있지만, 행동하는 노력 없이는 좋은 결실을 거둘 수 없다. 나는 꿈을 키우는 사람인가 꿈을 짓밟는 사람인가? 자식들을 키우면서 잘되라고, 꿈을 키워준다고, 훈시하다 대통 큰 다툼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이런 말도 서슴없이 내뱉는다. ‘이 망(亡)할 놈의 새끼가, 야 임마 너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이야, 너 뒈질래? 어쩌다 너 같은 녀석이 태어났는지 모르겠다’, ‘이 놈의 새끼가 왜 말을 안 들어 처먹어, 이런 개뼈다귀 같으니라구’

꿈을 키워주는 것이 아니고 꿈을 불태워버리는 것이 아닌가. 불같은 화는 결국 다른 사람의 마음에 분노의 불을 지르게 된다. 그러면 말이 순하게 편하게 나올 리 없다. 혀도 꼬인다. 물불 가리지 않고 퍼붓고 있는 동안에는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무슨 상처를 주고 있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오직 자신의 분노를 발산시키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불이 나면 신속하게 꺼야 하는데 남의 집에 불을 지르면서 내 집의 불만 끄려고 하면 불이 꺼지겠는가? 마귀가 던져주는 쾌락에 미혹(迷惑)되는 것이다. 화가 났을 때 ‘이 흥(興)할 놈의 자식이, 제발 잘 좀 해라. 그래야 훌륭한 사람 된다’라고 말하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방법은 ‘칭찬’이 으뜸이다. 그래서 시험 잘 보고 온 아이에게 한마디 한다. ‘잘했구나, 조금만 더 잘했으면 일등도 할 수 있었잖아!’, ‘네 친구는 몇점 받았니, 100점 맞은 애들 몇 명이나 되니?’라고 하면서 기분 좋게 칭찬의 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말을 듣는 아이는 이게 칭찬이야 꾸지람이야 하면서 헷갈리기 시작한다. 마음의 문이 닫히게 된다.

자라나는 아이의 성장판이 닫힐까 걱정을 하면서 꿈이 말라가는 것에는 짐짓 무관심하다는 것일까?. 정말 칭찬해주고 싶다면, ‘이번에 열심히 노력하더니만 아주 잘 받았구나, 장하다’ 이정도의 말에서 끝내야 한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꼭 그러지도 않는가 보다. 자식과 오래간만에 이야기가 통하네 하면서, ‘기회는 이때다’라고 생각하고 칭찬하는 말 뒤에 습관적으로 꼭 사족을 붙이려 든다. 그러면서 아이의 꿈이 아닌 내가 바라는 ‘나’의 꿈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강요된 꿈은 ‘남’의 꿈일 뿐이다.

꿈은 키우고 절망은 버리게 해야 한다. 꿈이 마르면 행복이 자라지 않는다. 꿈이 없다면 살아있는 게 아니다. 지금 당장 돌아가실듯한 사람도 하루만 더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것은 아직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서일 것이다.

내 재산이나 귀한 물건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 가지려는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먼저 차지하려고 아등바등 다툼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꿈은 다르다. 꿈은 다른 사람과 공유할수록 가치가 늘어난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의 꿈을 과감하게 말해보자. 간절한 꿈, 절실한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어보자.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