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과 용기를 주는 말 한마디, 다른 사람의 인생을 빛나게 하는 햇살이 된다. 한평생 살다 보면 힘들거나 어려울 때가 있다. 그리고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 역시 힘든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이렇듯 서로가 힘든 시기에는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큰 응원군이 되어야 하며,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큰 위로와 격려를 보탤 수 있어야 한다. 온통 서로에게 눈과 귀와 입을 닫아 버린다면 함께 살아가는 다정한 ‘이웃사촌’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 해주는 격려의 말 한마디, 슬픔에 잠긴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 한마디, 아픈 사람에게 속삭이는 사랑의 말 한마디는 보약보다 값진 것이고 다이아몬드보다 귀하고 귀한 것이다.
‘예쁜 말 예쁜 미소’는 굳게 닫힌 대문을 열고 이웃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이면서 가장 효율적인 소통의 도구다. 예쁜 말 예쁜 미소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천사이며,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는 만능열쇠인 것이다. ‘말은 사람의 향기다’. 그 향기는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다. 미소는 숨기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지어줄 때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이웃에게 언제나 힘이 되는 말 한마디 환한 미소를 건네줄 수 있는 ‘우리’이기를 기대해 본다.
♡예쁜 말 예쁜 미소 예쁜 인생♡. 낯선 이에게 보내는 고운 미소 한 모금은 서로 친구가 되게 하며 어두운 길을 가는 이에게는 한줄기 등불이 된다. 예쁜 미소 안에는 질투 시기 비난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 미소 안에 담긴 마음은 사랑과 배려와 이해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는 ‘나’를 아름답게 하며 바라보는 상대방을 웃게 해준다. 대가 없이 지어주는 미소는 내 영혼을 향기롭게 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도 행복하게 해준다. 미소 안에는 우리 사회를 아름다운 꽃으로 수놓는 마법이 숨어있다. 그런 미소가 잠들면 어둠이 날뛰는 세상이 되어 갈 수밖에 없다. 저는 그렇게 믿고 오늘도 열심히 미소를 짓는다. 꽃은 피면서 물 달라 거름 달라 사랑 달라 떼쓰지 않는다. 그렇게 조건 없이 피어난 꽃이 뭇 사람의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다.
목마름이 불타는 사막에서 길을 잃고 사지를 헤매고 있을 때 한 구덩이 오아시스를 만나는 기적이 따르고, 먼바다에서 배가 거센 파도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져 허우적거릴 때 한 척의 구조선을 만나는 천운이 따르고,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자학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고 할 때 다정한 이웃을 만나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들을 수 있는 행운을 지녔다면, 이 얼마나 선택받은 인생인가. 다정한 말 한마디에 용기를 얻고, 활짝 핀 예쁜 미소 한 송이에 희망을 품는다. 예쁜 말 예쁜 미소는 지루한 일상을 재미나게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높은 담을 허물어 준다. 소통의 다리가 된다.
당신의 눈으로 보는 것 중에서 가장 예쁜 것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코로 맡는 냄새 중에서 가장 배고프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예쁜 입술로 말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요? 당신의 귀로 듣는 말 중에서 당신을 웃음 짓게 하는 말은 어떤 말인가요? 당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만지면서 가장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눈 코 입 귀 손도 나름 좋아하는 것이 있을 것이고 싫어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어찌 다 알겠는가만, 싫어하는 것들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마음이 결정한다. 그리고 표정으로 말을 한다. 맘에 들면 방긋거리고 그저 그러면 무표정하고 맘에 들지 않으면 찡그린다.
산의 정상은 하나이나 오르는 길은 수만 가지다. 각자의 삶의 시간은 엇비슷하나 평판은 각양각색이다. 나비가 아지랑이 사이를 피해 가는 방법도, 쏟아지는 빗줄기를 피해 다니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너른 들판에서 하늘을 향해 뒹구는 풀의 향기도 수만 가지다. 한 몸에서 나온 나의 오감조차도 좋아하고 싫어함이 각각 다를 수도 있는데, 다른 사람을 말해 무엇하랴. 같은 말이라도 듣는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느낌이 확 다르고 쓰임도 크게 다를 것이다.
‘누칼협’은 ‘누가 칼로 협박했냐’의 줄임말이고, ‘악깡버’는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의 줄임말이다. 이런 신조어는 다른 사람을 향해 ‘나는 당신에게 공감하지 않겠다. 당신을 이해해주거나 위로해주지도 않겠다. 그냥 당신이 알아서 하라. 네가 한 선택이니 네가 책임지고 감당하라’라고 주장하고 싶을 때 사용한다고 한다. 참으로 섬뜩한 말이다. 서로 시멘트가 없는 마른 모래알이 되어간다. 공감과 이해의 노력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인정이 말라가고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와 배려조차 사라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의 반영인 것이다.
마음이 힘들고 지쳐있는 사람에게 하는 말, 내가 생각하기에 적절한 듯 보여도 상대방에게는 아픔을 더 크게 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의도가 좋더라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할 가능성이 많은 표현이나 오해를 부르는 말들은 피하는 것이 좋다. 배터리가 밑바닥까지 방전된 것처럼 넘어질 듯 지쳐있는 사람에게 ‘많이 힘들지?’ 하면서 확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얼마나 힘들고, 어디가 힘들고, 언제부터 힘들었으며, 어떻게 힘들었는지 등등, 나의 궁금증 해소를 위해 계속해서 질문하면 상대방은 고통스러워할 뿐이다. 병문안을 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증상을 하루에도 몇 번씩 설명해야 하는 환자의 입장을 생각 해보면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힘들겠네!’라는 어설픈 공감도, ‘이렇게 해봐!’라는 설익은 충고도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좋다. 상대방의 힘들고 어려운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면 진실한 마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이다.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못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나 상태’인 사람에게, ‘죽을 각오로 하면 안 되는 게 어디 있어!’라고 핀잔하듯 말하면 상대방은 더 비참해진다. 상대가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생각을 더듬어 봐야 할 것이다. 때로는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자.
격려가 필요할 때, ‘너는 명품이야’. ‘너는 뭘 해도 잘할 거야’. ‘좋은 생각으로 이겨내자’. 등등. 미안함을 표현할 때, ‘내 반응이 너무 극단적이었어, 미안해’, ‘나한테 어떤 말을 듣고 싶은지 말해줘’. ‘이번 일에 내가 잘못한 부분이 보이네’, ‘내가 ~~ 한 것에 대해 사과할게’ 등등. 긍정적인 분위기가 필요할 때, ‘이제야 네 말이 좀 수긍이 되네’. ‘이 정도씩 서로 양보하면 어떨까?’.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네가 걱정하는 게 뭔지 말해줄래?’. ‘그러니까 네 말은 ~~ 이런 뜻인가?’.등등. 인정하고 싶을 때, ‘네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아’. ‘너의 입장을 이제야 좀 알 것 같아’. ‘네가 나에게 ~~을 해준 것이 고마워’. ‘너라면 가능해’ 등등.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할 때, ‘당신은 나의 전부’. ‘당신은 나의 행복’.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너무 좋아’. ‘날 위해 이런 것들을 해줘서 정말 고마워’. ‘넌 정말 아름다운 것 같아’. ‘넌 정말 친절하고 마음이 따뜻해’. ‘제 눈이 그대를 많이 보고 싶어 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오로지 당신과 함께하고 싶기 때문이라오’. 등등
앞서 예를 든 표현들은 평범하지만 어쩌면 평생 해보지 못한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하지 않으면 끝내 할 수 없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의도적으로 한 번씩 해볼 필요가 있다.
시장에 있는 기름집 가게 앞에 대문짝만한 크기로 ‘진짜 100 프로 순 참기름’이라 적어 놓은 푯말이 간판처럼 세워져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얼마나 믿지 못하면, ‘순(純)’을 덧붙이고 ‘100 프로’라고 강조하고, ‘진짜’를 동원하는가 말이다. 고소한 냄새만으로도 진짜 참기름이란 것을 금방 알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을 하다 보면, 이해보다는 오해가 더 빠르다 하기에, 그 오해를 뿌리치기 위해 온통 이말 저말을 갖다 붙이게 된다.
그러나 진실과 진심이 빠진다면 아무리 많은 수식어를 붙인다 해도 그 말은 오해만 부를 뿐이다. ‘해어화’(解語花)는 나의 말을 이해하는 꽃이라는 뜻이다. 꽃조차도 나의 말을 이해해준다면 더 예쁘게 보인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말을 일부러 오해하려 애쓰는 사람을 간혹 보게 되는데, 이는 지금 즉시 버려야 할 나쁜 습관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숨어있는 흠을 찾아내겠다 하면 믿음이 사라지고 이웃이 떠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저는 어느 강연장에서나 ‘고감사건부행존성축덕미잘’을 강조한다. 즉,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건강하십시오. 부자 되십시오. 행복하십시오. 존경합니다. 성공하십시오. 축하합니다. 덕분입니다. 미안합니다. 잘 될 겁니다’. 등이다. 이런 말이 입에 배면 다른 사람들과 말싸움이 일어날 수가 없다. 덤으로 이웃 사람들의 존경은 그냥 따라오게 된다.
자랑하고 싶은 것이 넘치는 사람에게는 ‘굉장하네요’. ‘대단하십니다’를 덧붙여 칭찬해주자. ‘사랑해’ 앞에 아름다운 수식어를 더하고, ‘고맙다’ 앞에 구체적인 사실들을 덧붙이면 효과가 극대화된다. 자녀들이 부모에게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사랑해’. ‘돈 필요해?’. ‘너만 믿는다’ 등이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해주는 것에 대해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감사함을 표현해보자. ‘설거지 해줘서 고마워. 일찍 들어와서 고마워.’ 등등.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자주 해준다고 하여 그 사람에게 말빚을 지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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