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

조선 왕실의 유산, 100년 만에 돌아온 경복궁 선원전 편액!

by 이치저널 2025. 2. 3.
728x90
 
 

국가유산청은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과 함께 일본에서 발견된 경복궁 선원전(璿源殿) 편액을 지난해 2월 국내로 환수하는 데 성공했다. 라이엇게임즈의 후원을 받아 진행된 이번 환수 작업을 통해 조선 왕실의 상징적인 문화재가 다시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오는 27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언론에 최초 공개될 예정이다.

경복궁 선원전은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어진을 봉안하고 의례를 지내던 신성한 공간이었다. 조선은 충과 효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으며, 선원전은 왕이 친히 분향과 참배를 행하는 장소로서 궁궐 내에서도 위계가 높은 전각 중 하나였다. 이번에 환수된 편액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크기(세로 140cm, 가로 312cm)와 서체의 특성상 1868년 경복궁이 재건될 당시 선원전에 걸렸던 현판일 가능성이 높다.

 

 

선원(璿源)이라는 명칭은 중국 역사서인 '구당서(舊唐書)'에서 왕실을 옥에 비유한 것에서 유래했으며, 왕실의 유구한 뿌리를 상징한다. 조선 왕실의 선원전은 경복궁뿐만 아니라 창덕궁, 경운궁(현재 덕수궁)에도 존재했으며, 국왕의 거처 이동에 따라 어진도 함께 옮겨졌다. 이에 따라 대한제국 시기에는 경복궁, 창덕궁, 경운궁 세 곳에서 모두 선원전의 기능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경복궁 선원전은 일제강점기 훼철되었으며, 그 자리에 박문사(博文寺)가 세워졌다. 이번에 환수된 편액은 창건(1444년) 경복궁 선원전과 창건(1897년) 경운궁 선원전이 화재로 소실된 점, 창덕궁 선원전과 구조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할 때 1868년 재건된 경복궁 선원전의 편액으로 판단된다.

 

또한, 승정원일기(1867년, 고종 4년)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당시 경복궁 선원전 편액의 글씨는 서사관 서승보(徐承輔)가 쓴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이번에 환수된 유물의 필획과 결구 등 서체적 특성이 그의 글씨와 일치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서승보는 조선 후기 이조참판, 한성부판윤,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당대의 뛰어난 서예가로도 평가받는다.

조선 궁궐 건물은 그 역할과 성격에 따라 위계를 달리했으며, 가장 격식이 높은 건물에는 '전(殿)'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선원전은 이러한 위계에서 최고 수준의 건물로서 그 편액 역시 크기, 형태, 색상, 제작 기법 등이 정교하게 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번 환수를 통해 조선 왕실의 역사와 전통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 다시 국민에게 공개될 수 있게 되었다.

 

경복궁 선원전 편액의 귀환은 단순한 문화재 환수를 넘어, 조선 왕실의 정통성을 되찾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앞으로도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환수하는 노력을 이어갈 계획이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