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 있음이 행복한 아침
인생의 특별 보너스를 받은 느낌
구기동 쪽으로 난 북한산 둘레길을 따라 꼬불꼬불 걸어 올라갔다. 연와정사를 지나 감람산 기도원을 지나가니, 마치 기독교인 지역과 불자 지역을 순례하는 기분이었다. 지난주에 갔던 똑같은 길이지만 느낌은 또 달랐다.
산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너무 다양하다.
어린이를 동반한 어버이, 나이가 꽤 많이 드신 할아버지, 서울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 등산로의 쓰레기를 줍는 착한 아주머니 등 오늘은 유난하게 사람들이 많다. 바야흐로 봄기운이 완연해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산은 여전히 겨울을 머금고 있었다. 계곡에는 얼음과 눈이 쌓여 마치 겨울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아도 산바람은 계속 봄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이름 모를 새들도 이제 봄을 노래하는 듯 맑고 밝은 소리 일색이었다. 청담 샘까지 가는 길은 지난 3년 전이나 다름이 없었다. 약수를 마시면서 지난 3개월을 되돌아보았다.
산이 내뿜는 봄의 기운을 담뿍 안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서울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세상을 향해 야호!! 하고 소리쳐 보았다. 정다운 메아리가 귓전을 울렸다. 내가 살아 있음이 행복한 아침이었다. 북한산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에 내 소중한 사랑을 띄워 보낸 아침이 닫히고 있었다. (o월 o일 아침)
지난 주말에 이어서 또 북한산을 찾았다. 산자락에 발을 들이자마자 온 누리가 백색의 페스티벌을 벌이는 것 같았다. 세속을 떠나 한 백여 미터 올라왔는데 세상은 별천지 같이 변해버렸다.
사철나무를 포함하여 고목의 팔 위에 눈꽃이 만발하였으며, 여기저기서 이 봄 속에 맞은 겨울모습을 담아놓기 위해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온 산을 점령하고 있는 겨울 손님에 대한 환호성이 대단 들이다.
고도의 차이가 이렇듯 계절까지도 바꿔 놓는 데 대해 다시 한번 놀라움을 느꼈다. 마치 내가 에베레스트의 등정 코스에 와 있는 착각을 갖게 해주었다. 눈을 밟는 소리가 뽀드득뽀드득 어린 시절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겨울에 눈이 무릎까지 쌓이는 날이면 초등학교 인근 산으로 토끼몰이 다녔던 추억이 아련히 떠올랐다.
세속은 봄이 온다고 사람들이 춤을 추고 야단들인데 지금 여기는 한겨울을 연출하고 있으니 대자연의 오묘한 조화를 이처럼 실감나게 느끼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특히 바위와 길과 낙엽과 이끼까지도 뒤덮어 온통 백색으로 채색해버린 조화로움이 너무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한 이틀 비가 와서 그런지 계곡 물소리가 폭포수 쏟아지듯 한 울림을 만들고 있었다. 지난주에 왔을 때와는 실로 다른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제 그동안 가물었던 대지를 어느 정도 해갈해 준 것 같았다.
대성문에 올라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눈이 쌓여 가지가 견디기 어려운 신음을 하는 듯한 나무들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세상은 전혀 아무것도 변함이 없는 것처럼 조용하였다. 나는 오늘 인생의 특별 보너스를 받은 느낌이었다.
봄철 등산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백색의 설원이 주는 상쾌함과 맑은 공기, 오색 등산복이 눈 세상에 만들어 내는 인간과 자연의 교감, 3시간여의 등산을 했는데도 전혀 피곤을 느끼지 못하는 특이한 체험의 시간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직도 북한산은 겨울의 점령군이 위세를 부리고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은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속세로부터 부지런히 봄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아마도 다음 주에 북한산에 다시 가면 인간들의 열화와 같은 정성으로 화사한 봄 얼굴이 우리를 반갑게 반길 것이라 기대해 본다. ( o월 o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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