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용서는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인간에게 가장 큰 기쁨과 위안을 주는 것도 사람이고, 반대로 고통과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주는 것도 역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인간관계가 제일 중요합니다.
오늘은 배신과 용서에 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많은 철학자나 종교인들은 자신을 배신한 사람도 용서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용서는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하라는 것이지요.
일단 배신에 대한 정의부터 내려야 하겠네요. 많은 경우, 서로가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럴 때는 서로 간 감정적인 충돌이 있었거나 오해, 아니면 가치 기준이 달라서 서로 맞지 않는 관계일 때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일방이 배신했다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요.
그렇지만 배신이라고 규정짓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방적으로 배반하고 떠난 사람, 재산상 피해를 주게 하고 도망간 사람, 좀 포괄적으로는 사람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짓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용서에 대해서는 법정 스님, 달라이 라마 그리고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 등 주로 종교 지도자들이 주장하였는데, 표현 방법은 좀 달라도 내용은 똑같습니다. 요약하면, 용서는 상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고, 배신이라는 과거에 사로잡히면 현재와 미래를 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혜민 스님은 이런 얘기도 했습니다. 누구를 미워하면 우리의 무의식이 그 사람을 닮아간다고요.
시집살이 많이 당한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면 똑같이 시집살이를 많이 시킨다는 것이지요. 누구를 미워하면 그 대상을 마음 안에 넣어두기 때문에, 내 마음 안의 그가 곧 내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용서할 수 없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미워하진 않습니다. 자주 그를 용서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는데 그것 자체가 저에게는 하나의 벌입니다.
오늘도 용서는 큰 수행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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