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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마당/이도연의 시선 따라 떠나는 사계

홍천, 산골 마을의 밤

by 이치저널 2023.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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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연 

 

 

 

 

산골 마을의 밤이 깊어 간다. 건너편 외양간에서 어미에게서 젖을 떼기 위해 격리해 놓은 송아지의 울음소리가 밤하늘에 애처로이 울려 퍼지고 어미 소의 울음소리는 애간장이 끊어 질듯 간헐적으로 이어진다. 해가 잠시 존재감을 드러내다 사라져버린 산중의 어둠은 칠흑 같은 적막에 달빛마저도 빛을 잃어 희미하다.

오늘따라 바람이 골짜기를 타고 오르며 심술을 부려 농가의 비닐하우스의 갈비뼈를 심하게 흔들어 요란한 울음을 울며 지나간다. 비닐하우스의 열린 틈으로 수없이 많은 시간이 생성하고 침몰하며 아침을 깨우고 좁은 창으로 스치는 수없이 많은 바람의 형상을 한 햇살과 비와 구름이 지나가고 밤에는 별과 달이 번갈아 빛으로 쏟아져 내리며 산골 마을의 나날들이 흘러가는가 싶다.

 

ⓒ박미애

 

어둠 속 멀리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화덕에서는 참나무 숯불이 하얗게 타들어 가고 석쇠 위에서는 먹음직한 고기가 지글거리며 익어간다.

간이 식탁에는 더덕이며 참두릅 개두릅 누리 대 무침 산나물과 각종 푸성귀가 풍성하고 누룩 익어가는 구수한 냄새에 취해 막걸릿잔 부딪치는 소리가 미소로 번져 둘러앉은 사람들의 옹기종기 정감 어린 대화가 두런두런 산골 마을 계곡 틈 사이로 자박자박 고여 간다.

숲속의 오두막집에 노란색 호박 등이 어둠을 밝히며 서서히 어둠이 내린천 물길 속으로 내러앉은 깊은 밤에 초록빛 숲속에 비가 내리며 나무 이파리를 흔드는 빗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온다.

밤새 초록빛 꿈을 꾸었다.

빗소리에 젖어가는 숲의 정령들을 깨워 수풀 사이를 헤매는 꿈속에서 빗방울이 밤의 계곡에 던지는 물소리가 들리고 계곡을 흐르는 급류가 바위와 자갈이 나누는 대화 소리로 소란스럽고 내린천 주변에 피어난 야생화가 비와 속삭이는 수런수런하는 소리가 아득한 꿈결 속에 들리며 가끔은 빗속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비로 인해 눅눅해진 방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올려놓은 보일러가 방바닥을 뜨겁게 달구고 더위에 땀을 흠뻑 흘리다 잠에서 깨어났다.

꿈은 꿈이 아니었다.

창밖에 빗방울이 소리 없이 창밖 난간에 부딪혀 물방울을 튕겨내고 건너편 오미자 농원의 넝쿨이 진초록의 옷을 입고 비에 젖어 싱그러운 모습으로 눈인사를 건네며 비에 젖은 합창을 하고 있다.

창을 열자 숲속 자연의 소리가 일제히 창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다.

숲속에서 들려오는 딱따구리의 나무 두드리는 소리 사이로 부지런히 나뭇잎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들리고 내린천은 끝없는 오케스트라의 향연을 하듯 단조로우면서도 변화무쌍한 음률을 자아내는 계곡물 소리가 경쾌한 콧노래처럼 들리고 처마 끝에 고여 바닥으로 떨어지는 낙숫물소리에 귀는 유리처럼 투명하게 맑아지고 청량하며 생동감 넘치는 소리는 머리를 환하게 정화시키며 시원한 바람에 가슴이 뻥 뚫리는 아침이 깨어난다.

내린천 숲속의 아침은 소리로만 열리는 것이 아니다. 눈에 가득 고여 오는 풍경이 경이로운 감탄으로도 새벽잠을 깨운다.

내린천은 무채색 물보라를 일으키며 흘러가는 물길이 계곡이 이른 아침의 창문을 열고 들어오며 빗방울은 맑은 초록으로 젖어 이슬을 털어내듯 흔들리며 춤추는 무희들의 춤사위가 아름다우며 울타리 옆 복사꽃 입술에 눈물방울 글렁글렁 맺힌 고운 모습이 청초하다.

가녀린 여인의 눈물 같은 야생화의 가는 허리가 바람에 한들거리는 모습이 숲속 풍경으로 다가올 때 먼 산골짜기를 오르는 안개로 인해 산은 한 겹으로 보이다 두 겹이 되고 세 겹이 되어 흩어지기도 하며 깊은 산골 너머 희미하게 보이다 말다 하는 풍경은 여기가 오지 중에 오지의 첩첩산중 숲의 품속에 갇혀 있음을 실감하며 눈으로 소리로 비 오는 숲 속의 아침이 열린다.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몸에서 바람이 빠져버린 것 같은 허무함을 느낄 때나 삶의 비탈을 오르며 힘겨워할 때면 어디로 인가 떠나고 싶어진다. 그것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삶의 안식이자 피안의 쉼터이다 오지의 자연에 온전히 몸을 의탁하고 일상의 시계가 멈추어 버린 순간의 여유로움과 자연과 하나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연은 생명의 고향이고 흙은 고향의 뿌리이다.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자 누구나 흙으로 소멸하고 바람으로 풍화되는 것을 알기에 자연에 순응하고 숲의 넉넉한 품에 안긴다. 안개 자욱한 산맥의 깊은 골짜기 뒤에도 마을이 있고 또 그 위에도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오지의 숲속에서의 하루가 오랜 여운으로 가슴 깊이 남기를 바라며 깊은숨을 들이 마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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