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스토리마당/송태한의 시를 그리다30 퍼즐 맞추기 송태한lastree@daum.net 퍼즐 맞추기 송태한 오전엔 사무실 내근 찬바람 새어드는 출입문 앞 서류 파일 어질러진 책상 모니터와 씨름하다 점심 때우고 오후엔 관내 출장 다녀오기 수첩에 빼곡한 하루를 마감하고 비공식 저녁 일정은 직사각 승객 시루 속 지하철 한 귀퉁이에 기대어 놓기 부르튼 짜장 면발이 된 퇴근길 몸에 머릿속 기억은 분실물 투성이 듬성듬성 이 빠진 콜라주 정신마저 쓰러지지 않게 손잡이에 꼬옥 묶어 촘촘히 세워 놓았다가 내리는 역에선 밀려나갈 때 방향주의 횡단보도 신호등 앞에선 우선멈춤 재건축 대상 주공아파트 오층 계단을 한 차례 쉬고 올라가 현관문 비번 눌러 열고 비좁은 화장실로 데려가 얼굴과 손발 비누로 박박 씻겨서 옥돌 매트 깔린 레고 블록 침대 아내 .. 2021. 12. 8. 물억새·2 송태한lastree@daum.net 물억새·2 송태한 가을볕이 억새 이삭 털 듯 어머니는 저린 세월을 내게 덜어 내시네 젖은 눈시울 감추려 고개 숙여 소맷자락 여미시곤 갈바람이 들추는 기억 덮으려 길섶을 서걱거리는 노래 명주 치마폭 감싸 쥐고 서릿빛 머리칼 쓸며 이맘때면 어스름 가라앉는 샛강 길 찾으시네 2021. 11. 29. 악수 송태한lastree@daum.net 악수 송태한 손을 맞대며 슬며시 드러내는 낯선 얼굴 짧은 순간 나는 은빛 갑옷에 가면을 쓴다 작별 손짓 흔든 뒤 다시 문대며 광내는 청동 방패 만지작거리는 호주머니 속 창끝처럼 까칠한 명함들 어둠은 골목 어귀마다 기마병처럼 밀려들고 어깨와 뒷목에 녹처럼 앉은 청록빛 피로감 야전 막사 같은 빌딩숲 선잠에 뒤척이는 밤마다 가시 덩굴 속 칡뿌리처럼 붉게 핏발 선 나의 팔뚝 2021. 11. 2. 문손잡이 송태한lastree@daum.net 문손잡이 송태한 돌쩌귀 닳도록 넘나들던 문지방에 홀로 남아 심장 뛰던 그리움과 가슴 찡한 작별의 틈새에 박혀 불거진 상처처럼 문손잡이는 녹슨 기억을 움켜쥐고 있네 2021. 10. 19. 외장승 송태한lastree@daum.net 외장승 송태한 안개가 앞을 가리고 살갗을 파고드는데 그대여 어데 있는가 가을볕 저무는 풀섶 감옥에 나 홀로 가둬둔 채로 그믐밤 희미해진 발등이며 시린 무릎을 타고 눈물 떨군 이끼가 번져 오는데 떠도는 그대여 무얼 하는가 길손마다 세워 놓고 수소문하며 그대 다순 몸 다시 안을 수 있다면 이슬 바람에 쓸려 무뎌진 팔다리에 피가 흐르리 이우는 금빛의 낙엽 향처럼 여윈 이마를 부디 짚어 준다면 눈시울에 어린 몇 점 그늘엔 수정 눈물 묻어나리 설렘으로 붉게 피는 노을에 실어 동구 밖 능선 너머 이승 밖까지 이제는 목쉰 노래 부르며 강어귀 안개에 잠긴 내 찬 넋을 띄우며 2021. 10. 5. 억새밭 송태한lastree@daum.net 억새밭 송태한 그대 처음 만난 날짜 어떤 기념일도 이젠 손꼽지 않겠습니다 손 안에 맴도는 문자 메시지 문득 비치는 인파 속 모습에도 눈 딱 감기로 했구요 지붕 낮은 카페의 선율 비 개인 물가의 해거름 깔깔대던 웃음소리까지 마침내 뇌리에서 지우겠습니다 가슴 떨리는 이름 석 자로 더 이상 울먹이지 않고 TV 프로 웃음마저 꾹 참을 수 있건만 나도 몰래 찾아드는 꿈결 억새밭 사잇길 첫 키스는 바람 눕는 가슴 속 뒤란에 와인처럼 입 막고 쟁여두겠습니다 2021. 9. 23. 거미1 송태한lastree@daum.net 거미1 송태한 내 영혼의 그늘 가 무관심의 서랍 속 혹은 일상의 현관 뒤켠에 제 몸 감추고 산다 벼랑을 타고 끈끈한 극세사 실을 던져 방사형 터를 꾸린다 주소도 모르는 신경세포 외진 동굴 어디쯤 가구 한 점 거울마저 없이 좁은 쪽문에 걸쇠 걸고 꿀맛 같은 게으름과 갈증을 돌돌 말아 빨며 마음 구속에 알을 슬어 놓는다 먼지 덮인 눈썹 아래 혹- 쥐색 그물 뿌린다 ----- 송태한 시집- 『우레를 찾다(2019)』, 『퍼즐 맞추기(2013)』, 『2인시집(1983)』 등 한국문협 문인저작권옹호위원,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및 정보화위원, 연암문학예술상, 한국문학신문기성문학상, 시와표현 기획시선 당.. 2021. 9. 14. 사람 세상 송태한lastree@daum.net 사람 세상 송태한 내 잠시 사람 세상에 들렀다가 반세기가 넘도록 장기 입원한 듯 눌러앉아 내내 앓고 있다네 사춘기적 얼빠진 짝사랑에 변덕 같은 세상사 속앓이 곰삭은 인정의 감주에 홍조 띄며 밸리댄스 흔드는 억새물결에 넋을 잃고 야니와 한영애 고흐와 르네 마그리트에 홀딱 반했다가 또 아스라이 무지개나라 물방울* 닮은 시구詩句에 그만 눈도 귀도 멀어버려 아, 돌아갈 길목 헤어졌던 연인 다녀왔노라 외투 벗고 인사할 식구마저 영 까맣게 잊어버린 듯 *무지개나라 물방울 : 정현종 시인의 시 제목 2021. 8. 19. 돌담길 서가書架 송태한lastree@daum.net 돌담길 서가書架 빗금으로 쏟아지는 투명 햇살 까치발로 춤추는 아침 안개 속 하나둘 눈 뜨는 이야기 돌 틈 풀꽃에 발걸음 멈추고 돌계단 문턱에서 가슴 설렌다 담장 구석 지워진 낙서 한 줄에도 코가 싸하다 이끼 묻은 성대 길켠의 정자나무가 풀어놓는 어깨 들썩이는 소리 마당 감주 내음 흩어진 골목 윷놀이 쥐불놀이 구슬치기 말뚝박기 발길 닿는 곳마다 녹아내리는 순도 높은 시간 양달쪽에 웅크려 곱은 손 비비던 손에 잡힐 듯 몽실몽실한 몇 타래 기억 위 소금물처럼 가라앉은 문양 구불구불 담장 따라 점자로 박힌 악보와 춤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기억하고 지나는 바람만이 한 장 한 장 넘기며 손끝으로 쓰담쓰담 읽어가는 투박하고 질긴 숨결 키 작은 돌담길엔 어느.. 2021. 8. 6. 작은 간증 송태한lastree@daum.net 작은 간증 송태한 도맛소리 사골국 끓는 소리 프라이팬 지글거리는 소리는 주방의 합창입니다 한 그릇 따스운 고봉밥에 물김치 생선조림 버섯나물 어울린 한 끼 밥상은 반짝이는 당신의 기도입니다 한껏 베풀어 주시고 남겨진 주름진 손마디 배롱나무 닮은 몸집은 마지막 버팀목이요 음각으로 새겨져 아린 기억은 눈부신 구원입니다 길조심하거라 가녀린 한 마디 말씀조차 방죽 같은 나의 방패입니다 쓰시던 소품마다 눈물 배이고 어머니 머물던 거처는 마침내 가슴 저린 좁다란 성지입니다 2021. 7. 21. 이전 1 2 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