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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마당/이도연의 시선 따라 떠나는 사계

심산유곡의 아침 가리

by 이치저널 2023.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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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어이 할꼬, 입영 전야의 밤에 한 잔술에 취해 송별을 노래할 때 멀고 깊은 오지로 떠나는 자의 장탄식이다.

깊고 깊은 오지로 떠나야 하는 젊은 청춘들의 고립감은 인제나 원통의 깊은 골짜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산길을 여는 시작점은 기린면 진동리 길이 멈춘 곳 사람의 발자국이 없는 시점에서 자갈과 길섶을 걸으며 이 길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삼둔 사가리의 땅은 척박하고 깊은 골짜기에 묻혀 외롭고 이방인들이 낯설어 발길을 거부하며 천연의 원시 밀림으로 남았다.

 

원시 밀림에 잠들어 있는 숲과 골은 깊었으며 태고의 적막이 흐르고 어머님 품처럼 아늑했다.

그곳에서 발원한 샘은 푸르고 맑았지만, 바위에 낀 초록빛 투명한 이끼는 고요했으며 왠지 모를 외로움이 묻어나는 시원의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인제의 방태산 기슭에 몸을 숨긴 삼둔 사가리는 비탈진 계곡의 틈에서 생명의 싹을 틔워 삶을 연명하는 산 사람들의 알곡이 되어 주었고 생명의 젖줄이 되어주었다.

열악한 화전에서 얻는 자연의 것들에 감사하고 삶에 순응하는 화전의 나날은 기구하고 외로운 고립의 연장이지만 삼둔 사가리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으며 숙명인 듯 알려 하지 않았다.

원시 자연을 품은 삼둔 사가리의 땅들은(3개의 평평한 언덕) 방태산 남부의 홍천의 내린천 옆에 자리한 살둔(생둔), 월둔, 달둔이 그곳이며 4곳의 작은 경작지는 방태산 북쪽 자락의 방태천의 아침가리, 적가리, 연가리, 명지가리이다.

밭을 갈라치면 병풍 같은 산들에 둘러싸여 아침 해가 엽전 구멍 같은 틈으로 잠시 비켜 지나면 그뿐인 좁은 땅이라는 의미의 아침 가리라한다.

길이 멈추면 물길이고 물길이 멈추는 곳에 길이 나아 있다.

물길이 멈추다 흐르기를 반복하는 소와 담의 아침가리 계곡의 깊은 심장부로 물 따라 바람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옥루빛 계류를 따라 돌아들 때마다 펼쳐지는 절경에 감탄이 절로 나오고 물밑에 노니는 물고기 떼는 물속을 휘적거리며 이리저리 노닐다가 이방인의 접근에 화들짝 몸을 숨긴다.

청정 옥수 물길 속에 형형색색 반짝이는 조약돌은 계곡의 정취에 깊이 빠져들게 한다.

아침에만 잠시 허락하는 아침가리 계곡의 일촌광음은 찰나의 삶과 같은 인생 여정과 과히 다르지 않으며 계곡으로 가야 하는 길은 멀고 깊었지만, 조경동 계곡으로 이어지는 숨 막히는 절경을 시야 가득 담아가며 걷고 또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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