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서의 봄은 수많은 소재를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봄을 시(詩)로 표현한 작품은 셀 수 없지요. 그것은 봄은 다양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봄은 끝날 때까지 새 생명의 밝음과 흘러가는 시간의 아쉬움이 버무려지면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김종해 시인은 <그대 앞에 봄이 있다>라는 시를 통해서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라고 했습니다.
‘상처’와 ‘사랑’ 그리고 ‘추운 겨울’과 ‘꽃필 차례’를 대비시키며 사랑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뿐만 아니라 많은 문학 작품에서 사랑의 본질을 많이 다루고 있는데, 누구보다도 사랑의 오묘함을 섬세하게 관찰한 작품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일 것입니다. 그의 <한 달 후, 일 년 후>(국내에는 <달이 가고 해가 가고>라는 번역본이 있음)에 묘사된 사랑의 단면들을 나열하면 충분히 그 속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의 위약함을 잘 알고 있는 영리하고 매력적인 조제(주인공)”, “부인이 있지만 조제를 사랑하는 베르나르”, “사랑을 성공의 발판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야심 찬 여배우 베아트리스”, “오랜 결혼생활로 더 이상 사랑을 못 느끼는 50대 말리그라스 부부” 등 각기 다른 사랑을 통해 인생의 덧없음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각각 애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을 가슴에 품은 사랑의 어긋남”, “한 때는 열렬히 사랑했으나 시간이 지나 열정이 식은 후의 남녀관계” 등을 잘 풀어냈습니다. (교보문고 서평 참조)
사랑을 관조적 어조로 관찰한 이 작품에 대해 어떤 분은 “그래, 나도 그런 경험이 있어.”라고 동의할 것이고 또 다른 분들은 “나하고는 관계없지만 공감 가는 얘기다.”라고 하시겠지요.
사랑의 속성에 대해 이보다 더 정확하게 묘사한 작가는 드물 것입니다. 그런데 사강은 50대에 마약을 복용한 혐의로 법정에 출두하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저는 사강의 이와 같은 말에 반론을 제기합니다. 마약은 대부분 혼자 하니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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