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경기전에서 서학동 예술마을 까지는 보통 20분 정도면 걸을 수 있지만 경관과 옛 건물을 감상하면 최소한 2시간은 잡아야 한다. 먼저 ‘1938mansion’이다. 1938년 일본인에 의해 건립됐고 15가구가 들어섰던 전주 최초의 원룸 아파트다.
해방 직후엔 김구 선생의 한국독립당(한독당) 전북 도당 사무실로 사용되기도 했다. 바로 앞엔 1927년 지어진 일본풍 가옥이 있다. 조금 더 걸으면 1950년대부터 1980년대 까지 내의류를 제조 생산했던 공장을 개조한 교동미술관이 있다.
한지(韓紙)가 발달한 고장이라 한지 파는 가게며 족히 몇 십 년은 된 한약방들이 몇 개 있다. 재밌는 것은 당시 한약방은 아픈 몸만 고치는 약만 파는 게 아니고 아픈 마음도 고치는 사주나 궁합도 보고 이름도 지어주는 일종의 종합병원이다.
성심여중과 성심여고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분위기의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착하고 건강할 것이다. 피천득 선생이 그리워하던 아사코도 일본에서 성심여중을 다녔던 것으로 기억된다. 마리아상 뒤로는 그 유명한 전동성당이 보인다. 물짜장면이 유명한 석명각은 50년 동안 짜장면을 만들었다. 석명각을 지나 청연루가 보이는 전주천 돌 다리를 건너면 바로 서학동 예술마을이 나온다.
서학동은 전주한옥마을 바로 앞에 있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고, 조용한 분위기다. 서학동 예술마을은 원래도 ‘선생촌’으로 불리울 만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주거시설의 낙후와 경제 논리에 밀려 쇠퇴했었지만 2010년부터 화가, 사진작가, 공예인 등의 예술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해 지금은 좋은 작품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마을 창작소가 되었다.
전체적으로는 조용하나 기품 있는 느낌이다. 벽 색깔이나 작은 소품 하나 조차도 범상치 않고 예술적이다. 전주교대 기숙사 정도 까지 걸으면 다 보는 것 같다. 골목 안에 있는 두 평 갤러리 서학동 사진미술관을 방문했다. 내가 가본 세계에서 제일 작은 갤러리다. 관장님과 작가님과 차담을 나누고 다시 걷는다.
마지막으로는 서학예술마을 도서관에 들렀다. 그 지역의 지성과 문화의 중심은 도서관이다. 전주는 특히 도서관이 발달한 도시다. 덕진공원 연꽃밭에 떠있는 도서관은 가히 작품이다. 누구든 서학동 예술마을을 걷는다면 고요함과 추억과 낭만을 재충전하게 될 것이다.
3시간을 걸었더니 출출했다. 전주왱이콩나물국밥집(이하 왱이집)에 갔다. 난 언젠가 이 집 사장님에게 “대한민국은 왱이집 보유국입니다”라는 찬사를 드렸다. 무엇을 넣어서 끓였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대한민국 최고의 해장국이다. 이 왱이국에 더욱 중독되는 건 석박지 때문이다. 내 아내 표현으로는 100만원을 줘도 아깝지 않을 맛이라고 한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인증한 100년 가게다.
문 앞에 써있는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라는 표현으로 왱이국 설명은 대신한다. 맞다. 인간 세상에선 어디서나 기다림을 잘하고 줄을 잘서야 사는 게 편하다.
석박지에 왱이국 한 그릇 비우고 바로 옆 70년 된 삼양다방에서 커피 한 잔 한다. 커피가 주 메뉴지만 저녁엔 맥주도 팔고 공연도 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삼양다방은 때로는 쓴 커피로 때로는 쌍화차로 때로는 도라지 위스키로 70년 동안 전주 사람들의 설움과 외로움을 달래줬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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